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일로 화가 나기 시작했는데 그 분노가 너무 커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분노를 느낄 때의 특유의 그 몸의 반응. 심장이 갑자기 뒤틀리는 것 같고 몸이 불에 덴 듯 어찌할 바를 모른다. 머리는 이미 이성과 분리되어 제어가 되지 않고 그때부터 입에서 나오는 말과 몸의 행동은 스스로의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분노조절장애. 그 순간을 겪고 나면 - 겪을 때는 아니다. 그 순간에는 자각할 수 있는 여력 따위가 없으므로 - 늘 떠올리는 단어다. 아. 나는 혹시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 확실한데.
과거에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후회하기에 급급했다. 그 후회의 자괴감과 헛헛함에 대한 방어기제는 내 분노에 대한 합리화로 이어졌다. 그 미칠 것 같았던 자신의 상황을 주변 지인들에게나 혹은 스스로에게 열심히 설명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합리화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법. 결국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한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학하다 그에 따른 우울을 한바탕 겪어내야 상황을 간신히 종결하곤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것은 그 순간을 겪은 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회로 점철되는 순간들을 다시 복기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에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어.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등등. 이런 질문들을 반복하다 보면 어떨 땐 분노조절장애 상황이 시작되는 패턴이랄까,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나는 '그 상황'에 빠져든다는 어떤 규칙을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1) 일단 평소에 나와 깊은 유대를 유지하는 상대방이 있고, 2) 그 상대의 말 한마디에 내가 크게 마음이 상한 상황인데 3) 상대가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상황을 방치하거나 바로잡을 생각이 없을 때. 정도? 면 일단 확실하다.
이렇게 나의 분노유발기제(?)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기제들이 왜 나타나는지를 아는 것이 사실 더 중요하지 않겠나 싶다. 그러면 혹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조금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어쨌든 합리화가 아닌 질문을 던지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것이 긍정적이고, 질문을 통해서 어떤 패턴을 발견한다면 나 자신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혹은 패턴이 아니더라도 나를 자학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이해의 방향이 생길 것이라는 점에서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자구책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계속하고 싶다.
하아.. 이렇게 글로 정리하다 보니 오히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 한 복잡하고 어려운 느낌이지만.. 이 또한 글을 쓰다 보니 얻게 된 숙제이자 나 자신을 위한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