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그리고 장조와 단조

생의 꽃밭은 어디에

피아노 그리고 장조와 단조   

            

 짝꿍이었던 친구는 피아노를 잘 쳤다. 교실마다 풍금이 있던 80년대 국민학교에서는 음악 시간마다 선생님의 풍금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우리 반만은 선생님이 아닌 그 친구의 풍금 소리에 노래를 불렀다.

잠자리같이 큰 안경을 쓴 눈이 예쁜 그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졸라 난생처음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남동생도 같이 등록을 했던 것은 왜였는지 모르지만 그다지 원하지 않던 동생도 함께 다녔다. 아마 누나가 뭐라도 배우러 다니니 같이 따라다니라는 엄마의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우고 싶어서 다닌 피아노 학원이었기에 "도레 도레"부터 배워도 재미났고 신나서 열심히 연습했기에 진도가 쭉쭉 나갔다. 동네에 하나뿐인 피아노 학원이어서인지 피아노를 잘 치는 그 친구도 다녔다. 내가 바이엘 기초를 배우고 있을 때 친구는 쇼팽, 베토벤 같은 곡을 치고 있었다. 그 학원에서 단연 독보적이었다. 피아노 연습실 문마다 달린 조그만 창으로 슬쩍 보면 친구의 손가락은 보이지 않을 만큼 날아다녔다. 어디선가 들어본 피아노 클래식 음악이 그 친구의 피아노 방에서 내내 흘러나왔다. 5학년쯤 느지막이 시작한 피아노는 재미있었기에 진도가 빨랐고 싫증 잘 내는 내게 곧 피아노 권태기가 찾아와 몇 달을 쉬었다. 남동생은 적성에 영 안 맞는지 피아노를 그만두고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피아노가 다시 그리워진 나는 피아노 학원으로 돌아갔다. 똑딱똑딱 박자를 재어주는 메트로놈을 가져다 놓고 하농을 치고 부르크뮐러, 체르니, 피아노 명곡집 등을 치기 시작했다. 원장님은 재즈책을 가져와 피아노 코드를 알려주셨다. 뭔지 잘 모르는 옛날 곡을 코드에 맞추어 치려니 힘들어서 꾀가 나기 시작한 나는 중학교 가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피아노 코드로 반주법을 알려주시려고 했던 것인데 왜 그만두었을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부르크뮐러며 피아노 명곡집은 매우 좋아했기에 다행히 지금도 몇몇 곡을 칠 수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있다. 그만둔 뒤 배우지 못한 곡들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부르크뮐러는 음색이 슬픈 곡들이 많았고 학교에서도 장조며 단조를 배울 때 유독 단조로 된 곡들이 이상하게 좋았다. 남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좀 커서 남동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난 단조로 된 곡이 좋더라'라고 말하니 동생은 자기도 그렇다고 하였다. 이상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피아노를 배울 무렵이 아빠의 사고가 난 이후였던 영향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발랄한 음악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무렵 배우고 알게 된 곡도 많지 않았다.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음악이나 탐구생활을 방학 숙제로 하려고 교육 방송 FM104.5 주파수에 맞춰 켠 라디오에서 접하는 음악들 다였다. 그때 들은 음악들이 비발디의'사계', 그리그의 '페르귄트' 같은 클래식 곡들과 여러 팝송, 정지용의 시를 노래로 부른 '향수' 같은 곡들이다.

지금은 음악을 즐겨듣는 편은 아니다. 어느 날은 옆지기가 "너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잖아."라고 하길래" 나는 음악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아 결혼 후 육아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잘 듣지 않는다. "고 말해주었다. 연애할 때 내가 음악 CD도 곧잘 편집하여 만들어주곤 하였는데 그는 다 잊었나 보다.

고3 시절에 사춘기였는지, 우울증이었는지가 심하게 왔을 때 나는 하루 내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 테이프를 들었다. 야간 자율학습 내내 그렇게 지낸 것은 정말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음악에 영향을 잘 받는 성향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잘 몰랐다. 가을쯤 수능을 앞두고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부터 카세트는 저 멀리 던져버렸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뭔가 깨달았던 것 같다.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으로 힐링을 하면 좋으련만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기분이 한없이 즐겁기도 하고 우울의 끝으로 달려가기도 해서 아이를 키우는 데 결단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동요만 주구장창 틀었다. 아는 노래가 동요밖에 없을 정도로 듣다 보니 혼자서도 동요를 흥얼거렸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고 맑아지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육아와 평범한 일상생활을 위해 나는 마음이 평화로운 날 음악을 듣거나 너무나 힘들어 위로와 눈물이 필요한 시기에 음악을 듣는다. 힘든 날 음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가지고 있던 우울이 깊은 우물 속으로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다소 내 정신건강이 위험 수위에 다다르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컨트롤을 해야 되는 때라는 감이 온다. 그야말로 삶 전체가 단조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은 상황이 온다. 모든 노래가 내 얘기인 것만 같아 눈물이 그치지 않아 길을 걷는데도 눈물이 난다.

music off.     

음악을 틀고 자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 집 가족들은 나 때문에 그러지를 못한다. 자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나는 온전히 잠들지 못하는 가수면 상태로 음악을 계속하여 아침이 올 때까지 듣고 있거나 극도로 피곤해진 새벽에야 겨우 잠들 수 있다.

가사가 있는 슬픈 음악들은 가슴을 후벼 파서 감정의 동요가 힘들어서 피한다. 가끔 지나가다 들리는 음악이 좋아 찾아보고 듣기도 한다. 청각이 예민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음악으로 인한 감정의 예민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일상에서 또는 차 안에서 가볍게 듣는 음악이 W 호텔 등에서 틀어주는 라운지 음악, 너무 무겁지 않은 재즈 음악, 피아노곡 같은 것이다. 기분 밸런스가 좋은 맑은 날 기분이 업(up)되는 곡들을 들으면 밝은 햇살로 나가 누군가를 유쾌하게 만나고 싶다.

music on.     

내 삶이 장조가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인생이 음악처럼 장조로 흐르다가도 단조로 흘러가기도 할 것이다. 글을 쓰거나 감정이 끌어내어지는 순간이 필요할 때는 음악이 도움이 되지만 나는 감정이 요동치기에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는 힘들 것이다. 감정의 파도를 누르고 시소처럼 균형을 잘 맞추어서 언제나 아이에게 ‘사랑한다’ 말해주며 함박웃음 지어줄 수 있는 정다운 엄마로 남고 싶다.

음악은 아마 내게 늘 ‘지킬앤하이드’처럼 옆에 남아 삶에 장단조를 연주할 테지만 말이다.     

music on or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