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밤 그 부엌에서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내게 착하다고 했다. 나는 착하다는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무렵 나는 갑자기 착해지지 않은 건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어쩌면.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착한 아이라고 쓴 종이를 찢어도 보았지만 아주 약간 덜 착해졌었나 보다. 여전히 선하게 살면 좋은 일들만 일어날 거라는 어설픈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사고로 장애를 가진 아버지가 한없이 안 되었고 늘 화에 둘러싸인 어머니는 그로 인한 환경 탓일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좋은 곳을 가면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유 없는 죄책감이었다. 다음번에는 여행도 잘 못 다녔던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 한다는 신념이 나를 괴롭혔다. 좋은 곳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여전히 기쁘기만 할 수 없었다. 행복할 때 마음껏 행복할 수 없는 상태에 사로잡혀 이게 무엇인지도 모른 체.
주입된 효 사상이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기엔 나에게는 안쓰러움과 모두를 구해야 한다는 구원 의식이 너무 강했다.
부모가 키워준 것에 감사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었는데 불쌍한 마음을 가지니 늪 같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 댈 뿐이었다. 내 인생과 모두의 인생이 뒤섞여 엉망진창 늪이 되어가는 것도 모른 체.
부모에게 그저 감사해하고 잘 지내면 되었는데, 나는 나와도 잘 지내지 못하고 때때로 느끼는 행복조차 죄책감에 사로잡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삶을 40여 년동안 살아왔다.
내 상상 속에서는 늘 아빠의 사고가 되풀이되곤 했고 그 일이 있기 전 가족들의 모습만이 남았다.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내 모든 노력들은 언제나 당연했다. 나의 인생과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 나는 나의 인생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원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나 역시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부모를 불쌍히 여기면 자식에게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 그 당시 알지 못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