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육아에도 재능이 있나요?

모든 것을 초월하는 힘이 필요한 육아 속 재능 찾기

by 아임낫체리

딸이 태어난지 오늘로 딱 9개월 19일째다. 전체 인생으로 보면 1년은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1년도 아직 미치지 못한 그 기간이 한 세기를 거쳐온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무 것도 잡지 않고 스스로 서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는 단계에 있는 딸은 이제야 제법 사람 비스무리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들어 춤을 출 줄도 알게 되었다. 이 깜찍한 악동은 300일 가깝도록 우리의 일상과 계획을 부수고 우리의 수명을 잡아 먹으며 쑥쑥 자랐다.

밤잠에 드는 것을 유독 힘들어하는 아이라서 꼬박 새벽을 새고 겨우 잠들 때도 많았고, 몇 달은 일찍 일어나서 일찍 잠들었지만 최근 다시 밤잠이 늦어지면서 잠 패턴이 다 무너졌다. 갑자기 분유를 잘 안 먹어 고생시킬 때도 있었고, 짜증이 확 늘어 하루 종일 집이 시끄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 여러 고비들을 넘겼지만 아이는 거짓말처럼 잘 컸다. 웃음도 많고, 부모에 대한 애착도 많고, 토실토실하게 살도 잘 붙었다.

나는 아직 육아의 맛보기만 해본 셈이고, 어쩌면 육아의 끝은 나나 자식 중 누구 하나가 죽는 날일테니 지금 아이가 잘 큰다고 해서 내가 '육아를 잘 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며, 아이가 지금 문제가 있더라도 당장 '육아를 못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생아를 키우고 같은 개월수의 아이를 키우는 소셜 미디어 속 엄마들을 보면서 육아의 재능에 대해 가늠하게 된다.

너무나 야무지게 집안일과 육아를 다 잘 해내는 엄마의 컨텐츠를 보면 나는 육아에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게 되다가도, 아이가 귀엽고 밝게 잘 크는 걸 보면 육아를 못하는 건 아니라는 희망도 갖게 되고 한다. 소셜미디어 속에서는 대체적으로 좋고 예쁜 모습만 포장해서 보여주니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바보짓같지만 종종 그런 비교심리가 발동해 죄의식을 갖게 되곤 한다.

아마 나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일을 다니시고 친정부모님은 멀리 사시고 남편은 회사를 다녀서 나 혼자 거의 아이를 돌봤는데 그렇게 제3자의 도움 없이 애를 키워낸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소리도 듣곤 한다.

애기 밥을 주거나 재우려고 허둥지둥 요란법석 매일 허덕이는데도 아기는 잘 크고 있다. 육아의 유일한 보상이자 징표는 아이의 성장이다. 그 성장이 어느 방향이든 오늘 하루도 아이가 사건사고 없이 잘 자라준 것이 오늘의 성과이며, 보상인 셈이다. 게다가 엄마 아빠가 어떻게 하든 아기는 엄마, 아빠밖에 모른다. 부모를 절대자로 여기고 무조건 바라보며 사랑한다. 육아에 재능이 없는 부모여도 아기는 특이한 경우 아닌 이상 부모만 바라보고 사랑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졌다.

육아는 그래서 초월적 재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반적인 재능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 육아를 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첫째가 참을성이고, 둘째가 체력이며, 셋째가 회복 탄력성이다. 이것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육아를 하게 되면 저절로 갖추게 되기도 하고, 전혀 못할 것 같은 것들을 할 줄 알게 되기도 한다.

요새는 절대 안 보던 '금쪽같은 내새끼'를 열심히 보고 있다. 너무 자극적이라서 스트레스만 받는 방송은 피하자는 주의라서 안 보던 방송 중 하나였다. 육아를 시작하기 전에 이 방송을 보면 부모도 아이도 이해되지 않고 화만 나서 거의 경멸의 시선으로 보곤 했었다. 그런데 한참 육아에 절여진 후 이 방송을 우연히 보니 완전히 달라 보였다. 금쪽이들은 대부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억울함으로 가득차 있고 부모들은 품에 쏙 안기던 아기가 금쪽이로 돌변하니 가슴이 찢어지고 짖이겨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니 이 방송을 보는 것이 더 이상 괴롭지 않게 되었다. 내 이해의 폭이 이만큼이나 넓어지다니, 놀랄 노자였다. 방송을 보며 부모 욕을 하는 부모들도 집에서는 자녀들에게 엉망인 행동과 말로 상처를 줄 게 분명하고, 자녀 욕을 하는 사람들도 부모 속을 문드러뜨린 적이 많을 것이다. 나도 절대 저렇게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육아를 해보니 일상에 치이고 치이다 보면 저와 비슷한 실수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심히 방송을 보게 되었고, 실제 공부도 되고 있다.

금쪽이 부모들이 육아에 재능이 없어서 자녀가 금쪽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육아란 문제는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고, 딱 한 가지의 결말로 단정지을 수도 없다. 그들이 자녀를 진짜 걱정하지 않고 포기했다면 체면 버려가면서까지 이 방송에 출연할까? 이렇게 저렇게 아기를 한 버젓한 사회 속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해 걱정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애쓰고, 불철주야 뛰고 허우적대는 그 과정 자체가 육아이고, 그걸 매일 해내는 것만으로도 육아에 재능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걸 포기한 사람들은 아예 재능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직 말이 통하지 않는 딸과 매일 긴긴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수시로 좌절하기도 하고, 밥 한 끼 다 먹였다고 자부심을 갖기도 하고 하며 오락가락한다. 아기가 할 줄 아는 것이 하나씩 늘어가면서 절대 반지를 가진 것 같은 묘한 충만감을 느낄 때도 있다. 온 몸과 일과가 엉망이 되더라도 아기에게 온 몸과 맘을 던져 쏟아내는 이 시간들을 온전히 견뎌내고 있는 나 자신이 놀라울 때가 많다. 내가 가진 힘이 10이라고 한다면 육아라는 절대 반지를 발휘하면 20까지도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떤 일에 재능이 없더라도 유일하게 빛날 수 있는 재능. 아이와의 하루 하루를 무사히 견뎌내고 인간으로 키워내는 재능이다. 이 아름다운 재능을 어떻게 가꾸어서 더 예쁜 절대 반지로 만들까. 그게 내가 해야 할 최우선의 고민이다.

깜찍한 악동이 천사처럼 새곤새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며 내 가슴은 어떤 말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차오른다. 요리도 살림도 잘 못하고, 놀아주는 재주도 별로 없는 아마추어 엄마이지만 무조건 나만 따라와 반짝이는 두 개의 까만 별. 으스러지도록 꽉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재능이 쑥쑥 올라가는 육아의 맛. 그 맛에 취해 오늘도 헤롱헤롱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낸다. (지금보니 나 육아에 재능이 좀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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