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

1. 삼행시 짓기

by 서로소

저녁 먹으며 아들이 영어시간에 삼행시 짓기 같은 걸 했단다.

"주제가 뭐였는데?"

하고 물었다.

"주제? 내가 뽑았어. 컨디션 좋은 친구가 나와 제비뽑기 하랬는데 기분 좋아서 내가 손을 번쩍 들었."

"너 아침에 눈도 안 뜨고 비몽사몽 간 학교 갔잖아. 학교 가서는 기분 좋았어?"

"어!"

뭐지? 이 청소년의 기분 변화는...

그래서 뽑은 단어가 뭐였어?

"c. o. m. e. d. y."

급우들이" j야!" 하고 모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단다. d 하고 y 가 어렵다며.

"comedy?"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다. 단어는 쉬운데 은근히 어려운 알파벳 조합이다.

d로 시작하는 단어랑 y로 시작하는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

"그러게 d 하고 y가 별로 없네."

d는 desk... 또 뭐가 있지?

y는 you...

yoyo?

yogurt?

아니 그 단어로 시를 어떻게 짓.

ㅋㅋ 어려웠겠네. 아들네 급우들.. 대신 미안하다.

"넌 뭐라 했는데?"

"생각이 잘 안나.. y는 you로 한 거 같아. 음.. 뭐였더라."

"우리도 해볼까? 남편, 남편도 해 봐"


남편

c cocentrate on me

o observe on me

m microphone by me

e e-mail me

d destroy on you

y yo!


"뭐야. 문법은 맞는 거야? 나만 봐. 나한테 뭐해. 뭐 이런 버전이야? 나르시시스트 버전이잖아. 지막은 뭐 파괴 왕이야?"


c congratulations!

o oh your birthday

m money give me

e e-banking is O.K.

d do it. right now.

y you remember?


우리 남편이 삥 뜯는 거냐며 흉내내기 시작했다.

축하해 니 생일이니? 돈 내놔 이 뱅킹도 돼 지금 해 기억하지?

이런 불량 청소년 버전이라며..ㅋㅋ

갑자기 물어보니 생각이 안 나잖아. 그냥 단어 막 갖다 붙이다 보니. 해석이 저리 되나? ㅋㅋ

아들은 웃느라 숨넘어간다.


한참 웃더니 자기 시도 조금 기억난단다.

c comedy is life

이런 식이 었단다.

흠.. 녀석은 제법 시적인데.


삼행시 짓기 하느라 저녁 식사 내내 깔깔댔다. 별 것 같지 않은 놀이가 얼마나 웃기던지. 웃다가 예능신이 강림한 아들과 아빠는 나를 놀리느라

ABBA의 'money money money' 노래를 부르다 춤추다 웃다 난리가 났다.


오늘은 이렇게 웃고 떠들고 즐거운 날이지만 사실 사춘기 아들은 감정 기복이 왔다 갔다 한다. 어제는 컴퓨터 깨진 걸 숨기고 있다 내가 발견하는 바람에 혼이 나다가 사춘기 말투로 인해 더 혼이 나고 울었다. 대부분 이 시기 아이들이 말투로 부모를 속상하게 한다. 뇌가 통제가 잘 안 되는 사춘기라지만 부모는 감정이 있고 자칫 감정이 치닫으면 드라마를 찍게 된다.

'실수로 그랬다. 자기도 몰랐다. 혼날까 봐 숨겼다. 화면은 나오지 않냐.(이 말이 화를 북돋았다!)'가 아들의 주장이었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물건 간수를 제대로 하지 않은 부분은 잘못한 게 맞으니 주의 듣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이가 물건의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은데 그 생각의 전달이 사춘기 복병을 맞으니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둘려 전달되기 어려웠다. 처음에 깨진 부분을 보고 화낸 말투를 먼저 시작하였던 건 나였고 삐딱하게 대답한 건 아들이었다. 결국 야단맞는 게 속상한 아들은 울었다. 자기도 어디서 그랬는지 모른단다. 이성을 되찾아 차분하게 이야기해본다.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뭐 때문인지 깨져있고 핸드폰이나 액정을 벌써 여러 번 수리하였다. 물건을 좀 더 조심히 다루지 않은 건 잘못이 맞다. 네가 미안하다. 다음부터 조심하겠다고 했으면 네 다짐받고 잘못한 부분만 혼나고 더 이상 뭐라 안 했을 거다. 나는 별 일 아니라는 식의 너의 말투 때문에 화가 났다. 앞으로 물건 조심히 다뤄라."

이렇게 말하고 잠시 두었다. 조금 뒤 울다가 멈춘 아들은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학교 가방을 챙기고 잠이 들었다. 자주는 아니어도 이렇게 속상한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




많은 육아 책을 읽었고 사춘기 아이를 이해하려는 대비도 꽤 하였는데도 막상 아이와 대립되는 그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힘이 든다. 더 많은 인내와 지혜로 아이를 품어주고 바르게 키워야 할 텐데 내가 깜냥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는 때가 있다. 마음이 더 힘드니 차라리 몸으로 뛰어다니며 놀아주던 아이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 자꾸 아기 때 사진을 뒤적거리며 나도 잠이 든다.때로는 그 이뻤던 모습에 눈물이 콸콸 나기도 한다. 아이고, 내가 이 때는 힘들다고 했는데 지나고보니 너무 예쁘기만 한 걸 더 많이 안아줄 걸 하고 후회하며 베갯잎을 적시다 나도 잠들었다. 네가 우는 날은 나도 참 슬픈 밤이 되는 걸 아니?

사십춘기 남편도 나도 웃을 일이 많이 없는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웃고 우는 부모로서의 많은 경험을 하고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다. 얼마나 내가 부족한 인간이었는지 아이를 키우며 많이 느끼고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보물 같은 아이가 어떤 때는 애물단지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삐뚤빼뚤 쓴 쪽지 글씨만 봐도 기특하고 이쁘기도 하다. 아이다운 어리숙한 모습이 답답하다가도 또 귀엽고 예쁘다. 언제 커서 청소년이 되었나 싶다. 사랑하는 만큼 잘 키우고 싶고 그러니 속상한 걸 테지. 우리 웃고 울고 화해하며 사춘기 잘 지나가 보자.

저녁 먹고 산책길에 아들에게 어깨동무하며

"너 여자들 갱년기 무서운 거 알지? 엄마 갱년기 얼마 안 남았다. 사춘기 이기는 게 갱년기야. 조심해랏. 크크크. 나의 삼행시 잘 보았겠지? 나 무시무시한 여자야."

라고 해두었다.

두고 보아라! 크크크.

너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j야, 너는 우리의 소중한 보물이야. 잊지 마. 언제나 사랑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