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꾸려가는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사는 이야기
달콤한 방학이 끝난 초등학교 2학년 개학날 아침, 아무런 규칙도 없이 널부러진 책상에서 분주하게 일기장을 찾고 있었다. 아빠도 출근하려고 양복까지 다 차려입은 채로 나서서 함께 찾다가 복창이 터졌는지 큰 소리로 혼을 냈다. 겨우겨우 책무덤 속에서 아빠가 일기장을 찾아냈고 나는 자그마한 손에 일기장을 들고 엉엉 울며 학교로 향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주 크게 혼난 날이었다.
그때 그렇게 크게 혼났음에도 정리 정돈을 못하는 버릇은 고쳐지질 않았고 나는 살림이란 것과는 거리를 둔 채 부모님의 지붕 아래서 산만한 아이인 채로 그렇게 자랐다.
아무래도 ADHD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가 병적으로 지나치다거나 남한테 피해를 주는 단계까지 가진 않다보니 별도로 병원을 간다던지 한 적은 없었고, 그 기질은 버릇이 되어 삶 곳곳에 흔적을 남기곤 했다.
30대가 되어 독립을 하고도 다행히 꾸미는 감각은 있어서 집은 예쁘게 꾸몄지만 살림을 제대로 하질 못해 애를 먹었다. 평생을 살림에 재주가 없던 난 결혼을 해서 출산을 하고 뜻밖의 전업주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육아와 살림이 내 몫이 되었고, 육아만으로도 벅찼기에 살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호기롭게 요리를 직접 해보겠다며 며칠 설치다가도 뒷수습이 안되어 다시 배달요리를 자주 시켜먹게 되기도 하고, 남편한테 종종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현재로서 내 본업이 되어버린 살림. 속이 답답해 살림이 대체 뭔가 검색까지 해봤다.
살림은 한 집안이나 국가,단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일 자체를 의미하며, 집 안에서 쓰는 사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살림이란 말 자체가 '살리다'에서 유래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지켜내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기도 한다.
살림은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이다. 살림은 나와 내 가족이 꾸려가는 삶의 형태이고 가장 기본적인 삶의 행위이다.
살림을 하루 종일 해보면 누구나 느끼는 거겠지만 해도 해도 티도 안나면서 조금이라도 안 하면 너무 티가 나버려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 행위에는 종료도 없고 끝없는 순환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 하고 못 하고가 때론 아무 의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 하고 나면 그 순간만큼이라도 속이 다 개운해지는 것. 그것이 살림의 맛이라면 맛일 것이다.
한 가정을 꾸리고나니 조직화에 특히 약한 내 adhd 기질이 너무 큰 취약점이 되었다. 좀만 정신이 약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도 비슷하게 어수선해져서 아예 주말에 몰아서 종일 대청소를 해야할 때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어수선한 집 때문에 정신까지 더 어수선해져서 스트레스가 오히려 더 강화된다.
삶은 이렇게 살림을 못하는데도 살아진다. 사회에서의 나는 멀끔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으니.
그러나 살림이 부재한 삶은 꽤나 어수선하다. 정돈되지 않은 것들이 점차 쌓이더니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삶을 짓누를 만큼의 무게로 일거리가 쌓여버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게 되는데 거기서 또 새로운 일거리는 무한으로 추가가 되는 게 바로 살림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아침에 다짐을 한다. 오늘은 할 거야, 오늘은 할 거야 하면서. 최근 나는 삶과 살림이 서로 아주 큰 영향을 주고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루 하루 살아지는 것 그 자체가 살림이고, 살림을 해나가는 것은 내 삶을 삶답게 만드는 필수 행위이니 피부처럼 당연하게 여겨야 함을 느낀다.
집이 어수선해져도 마음 먹고 한 번 제대로 치웠다가 다시 또 어수선해지고 하는 것들이 실제 내 삶의 궤적하고 너무 비슷해서 살림은 확실히 그 사람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지 않은가 싶다. 내 거울은 지금도 먼지와 기스가 자욱하다. 그럼에도 어설프게나마 먼지를 걷어낼 마음을 먹고 예쁜 먼지털이를 고르는 것. 안 하는 것 같아도 난 매일 살림을 하고 있다.
살림에 재능이 없어도 살아지는 삶이었다. 그런데 이젠 살림에 재능이 제대로 붙어야 하는 삶이 주어졌다. 나는 내 삶을 왜 이렇게 안일하게 대하는가. 왜 가꾸어주고 물을 주지 않는가. 이런 반성부터 시작해본다. 살아가는 재능 살림, 가장 키우기 어려웠던 그 재능을 키우려 야심차게 소매를 걷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