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남편과 대판 싸우고 둘 다 잠은 얼마 자지 못한 채로 아침을 맞았다. 결혼생활 하면서 규모로 치면 2번째로 큰 싸움이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일 때문이었는데 싸움은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만 남아서 본질적인 원인이 뭐였는지조차 희미해지는 소모적인 일이었다. 내가 생각 좀 해보겠다며 안방에 가서 싸움은 종료되었고, 남편은 과격했던 언행을 사과했지만 너무 늦은 새벽이라 대충 마무리도 짓지 못한 채 둘 다 잠들어버렸다.
'내가 왜 6살이나 어린 철없는 놈을 만나서 이 고생이야. 오빠였으면 분명 감싸줬을텐데.'
나는 새우처럼 옆으로 누워서 이런 의미없는 하소연을 속으로 했다. 남편이 6살 어리다고 하면 누구나 다 똑같은 말을 했다.
"능력 좋네."
그러나 나는 가끔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걸 괜히 불평삼곤 했다. 6살 연상인 사람이어도 어차피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같은 문제는 발생했을텐데 괜한 화풀이 대상을 찾는 것이었다.
남편은 잠을 얼마 자지 못해 토끼처럼 눈이 뻘개진 채로 출근했고, 나도 부서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켜서 아기 기저귀를 갈았다. 하필 아기 사경 치료를 위해 병원 재활치료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둘은 마음에 남은 앙금을 뒤로 숨긴 채 평소처럼 메신저를 했다. 평소보다는 더 무미건조하고 뜨문뜨문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생존 신고를 하고 무사히 병원에 다녀왔다고 인증 사진도 보냈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남편이 녹초가 된 채로 집에 왔고, 막상 남편 얼굴을 보니 싸우며 느꼈던 서운함과 실망감이 욱하고 올라와 시선을 피하게 됐다. 남편도 아직 풀리지 않은 게 있는지 서먹한 기운이었다. 같이 식탁에 앉아 말없이 저녁 식사를 하고 각자 할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냐며 나지막이 물었고, 나는 그냥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렇다고 둘러댔다.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않은 채였다. 남편은 내 건조한 반응에 삐졌는지 안방으로 쏙 들어가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한 김 빠진 기분으로 아기를 돌보다 겨우 재워놓고 나서 소등을 하고 집안일을 하는데 갑자기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누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메신저로 메시지가 하나 와있었는데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동공이 확장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한테 연락이 오면 그의 이름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단어인 것처럼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두 눈을 의심할 만한 이름이었다.
남편처럼 딱 6살 어린 '아는 남자 동생'이었다. 연락이 온 건 약 6년만이었다.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고, 나는 이태원역에 서있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한창 방황하고 있던 난 아는 오빠가 이태원에 차린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셨다. 친구와 함께 갔었는데 친구는 중간에 어디로 가버리고 나 혼자 남아 마시고 있었다. 거의 아침에 가까운 이른 새벽이 되었고 옆자리에서는 한 애띤 얼굴의 청년이 차콜색 코트를 입은 채로 혼자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었다. 취기가 있던 나는 평소 그런 용기가 있는 편은 아닌데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같이 마시자고.
그렇게 우연하게 우리는 처음 만났고 몇 번의 데이트를 했다. 그는 대전에서 혼자 올라와 지내면서 배우를 꿈꾸는 청년이었다. 혼자 독립을 해서 지내니 연고가 없어 외롭고 불안한 상황이었고, 나에게 뭔가 의지가 된다고 했었다. 친누나가 있다보니 누나인 내가 좀 더 마음 편해지는 게 있다고. 나 또한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아 외롭고 불안한 상태여서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남자 형제가 있지 않고 여중 여고를 나오는 바람에 남자 동생이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늘 남자 동생을 갖고 싶은 로망이 있었고, 그애가 누나처럼 의지가 된다 하니 정말 남동생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남녀로서 데이트도 하니 참으로 이상한 관계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심심찮게 싸웠다. 사귀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깊이 썸을 타는 것도 아니었고, 잠자리만 하는 것도, 친남매인 것도 아닌 이상한 관계였는데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로 싸우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크게 싸우고 다신 보지 말자고 해서 연락을 끊었었다. 그런데도 자꾸 생각났다. 연인이 그리워지는 느낌보다는 의붓 남동생과 절연한 기분에 가까웠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을 할쯤 그의 전화를 받았다.
"누나, 보고싶어."
"...나도."
둘 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다시 만났고 그는 바로 회사쪽으로 찾아와 퇴근하고 함께 있자고 했지만 나는 어렵게 거절하고 집으로 향했다. 자꾸 마음이 약해지게 무장해제시키는 게 싫었다. 다른 이성이었다면 더 단호했을 테지만 형제처럼 정이 가서 신경이 쓰였던 그 애였기 때문에 그 형태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관계의 끈을 놔야할 것 같았다. 남자 여자의 관계도 아니고 혈연도 아니고 쾌락을 추구하는 관계도 아닌 어느 선상에도 없는 그 관계를 이어가면 둘 다에게 해로울 것 같았다.
그렇게 그 애는 몇 번을 단호하게 맘 먹은 나의 맘을 무너뜨렸고 그렇게 몇 번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다가 우리는 다신 보지 않게 되었다. 마무리도 그리 깔끔하진 않았다. 안 좋게 싸우는 식으로 마무리가 되긴 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 어떻게 끝이 난 건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냥 둘 다 인간으로서의 절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처절함으로 엮였고, 그 처절함이 진저리가 나서 벗어나고 싶어한 거였을 거다.
그렇게 지저분하게 끝났는데도 내 기억에서는 아직 좋은 사람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좋은 동생'으로. 그 좋은 동생한테 6년만에 온 연락이었다.
나는 아기를 키우며 잘 지낸다고 답했고, 그는 결혼해서 부럽다고 했다. 나는 너도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했고, 그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원래 내 원칙상은 답도 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기분이 울적하기도 했고, 그 연락이 너무 반가워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 만난 이후로 만난 여자들이 다 누나같았어. 돌아보니 누나가 취향이 되었던 것 같아."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분명 둘은 남녀로서 데이트도 했는데도 '이 자식이 날 진짜 여자로 봤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계속 진짜 남동생같았고, 좋은 동생으로 기억에 남는다며 은연중에 선을 그었다. 그 애는 보고싶지만 이제 못보겠네, 라며 약간 떠보듯 말을 했고, 나는 남편이 있어 앞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누구든 연락하면 받아줬을 관계였지만 손 내밀지 않은 게 우리 운명인 거지."
나는 보고싶다는 말에 급하게 이런 답을 보냈다. 뭐 특별한 일 생기면 가끔 연락해, 라고 말하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자 그 애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연락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럼에도 보고싶다는 얘기였겠지.
"경조사겠지?"
네가 결혼할 때, 라고 차마 말하진 못했다. 그는 내 말뜻을 다 알아들었고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경쾌한듯 경쾌하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뭔가 속이 울렁였다. 오랜만에 여자로서의 나를 기억하게 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뜻밖의 놀라운 인물과 대화를 해서일 수도 있고 여러모로 울렁이는 감정이었다.
그러다 생리대를 찾으러 서랍을 열었다. 이틀 전 생리가 터졌는데 생리대가 없다고 하자 남편이 부리나케 뛰어나가 사온 생리대였다. 생리대를 한 장 집어서 손에 꼭 쥐었다. 약간의 죄의식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똑같이 6살 어린 남동생이고 똑같이 형제애와 사랑이 교차하던 관계. 그러나 이태원역에서 나는 한 대를 떠나보내고 다음 차에 올라탔다. 운명이 묘하게 지하철처럼 교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앞차를 탔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됐을까. 다음 차를 탔기 때문에 안전하게 내 옆에 남편이 있고, 토끼같은 딸이 새곤새곤 자고 있는 현재가 존재하는 거겠지.
나는 남편이 사다준 생리대를 꽉 쥐고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졌다. 이 결혼 생활을 잘 이어가기 위해 더 인내하고 더 그릇을 키우겠다는 결의를. 그리곤 누워있는 남편의 옆에 누워서 그를 꽉 안았다. 남편도 나를 으스러질듯 안았다. 다른 남자의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살짝 울렁였다는 것에 죄의식도 살짝 들어서 그만큼 더 꽉 끌어안았다.
지금 이 자리에 남편이 아닌 그 애가, 아님 다른 또 누군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 자리에 남편이 있다는 게 더 귀중해졌다. 내 모든 선택과 운명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낸 지금이었다. 앞으로도 종종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남편과 결혼한 것을 후회할 것이고, 다시금 결연한 다짐을 하며 끌어안을 것이다.
남편은 우선 남자이지만, 때론 귀여운 남동생이기도 하다. 나한테 폭 기대어 애교도 부릴 줄 아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나는 교차로에서 다른 길을 택했다. 또 다른 멀리 지내는 남동생이 남편을 더 꽉 안으라고 보내온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왜인지 남편의 철없는 투정이 더 듣고 싶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