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날 밤 부엌에서

그날 밤 부엌에서

by 서로소

"자, 이제 눈을 감으세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


나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삼십 대 언저리의 힘든 날로 또는 이 십 대의 어느 날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눈을 감고 돌아간 곳은 뜻 밖에도 12살 때의 좁은 부엌이었다.

노란 전구 밑에서 나는 방과 부엌 사이에 걸터앉아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았고 엄마는 우리를 버리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훗날 내게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아 원가족을 지키려는 나의 부단한 노력으로 또 가족에 대한 무한한 죄책감으로 끊임없이 재생되리라고는 그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떠나려는 엄마를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걱정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상담사는 내가 가족이 해체될까 봐 많이 걱정되었을 거라고 했다. 기댈 곳 없는 가정, 더 이상 마음을 기대일 곳이 없어진 나는 언제부터 그렇게 혼자 살아가야 했을까.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은 그즈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을까.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겉으로 나를 판단하고 시기 질투해도 나는 뭐라 할 수 없었다. 화조차 내지 않았다.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 인생에 대해.

나는 그냥 그들을 피하고 싶었다. 나는 혼자 살아내야 했으니까. 누군가 굉장히 독립적이라고 말했는데 그뿐이었다. 독립적이고 싶어서 독립적인 적은 없었으니까.


가정 내에서 특히 딸에게 엄마가 기댈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엄마가 딸에게 기대일수록 그 딸은 더 외로워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나는 가족들을 짊어진 채 내 인생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뿐이었다. 목표도 거창한 계획들도 사라졌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열심히 해서 성적을 잘 내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동력조차 잃었다. 미래의 내 모습 따위는 그려지지 않았으니까. 그저 편안한 상태를 바라거나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이십 대 내내 나는 외국에서 살기를 소망했다. 그것은 서른이 한참 넘어서까지 그랬다. 그때 왜 내가 그토록 안정된 이 땅을 벗어나고자 했는지 몰랐다. 어차피 여기서도 이방인처럼 사니 차라리 외국에서 이방인처럼 사는 게 뭐가 나쁠까 하는 조소 띤 물음만 던져댔다.


그날 밤 부엌에서 시작된 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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