광기, 그 시작 - 영화 조커(Jok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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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조커는 왜 조커가 되었나.



자신의 인생이 비극적이라 생각했던 시절, 그리고 그 비극이 동반하는 우울을 드러내는 그의 그 축 처진 어깨가 숨겨진 진실로 인해 그 인생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 비극을 넘어선 블랙 코미디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얼마나 자유롭게 펼쳐지던지. 무례하기만 한 인간들, 호의가 괴롭힘으로, 진실이 거짓으로, 이유 따윈 없는 폭력으로 늘 괴롭던 그에게 출생의 비밀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 조차도 믿을 수 없는 거짓? 거짓을 알려주는 방식조차도 너무나 불친절한 세상에 대한 무한한 분노?




그러나 조커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갖은 불행을 겪은 그가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방식이 변화했다는 진부한 인과관계라고 보긴 무리스럽다. 오히려, 애당초 지하철 살인을 저질렀을 때 그가 느낀, 아니 '못 느낀' 죄책감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맞지 않을까.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잣대,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가 느낀 감정은 그 잣대로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살인을 하고도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갖은 예의 없음과 폭력에 노출되어 평생 단 한순간도, Happy 한 적 없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그가 분노해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또한 아이러니하다. 그는 이제 비로소 일말의 죄책감 없이 자신에게 악을 행하던 이들을 이해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쩌면 그 이해가 조커의 탄생 지점 인지도 모르겠다. 떄리고, 부시고, 죽이고, 그 모든 행위를 하는 인간이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를 부정한다면, 인간이 악을 저지르는데 망설여야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라도 죽이면 된다. '악'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고 이후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라고 정의된다면, 그, 조커와 그를 영웅시하던 시위대들에게 살인과 방화, 때리고 부시고 죽이는 그 모든 행위는 악이 아니니까.



이런 디스토피아적 결론은 감당하기 힘드니 세상의 잣대 내에서 자신의 행위와 결과를 평가하고 정의하는 것이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될 필요는 없다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오늘 밤,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나의 머리는 너무 골치가 아프고, 사실은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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