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

2. 영어 시간

by 서로소

"엄마 엄마"

"왜"

"나 오늘 영어시간에 10초 안에 영단어 10개 말하기 했는데 통과했어. 엄마도 해 봐."

"10초 안에 영단어 10개?"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이래 봬도 영문학 전공한 여자. 도전한다.

"red yellow blue brown 또.. 어버버."

"10초 끝!"

"뭐?"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다. 순발력도 필요한 것 같다.

"넌 뭐 했는데 통과했어?"

"one two three four five six seven eight nine ten!"

띠용.. 생각지도 못한 전개다.

"그거 해도 돼?"

"왜 안 돼? 다 영어 단어잖아."

영어 단어 맞긴 하는데 틀린 것은 아닌데 뭔가 기발한데.. 흠. 이거 되긴 되는 거니까 영어 선생님도 통과시켜준 거겠지?

영어 선생님도 놀라며 "패스!"를 외쳤단다.

놀랄만하지. 키운 나도 생각지도 못했으니.


삑삑삑.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자마자 나는 문 앞에 서서 남편에게 문제를 냈다.

"남편, 10초 안에 영단어 10개 말해봐! 자, 시작!"

어리둥절하던 남편이

"one two three four five six seven eight nine ten!"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당신들. 뇌를 ctrl+c 하고 ctrl + v 해서 복사 붙여 넣기 한 거야? 어쩌면 똑같이 말해?

너무 신기하네. 나 얘가 아까 그렇게 말해서 놀랐거든. 근데 당신도 똑같이 말하니까 너무 소름이야."

둘은 깔깔거리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남편은 역시 내 아들이라며 좋아한다.


한 번씩 정말 둘이 너무나 비슷하게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얼굴은 나를 많이 닮아서 나의 남자판이라고 친구들이 놀렸는데 그 외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식성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남편을 닮은 구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뇌도 정말 비슷한 것인가?

'흠, 있을지 모르는 미래의 며느리, 미리 미안해. A/S는 사실 어려워. 사랑으로 많이 보듬어줘.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TT 아이 아빠만으로도 버거워.'

남편은 10초 안에 말할 수 있는 단어가 그것뿐이라며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아닐 거라고 내일 회사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다음 날, 남편의 회사에서는 10초 안에 10개의 영단어 말하기 시간이 있었더랬다. 퇴근 후 한 명도 one two three four... 를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답했다.

"그것 봐. 없지?"


사랑해서 결혼 한 남편과 나를 골고루 닮은 아이가 어릴 때도 신기하고 키우면서도 신기할 때가 많다. 개구리 같은 발가락은 나를 닮고 검은 포도알 같은 까만 눈동자는 아빠를 빼닮았다. 구석구석 보면 오묘하게 엄마 아빠를 닮은 자식이라는 존재가 나와는 다른 인격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 걸어 다니는 것조차가 기적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환경의 오염 때문인지 주변에 난임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아이는 3억 분의 1의 확률로 수정된 신의 선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로또 맞을 확률을 넘어서 태어난 부모를 빼닮은 아이다.


로또 맞을 확률을 뚫고 태어난 아들은 내가 뭘 흘리고 실수하면 그렇게 깔깔거리며 웃고 좋아한다. 엄마의 실수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로 인해 아이는 완벽한 부모보다 실수도 하고 부족한 부모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학창 시절, 만우절날 선생님들한테 장난친 이야기며 야자시간에 친구들하고 몰래 도망 나가 떡볶이 먹고 온 이야기를 해주면 즐거워하고 좋아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노력한다. 조금 덜 완벽한 부모가 되기를. 나도 실수하고 웃어넘기고 아이의 실수에도 너그럽게 웃어주는 부모이기를. '괜찮아. 엄마도 그랬어. 너보다 더 부족했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주는 더더더 부족한 내 어린 시절을 아이에게 꾸밈없이 보여주는 그런 엄마이기를 바라며 말이다.

아들, 엄마는 오늘도 덜 완벽한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ლ( ╹ ◡ ╹ )ლ

이전 01화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