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5분 대기조의 육아일기

by 아임낫체리

오늘로 딱 10개월 5일을 맞은 딸은 요새 한창 걸음마 시동을 걸고 있다. 아무 것도 잡지 않고 서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무언가를 잡고 계속해서 옆으로 이동하거나 무언가 딛고 올라서려 한다. 남편이랑 나는 걸음마 5분 대기조가 되어 상시로 홈캠을 켜놓고 그 순간만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아무 것도 붙잡지 않고 서서 한 발을 떼는 것이 겁이 나는지 나를 향해 오고 싶으면 한 번 주저 앉아서 기어온 다음에 다시 일어선다.

아기를 키우는 건 꼭 포켓몬을 잡는 것 같다. 진화를 위한 퀘스트들이 주어져있고 그것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포켓몬 도감이 풍부하게 채워지는 것이다. 심지어 점차적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급작스럽게 진화하곤 해서 정말이지 포켓몬같다. 특히 걸음마를 하게 된다는 것은 가장 눈에 띄는 진화의 단계라서 마치 개벽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요새는 돌잔치 준비로 분주한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곧 있으면 딸의 첫 생일이라니. 내 생일을 딱 일주일 앞두고 태어난 딸은 이제야 제법 인간 같아졌다.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대며 트월킹도 할 줄 알고, 푸세식 변기에 앉듯이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활발히 움직이는 근육도, 토실토실한 볼살도, 무조건 부모에게만 들러붙어 있으려는 습성도 모두 우리가 만들었다. 10개월을 하루도 놓지 않고 꾸준히 화분에 물주듯 가꿔온 것이다.

결혼도 하기 전 아기를 키우는 지인이 그런 말을 했었다. 아기를 키우면 정말 정신 없고 힘든데 계속해서 해야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는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꾸준히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주는 충만함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나는 아기를 키우면서 출산 후 극초기 아닌 이상 우울감은 잘 느끼질 못했다. 너무 정신이 없고 고되게 하루 하루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확한 목표가 생기는 것도 이유이다.

아기를 키우면서 제 1의 목표는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다. 기본 조건이자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필수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시킬 것, 몸을 청결하게 유지해줄 것, 충분한 수면을 할 수 있게 도울 것, 필수 예방 접종과 영유아 검진을 시기에 맞게 잘 체크할 것 등등. 돌 미만의 아기를 키우는 과정은 사실 이게 다다. 그럼에도 이 기본을 하기 위해 부모는 명줄이 줄어든다.

이유식을 먹고부터 아기는 밥을 온몸으로 먹는다. 나름대로의 자율성이 생겨서 밥을 직접 집어서 먹고 싶어 하기도 하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밥 받아 먹는걸 영 좀쑤셔 한다. 그래서 정말 사명을 걸고 동네 방네 따라 다니면서 먹인다. 이 시기부터는 먹이는 일이 생각보다도 강도가 쎈 육체 노동이 되어버린다. 이 한 끼를 양만큼 기필코 다 먹여 '완밥' 시키리라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매일 달겨드는 내 자신이 안쓰럽기도 기특하기도 한 요즘이다.

그리고 부모와 애착이 형성된 이후의 아기는 정말이지 온 몸을 던져 애정을 갈구한다. 신기할 정도로 우리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관심과 케어를 요구한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처럼 보일 만큼 애처롭다. 현재로서는 형제도 없고 나도 거의 혼자 돌보는 시간이 긴 지라 내가 할 일도 하면서 놀아주는 정도로는 만족이 안될 것이다. 그래서 때론 혼자 놀게 되는데 그때마다 너무 안쓰럽다. 말도 안 통하고 수준도 안 맞는 엄마가 놀아주고 애정을 줘도 얼마나 부족할까. 특히 밤잠을 재울 땐 이미 체력이 방전되어 있어서 더 잘 못 놀아주게 되는데 그렇게 겨우 밤잠을 재우고 아침에 깨어나면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 꽉 안아주게 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아주 고되다. 밑빠진 독일지라도 그렇게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퍼붓는 것이 육아이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하게 된다. 아무리 약하고 나태한 사람이라도 될 때까지 뭐라도 해보게 된다.

나 또한 고되지만 매일 뭐라도 해본다. 아기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돌아다니고 불편을 제거하려고 필사적이 된다. 그렇게 나는 어설프게나마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

아기가 걷게 된다는 것은 부모에게 아주 남다른 의미이다. 걸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한 발을 직접 내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넓은 세계로 향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자립의 토양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다.

나는 요새 미래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한다. 매일 장난으로 아이돌이 되라고 말하지만 당장은 그런 먼 미래까지 그림을 그리긴 어렵다. 그저 이것만큼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며 가르쳐줄 수 있는 것들을 찾을 뿐이다.

내가 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회복력이다.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나도 다시 서서 걸어갈 수 있는 회복력. 나는 어릴 때 워낙 겁이 많아서 두 발 자전거를 비롯해서 제대로 못 배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전부 넘어지거나 다치는 게 두려워서였다. 그렇게 자란 나는 회복력이 약해서 한동안 고생을 참 많이 했었다. 그 후 회복력을 키우려고 부단히 애써서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여전히 두발 자전거는 못 탄다.

부모는 넘어지고 실패한 자녀가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게 기꺼이 밟혀줄 토양이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 사람을 다시 재기할 수 있게 만들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딸이 혼란을 겪고 온 우주를 헤매이더라도 다시 안착하려 하면 발을 디딜 수 있는 곳. 그게 내가 되었으면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기도 하고.

딸이 내게 걸어오며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일상이 한층 청량해졌다. 오늘도 아주 고되었고, 내일도 고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티고 뭐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이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것 같다. 딸은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어준다. 나는 딸의 내일을 만든다. 이런 필연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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