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재능을 0원에 드립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재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가

by 아임낫체리

몇년 전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기초 단어 배우기부터 시작해서 수 개월이 지나니 일본어 회화를 배우는 수준까지 가게 되었다. 일본어 회화 수업은 일본 오키나와 출신 원어민 선생님으로부터 50분간 이루어졌다. 50분 동안 나는 원어민 선생님께 최대한 한 마디라도 더 걸어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말을 많이 맽어볼수록 회화가 느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일본어 회화에 자신이 붙었고 수업 외의 시간에 선생님을 마주쳐도 일본어로 대화를 많이 걸어보려 했다. 일본어를 많이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당연히 있었지만, 선생님이 너무 반갑고 친근해서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인지 수업 시간 외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표정은 상냥했지만 대답은 짧았고, 대화에 대한 적극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랑 대화를 하기가 싫나? 아니면 수업을 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가?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성격인가? 그러나 일정 기간 지켜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비용 때문'이었다. 강사는 시간 단위로 급여가 산정되게 마련인데, 아마 선생님은 비용이 산정되는 시간 외의 수업은 하기 싫었던 것 같다. 그 분이 입을 열어 나랑 대화를 하는 순간 그 자체로 수업이 되기 때문이다. 내 괜한 피해의식일 수도 있지만, 수업 시간에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오히려 서운하지 않았고, 수업 외 시간에는 가급적 인사 외에는 길게 말을 걸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일본어 원어민이기 때문에 일본어가 재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어를 가르치는 기술'은 그녀가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재능이다. 한국어를 한다고 모두가 국어 선생님이 될 수는 없듯이. 그 원어민 선생님은 어쩌면 50분의 시간에 대비한 자신의 재능의 값어치가 적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50분을 벗어나는 순간 입을 꾹 닫게 되지 않았을까?


이렇듯 내 재능이 얼만큼의 가치를 지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우선 '돈'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아주 가끔은 있겠지만 대부분이 자신이 가진 재능의 정도만큼, 혹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발휘한 만큼 돈을 벌게 된다. 재능은 가치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는 돈으로 산정되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재능 기부는 어떨까? 정말 선량한 마음으로 재능을 기부하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재능 기부는 목표나 수익화를 위한 디딤돌의 단계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능을 우선 무료로 기부하여 데이터를 쌓아서 그것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 또한 하나의 이력이 되니 이상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모든 경제 활동을 하고 수익화를 위해 빌드업을 하는 것은 숨쉬듯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재능을 대하는 방향이 대부분 돈을 향해 있다. 수익화를 하기 전 단계로 무료로 작업 의뢰를 받아 포트폴리오를 쌓을 의향 또한 있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기꺼이 0원으로 내 재능을 나눌 수 없나? 재능을 만들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이 뭐 이리도 아까운가?


분명 사회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를 머리로 구상할 때도 있다. 은둔형 외톨이인 청년들을 도울 수 있는 앱 플랫폼이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플랫폼 등 사회 여러 곳에 도움을 뻗치는 무언가를 개발하는 건 당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구상의 이면에는 그러한 사회적 취지를 인정받아 정부차원의 투자를 받는 것이라던지,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아 화제가 되는 등의 콩고물에 내심 더 관심이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살아갈수록 냉정하고 뼈시리게 온 몸으로 체감하는 진실이다. 그럼에도 가끔 내 마음에 남은 단 2%의 순수가 의문을 품고 소심하게 손을 내민다. 너가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나눠줄 요량은 없는 거야? 그 사람이 그 재능으로 인해 너무 행복해진다고 해도?


인기 아이돌들은 상상도 못할 돈을 벌고 인기를 얻지만 존재만으로도 공익을 실현한다. 보는 이들을 꿈꾸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잘나고 어여쁜 사람들이 돈이란 대가가 없다면 그렇게 위험 감수해가면서까지 사람들 앞에 설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 정도의 재능은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사회에 이로운 일을 하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분명 사회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럼에도 돈 앞에서는 치사해지는 간사한 내가 가끔 뵈기가 싫다. 재능이 차고 넘치면 그 재능을 0원으로 기부할 만큼의 아량이 생길까? 아직 재능이 그릇에 덜 담겨서 그런 거 아닐까?


나는 재능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수익화에 대한 목표가 최우선이긴 하겠지만 무료로 재능을 나눌 수 있는 경험도 반드시 할 것. 그리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실천할 것.

수업 시간 외에 대화를 하지 않은 일본어 원어민 선생님을 너무나 마음 깊이 이해하지만, 나는 수업 시간 외에도 상냥하게 원어로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런 큰 그릇을 가지려면 담을 수 있는 재료부터 크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잔뜩 나누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재능을 만들자. 그리고 기꺼이 나누어 보자. '팔이' 목적 없이 0원이지만 가장 값어치있는 재능의 상품화를 해보자.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달려온 '서민1'의 세계를 확장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확장된 세계에서는 재능이 온갖 총천연색 빛깔로 더 밝게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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