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10개월을 거쳐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너무나 당연히 여겼다. 오라는 병원도 일부러 한주씩 늦춰서 가면서 원래 옛날에는 초음파도 없었다며, 첫째 엄마 주제에 애 셋은 낳은 여자처럼 당당하게 굴었다. 벌써 아이를 둘이나 건강하게 출산한 언니의 영향도 있었을 테다. 거기에 매번 병원을 갈 때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듣다 보니 점점 더 병원을 굳이 가야 하나와 같은 복 받은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무려 '복 받은 고민'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늘 삶의 과정이 쉽지 않았던 친구. 열정이나 애살, 야망이 나 못지않게 많았던 친구는 편입에 임용고시, 기간제 교사에 사기업 취업까지, 혼자 타향살이를 10년도 넘게 하면서 늘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히 지쳐버린 몸과 마음. 너덜너덜해진 영혼으로 절망의 늪에 갇힌 그녀는 가진 것을 모두 쓰고 죽어버리겠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위기의 시기에 나타났던 남자 친구. 착하고 순한 연하 남자 친구는 다행히 그녀의 삶에 위로가 되었고, 만난 지 일 년여 쯤, 애기가 생기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전업주부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시작했다.
그런 친구인데, 이제 정말 힘든 일 없이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랬던 친구인데, 임신 8개월 차에 뱃속에 아기가 문제가 생겼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듣는 순간 내 마음이 청천벽력이 내리치는 듯했는데 친구는 오죽했을까. 애써 횡설수설 위로를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안되는데. 더 힘들면 안 되는데. 그렇게 힘겹게 살다가 이제 행복해지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왜..!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크다.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애만 쓰인다. 그리고 다시 보이는 눈앞의 아들.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는데, 안일했던 마음에 괜한 채찍질을 해본다. 제발, 잘 이겨내기를. 신의 가호가 그녀와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