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재능에 질투가 날 때

by 아임낫체리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볼때면 경외감이 먼저 들지만 박탈감이나 질투심같은 부정적인 감정 또한 느끼게 된다. 특히 내가 하고 있는 분야나 잘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탁월한 재주가 있거나 나보다 앞서는 사람을 보면 더 그 감정이 강렬해지는데 개인적으로 강렬한 감정이 드는 걸 괴로워하는 타입이라 그런 경험 자체를 기피하곤 한다.

나보다 우위에 있는 비교군이 생기는 것은 좋은 동기 부여가 될 법도 한데, 나는 그게 좀 불편했다. 따라잡거나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과 불안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질투가 나고 승부욕이 생기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도 들었다.

평소 호승심이 강하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기질은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내가 하거나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글부글 속이 끓었다. 그 화의 방향은 아마도 나를 향한 것이었다. 왜 이런 수준으로 따라잡지 못하나? 나는 왜 이 정도 수준이 되기 위해 분발하지 못하나?

열등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감정이 내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었냐 하면 그렇게 썩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들의 재능을 인정하고 나도 평행선의 위치에서 발전을 위해 정진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져야 하는데 그것을 직면하기가 불편해 외면했기 때문이다. 어짜피 어느 분야든 여러 개의 별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빛날 수밖에 없는 건데 내 세상에서는 하나의 별만 빛나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같은 분야의 재능들을 탐색해보거나 함께하는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등의 경험이 부족해 시야가 좁아졌던 탓이었다. 상호 발전을 노리기보다 견제를 하게 되는 마음부터 들었다. 그런 저열한 경쟁심을 재능을 키울 기폭제로 썼다면 지금쯤 어마어마한 경험치와 결과물이 쌓였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왜 재능있는 자를 보고 화가 나고 질투가 날까? 어느날 외면하고 싶던 심연을 한 번 들추어보았고 마음의 문을 두드려 질문해 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내린 답은 독자적으로 빛날 힘이 부족해서였다. 내 재능을 다듬어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완성한 상태라면 아마 그런 경쟁심과 열등감은 들지 않을 거다. 내가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누군가는 스킬을 더 익히고 탐구과정을 거쳐 더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더 있어서였다.

어느 정도 하게 될 줄 알면 거기서 더 욕심을 내지 않고 한 눈을 파는 게 습성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여러 살아온 궤적을 통해 자기 신뢰감이 떨어져 경쟁에 뛰어든다고 하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 경쟁 속에서 도태될까봐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경쟁이 필요한 일들에 애초에 발을 담그질 않기도 했다.

누군가만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마라톤 레이스가 멀리서 보면 그저 여러 재능들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장이 될 수도 있다.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있는데 지금이 그럴 때인 것 같다. 일을 쉬고 육아를 하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때.

이것은 자기 반성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결의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을 나만 잘할 수는 없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고 그 사람이 내 주변인이 될 수도 있다.

마라톤에는 엄연히 등수가 있지만 그것에 참여하고 완주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과감하게 레이스에 참여하되 나만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서 앞으로 정진할 것. 그러다보면 타인의 재능은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고 반사시켜 더 풍성하고 빛나게 만들 재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나의 오리지널을 찾자. 그리고 용기있게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나만의 빛을 내자. 그러면 경쟁력 또한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고 여러 갈래의 전문성 속에서 나만의 전문성이 생길 것이다. 옆에서 빠르게 달리는 자에게 다리를 걸거나 밀치지 않고 격려하고 물을 건네주자. 그러면 내 레이스에도 많은 격려가 쏟아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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