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간

by 시선siseon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은 이제 갓, 나의 손때가 묻기 시작한 곳이다.


조금 더 넓어진 공간이지만 그것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나 말할법한 이야기 일 뿐, 지내기에 조금도 허투루 넓지도, 좁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다.


최소한의 짐들로 채워놓았지만 부족함이 없다. 퀸사이즈 매트 두 개가 넉넉하게 깔리는 큰방. 큰 창으로 적당한 볕이 잘 들어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곳. 제법 여백이 있어 옷장, 혹은 장롱을 들여야 하나 잠시 고민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큰방에 장롱이 있는 일반적인 구조가 왜 그러한지 납득이 되지 않은 까닭에 그대로 여백이 남은 공간. 그래서 넉넉한 공간.


그리고 거실 겸 주방. 넓어진 싱크대에 처음엔 절반도 짐이 채워지지 않더니 점점 먹을 것들이 들어찬다. 넓어진 개수대가 설거지 할 때마다 마음에 드는 공간. 요리 대가 없긴 하지만 버려질 위기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접이식 식탁이 이제야 요리대로 순간순간 제 몫을 한다.


그리고 주방에서 몸만 돌리면 경계 없이 이어진 거실. 처음엔 정사각형에 가깝게 느껴졌던 광활한 공간이 아이 놀이텐트와 소파가 들어서면서 길쭉한 직사각형이 되어버렸다. 아이에게 혼자만의 공간을 주고 싶었던 놀이텐트는 장난감을 모두 밀어 넣어 거실을 한결 정돈되게 하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가져다주었지만, 쓸모로 치자면 그 편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인터넷으로 산 TV장이 오배송되어 반품한 자리엔 7년째 TV를 받치고 있었던 초록 의자가 다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만큼은 멀쩡한 TV장을 하나 들여볼까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장을 한 번 놓았다 치워보니 그저 초록 의자에 감사하는 것으로 한다.


그리고 옷방. 집에서 가장 좁은 공간이지만 역시 7년째 함께하고 있는 행거가 드디어 최대로 길게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우선 합격이다. 게다가 어찌어찌 옷장까지 잘 테트리스 된 공간에 생뚱맞게 선물 받은 스타일러까지 들어섰다. 설치하고 보니 좁은 옷방에 스타일러가 어찌 들어갈까 하던 걱정은 웬걸, 스타일러가 뿜어내는 소음이 이곳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감당이 되었을지 그저 다행스럽기만 하다. 반짝반짝한 신문명의 기기가 주는 편리함이란. 그 혜택을 입을 때마다 옷방의 크기 따위가 뭣이 중하랴 싶다. 깔끔하게 관리되는 옷들이 그저 만족스러울 뿐.


그러나 딱 한 군데, 아직도 어떻게 꾸밀까 욕심이 나는 곳이 있다. 바로 서재방. 야심 차게 서재로 쓰겠다며 방 세 칸 중 중간 크기의 방에 책장 두 개만 덩그러니 두었는데, 사겠다던 책상을 차일피일 미루자니 어느새 발길이 가장 적게 향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이 있어 들어오긴 하는데 아무래도 이 방을 이렇게만 쓰기에는 아쉽다. 책상을 놓아야 최소한 노트북을 켤 때마다 상을 폈다 접었다 하지 않을 텐데, 아직 손길이 필요한 공간이다.


이전 전셋집을 나오면서 전 주인의 갑질에 학을 떼고선 이제 더 이상 내 집이 아닌 공간에 정을 주지 않겠다 했었건만, 그 결심이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무색해졌다. 그래, 매 순간, 하루하루를 채워주는 배경이 이 공간일 진대 어찌 무심할 수 있을까. 하루를 채워주는 내 공간에 그저 더 담담하게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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