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꽃밭은 어디에
일시적 대인기피증
요즈음 가족 이외 사람을 거의 만나고 있지 않다. 시작은 코로나19 때문이었던 듯하다. 나뿐만은 아닐 테다. 외향형인 나는 어디라도 나가야 직성이 풀려서 집 앞 공원이라도 돌아다니고 오면 기분이 나아졌다. 집에서 아무리 다양한 활동을 하더라도 집은 일터 같고 무엇보다도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는 자체가 매우 따분했다. TV를 보아도,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바깥의 모습만큼 내게 에너지를 주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모임 하는 것을 즐기던 나는 일주일 스케쥴이 꽉 차 있었다. 늘 뭔가를 배우러 다니고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공원을 걷고 커피 마시는 시간을 사랑해 마지않았다. 새로운 곳을 가거나 전시를 보거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삶의 큰 재미였고 오락이었고 행복 자체였다. 코로나19로 그 모든 것이 ‘멈춤’ 되어버리니 우울함이 밀려왔다. 코로나 블루 (Corona blue) 라고 불리는 것이 온 듯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다양한 요리를 해보거나 배달 음식을 이것저것 시켜 맛보며 즐거움을 찾아보았다. 넷플릭스에 가입하여 이것저것 시청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곧 모든 게 재미없어졌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었다. 집에 있는 거 자체가 감금 아닌 감금으로 느껴졌다. 바깥에서 자연의 변화도 느끼고 반짝이는 햇빛 내음, 흙내음도 맡고 바람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어쩌다 나가보면 벚꽃이 피어있었고 또 어쩌다 나가보면 매미가 울고 어느샌가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있었다. 그러다가 겨울이 왔는지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코로나로 사람의 일상은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연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고 잎을 떨구고 있었는데, 그 변함없는 순환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멈춤’ 속에서 보낸 일 년이 지나도 코로나19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20년이 그렇게 지나버렸다. 줌 수업으로 지쳐가는 아이와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며 살만 찌웠더랬다. 모임은 대부분 취소되었고 무엇을 배우기는 힘들었고 사람을 만나 밥을 먹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이 또한 적응하기 나름인지 긍정 회로를 돌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이제 즐겨보기로 했다. 글도 쓰고 안 보던 TV 프로그램도 보고 근처 산책도 다녔다. 집에 대소사를 이것저것 겪으며 가족들을 돌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밖으로만 돌던 내게 내실을 꾀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가족들과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사람의 안을 들여다보면 다들 지옥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속속들이 사정을 알고 나면 참 이해 못 할 것도 없는 세상살이였다. 그 깊은 속내를 어찌 다 알겠는가. 돈이 많거나 적거나 겉을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사였다.
비자발적 집순이 생활로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도 돌이켜보니 소중하고 뜻깊었다. ‘강도 높은 거리두기’로 오직 가족들과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시간을 함께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 다행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에 감사했다. 혼자 외롭게 있을 성격이 못 되었을 터였다. 이제는 나보다 훌쩍 큰 아이와 언제 다시 이렇게 삼시세끼를 같이 먹고 종일토록 함께 지내는 긴긴 시간을 가져보겠는가. 때때로 밥 먹으며 웃고 떠드는 행복한 시간이 흘러갔고 가끔 다툼이 일고 화해하는 소소한 일상이 흘렀다. 사랑하는 가족의 의미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산도 오르고 호숫가도 걷고 게임도 하고 먼 곳으로 일주일 여행 가서 널브러져 있기도 했는데 편안하고 행복했으니 말이다.
어느 무렵부터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꽤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편안하지 않으니 모임에도 잘 안 나가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를 거의 안 했다. 무슨 말을 나눠야 하는지도 다 잊은 것 같았다. 사람한테 크게 데이는 일도 있었다. 그냥 이런 때에는 마음의 고요를 유지하며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안으로 움츠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의 단단함을 다지는 시간이 온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는 그 시간에 글도 쓰고 생각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때가 왔나 보다 하고 칩거하고 있었다. 갑갑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오롯이 나에게 쓰는 시간이 내게도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인가를 찾는 시간도 있어야 하겠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이 내게도 필요한 순간이 왔구나.’ 하고 받아들이니 내 안이 평화로웠다. 그냥 그러한 시간이 내게 주어졌구나. 가만히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같은 것 말이다.
‘일시적 대인기피증’
이 또한 지나가는 나의 인생 여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