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아들이랑 귀찮아 엄마 2
9. 해 봐 해 봐 어서 해 봐
"연어다. 아, 행복해."
"와, 김이다!"
그밖에 고기, 스파게티, 치킨, 초밥, 국수 등을 좋아하는 아들은 저 좋아하는 음식이 차려질 때마다 신이 난다.
참, 소박하다.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불어 나도 흐뭇하다.
어릴 적에는 맛난 음식이 다양하게 있는 뷔페가 그리 좋았는데 어느 순간 뷔페를 가도 많이 먹지도 못하고 음식을 가지러 가는 것도 귀찮아진 중년의 엄마는 음식에 많이 시큰둥해졌다.
나는 양을 조금 주더라도 누가 가져다주는 건 물론이고 하나하나 맛깔난 음식이 좋다. 귀차니즘이 따로 없다. 남편에게 이래서 맛집 맛집 하며 찾아다니다보다 한다고 두런거렸다. 소화도 느려져서 많이 먹지도 못하니 기왕 조금밖에 못 먹는 거 맛있는 데 가서 먹고 싶은 것이다. 사실 내가 한 음식만 아니면 남이 끓여주는 라면도 맛있다.
집에 좋은 커피머신이 있지만 남이 타주는 커피를 마시러 커피숍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 성장기인 아들은 뭘 먹어도 웬만하면 맛있게 먹는다. 1인 1 닭도 해치우는 무시무시한 청소년이다.
"엄마, 치킨~~~"
"또?"
치킨을 즐기지 않는 나는 세상에 태어나 여태 먹은 치킨만큼을 이번 여름 동안에 먹은 거 같다.
치킨 러버 아들은 물론 요만한 것에도 웃고 요만한 것에도 삐진다. 작은 것도 자랑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열심히 할 때도 있다.
감수성이 점점 무뎌지는 엄마는 가끔 그런 아이가 부럽다. 예민하고 순수한 모습을 지닌, 먹고 싶은 음식이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열정의 사춘기가 말이다.
추억의 만화 영심이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보고 싶고 듣고 싶어 달리고 싶고 만나고 싶어
알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 영심이 영심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달리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해 봐 해 봐 실수해도 좋아
넌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해 봐 해 봐 어서 해 봐 해 봐!"
누가 누구를 키우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 덕분에 요리가 늘었고 꽃꽂이와 수영을 배웠고 장롱면허를 꺼내어 운전을 시작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도 아이와 손잡고 다니던 도서관이 그 시작이었으니 나의 잠재된 모습을 하나둘 꺼내 준 이는 아이였다. 용기 내게 해 주었고 -엄마로 살다 보면 엄마니까 없는 용기도 내야 할 때가 있다-엄마가 잘하지 못해도 아이는 채근하지 않았다. 엄마는 다 잘하는 줄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한없이 부족한 것이 많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많이 성장했으니 도리어 내가 아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를 낳아야 철이 든다는 어른들의 말씀에는 아이를 키우며 인생의 많은 것을 배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인생에 있어 그늘보다는 행복을 많이 보여 준 아들, 부족한 엄마에게 네가 와 주어서, 그리고 함께 해주어서 고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