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라는 수험

by 아임낫체리

곧 이사가는 아파트 단지 상가 바로 옆에 성당이 있다. 성당은 각 동마다 보통 1개에서 많으면 2~3개가 있기 마련인데 보통 동단위로 1개 정도 있으니 꽤 많이 걸어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코앞에 성당이 있다니 조금 놀랐다. 남편이 성당만 보면 나에게 하는 농담이 있다.

"여보는 성당에서 블랙리스트로 등제되어 있을 거야."

4년 전 여름, 나는 처음으로 성당에 가게 되었다. 몇 년을 동네 친구와 만날 때마다 '우리 성당이나 다녀볼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하지만 평생을 종교와 무관하게 살아온 우리는 부담돼서 접근조차 못했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 종교 근처에 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불현듯 성당을 다니고 싶어졌다. 그때는 가정을 꾸리지도 않았었고, 현재의 남편과 연애는 하되 미래는 약속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당시에는 살아가는 데 어떤 안정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귀신에 홀린듯이 성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성당을 다녀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성당에서는 마침 예비 신자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있었다며 일정을 알려주었다. 나는 쭈뼛대며 일정에 맞춰 성당에 방문했고, 예비 신자 대여섯명 정도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키가 아담하고 안경을 쓴 수녀님께서 고운 목소리로 예비 신자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그 주를 시작으로 6개월간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한 후 세례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거였다. 원래는 1년 과정인데 이번 기수는 조금 더 속성으로 진행이 된다고 했다. 성당의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를 포함한 예비 신자들은 뭔가 다 풀이 죽어 있었다.

나는 긴가민가하며 매주 일요일마다 봉사자분이 진행하는 3시간 길이의 예비 신자 수업을 듣고 미사까지 참여했다. 일요일은 꼬박 4시간 정도를 성당에 쏟는 것이었다.

첫 수업에서 성당을 다니게 된 계기에 대해서 예비 신자들과 봉사자가 대화를 나눴는데 다들 기구한 사연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조카가 어린 나이에 사망해서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어 성당에 찾아오게 됐고, 누군가는 우울증이 심해서 찾아오게 됐다. 나는 별다른 뜻이 없었기 때문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상에서 불안함이 있어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거창한 이유가 없어 민망하긴 했지만 성당의 성격은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분위기여서 이 정도로 자유로워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나와 함께 기나긴 예비 신자 수업을 듣던 사람들은 주가 지날 때마다 한 두 명씩 사라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단 3명만 남아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일요일마다 무슨 회사가는 것처럼 성당을 찾아갔고 꾸역꾸역 4시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어쩌다보니 이미 몇 시간씩 수업을 듣고 미사에 참여하는 날들이 쌓여갔고, 결석이 잦으면 세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 정말 가기 싫은 날이 많음에도 겨우 몸을 일으켜 성당으로 향했다. 미사 시간에는 기도문을 외우지 못해서 눈을 감고 기도하다가 힐끔힐끔 실눈을 뜨고 옆사람을 보며 인사나 일어서고 앉는 타이밍을 맞추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세례라는 자격증 시험을 보는 수험생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무엇을 위해 성당을 왔었는지, 성당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본분은 다 잊어버린채 그 목표에 함몰되어 버렸다. 몇 달이 지나니 보상심리까지 생겼다. 매주 소중한 주말을 반납하고 다녔는데 세례만큼은 꼭 받아야지, 하는.

나와 같은 시간에 예비 신자 수업을 들은 2명의 예비 신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착실히 성당에 다녔고 마음 깊이 종교를 향하는 뜻도 있어보였다.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 때문인지, 모두의 성향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끝까지 친해지지 않았고 데면데면했다.

6개월의 예비 신자 과정 동안 서울에 있는 성당들을 방문하는 성지순례도 하고, 신부님의 집에 방문해서 면담하는 시간도 가졌다. 신부님은 금욕을 하시는 대신 소주로 그 한을 푸시는듯 했다. 소주를 정수기처럼 따라주는 전용 디스펜서까지 소주병에 설치해놓고 드시는 분이었다. 위트있게 장난을 치시곤 했지만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통해 주임신부가 되는 과정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신부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초인적인 인내를 요구하는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신부님은 시종일관 농담을 하시다 꼭 마무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다.

나는 그 길다면 긴 기간 안에 내 마음 속에서 믿음이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십번의 기도를 했고, 수시간의 수업을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리송했고, 믿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불신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세례를 받고야 말겠다는 목적의식만 남아있었다.

세례를 받기 전 처음 해본 고해성사에서도 겉핥기식의 고백만 했고, 그날까지도 성당에서 듣고 보는 모든 것들이 아리송했다. 고생끝에 드디어 세례식날이 되었고 나는 '나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 날 처음 보게 된 대모님이 축복한다며 다양한 선물을 주었다.

군대에서 초코파이를 받기 위해 간이 세례를 받아 '프란치스코'가 된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함께 방문했고, 세례식과 미사 과정을 함께 들었다. 그는 성당의 모든 것들을 대단히 불편해해서 한시 빨리 나가고 싶어했다. 나는 그렇게 나가고 싶어하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성당을 벗어났고 2~3번 정도 방문하고 다신 성당을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그 후로도 종종 수험생활 하듯 세례만 받고 냉담자가 된 나를 놀렸다. 나도 같이 웃긴 했지만 어딘가 마음에 부채 의식이 생기긴 했다. 성당은 역시나 내가 방문하지 않는다고 해서 찾지도 않는 자유로운 곳이었지만, 괜히 죄지은 기분까지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헛된 마음을 품고 다니는 것도 죄라면 죄일까?

곧 이사갈 아파트의 주변 인프라를 살펴보며 성당에 다시 다녀볼까,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딸에게 세례를 시켜주고 싶은 욕심도 조금 생겼다.

내가 성당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뭐였고, 무엇을 얻었을까? 분명 후회되지는 않는 시간들인데,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내 생각의 회로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하루는 수녀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성당을 처음 찾을 때는 어떤 이유가 있어 끌리듯 찾아오게 된다고. 본인이 이유를 잘 모르더라도 찾아오게 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그 말은 분명 맞을 것이었다. 나는 구원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신앙심이 깊어지길 원한 것도 아니었고, 강한 소속감을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 어떤 영혼의 이끌림이 있었다. 생각보다 고된 세례의 과정 때문에 생각보다 평안을 얻거나 마음의 고요를 찾지도 못했지만, 내면의 어느 부분이 조금 채워지는 느낌이 분명 있었다.

세례라는 수험에서 합격한 내가 다시 성당을 다닌다면 무엇을 위해 다닐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목적부터 찾는 나의 사고방식이 도무지 종교인다운 사고가 아닌 것 같긴 하다. 집중을 위해 스타벅스를 찾듯이 나의 어떤 내면의 숙제를 위해 장소를 대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수녀님의 말씀대로 성당이 이유 있는 사람을 저절로 이끄는 것이라면 어쩌면 나를 이끌기 위해 집의 코앞에 위치하게 된 걸 수도 있다.

나는 이사를 간 주말에 딸을 데리고 성당을 찾기로 마음 먹었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다. 그냥 가고 싶으니 가게 되는 것이다. 부담없이 찾아가고 오가보려 한다. 성당이 자꾸 나를 부르는 이유를 알고 싶기도 하다. 아무 이유가 없을 수도 있고 그냥 쉬었다 가라는 걸 수도 있다. 자유롭게 언제든 갈 곳이 생긴다는 것은 은근히 안도감이 드는 일이었다. 오래 안 찾는다고 해서 나를 내쫓지 않는 곳. 어쩌면 그런 데서 얻는 안정감이 좋은 걸 지도? 어찌됐든 스케줄러를 펴서 이사가는 주 일요일 칸에 성당을 그렸다. 나의 사짜 신도 생활 속에서 어떤 충만함이 생기길 어설프게나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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