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노점

by 서로소

추운 오후, 운동 겸 동네 한 바퀴 돌자 싶어 번화가 쪽으로 갔다. 병원 앞에 호두과자 파는 노점이 있었다. 난로도 없이 추울 텐데 노점 주인은 의자에 앉아 옆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레엔 '웃으며 살아요.'라고 적혀있었다.

추위에 종종걸음을 서두르던 나는 그 글을 보는 순간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웃으며 살아야지. 원망하고 미워해봤자 내게 도움 된 것도 없었는데, 내 마음만 괴로웠는데.

진짜 현자인가? 어쩌면 인생의 지혜인가, 연륜인가 하며 노점 수레를 지나치는데 그렇게 미소 지은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억지로라도 웃으라더니 그 말도 틀리지 않구나.

자기 연민이 나쁜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지만 그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픈 마음을 돌보는 시간도 가지고 즐거운 마음을 갖는 것도 행복의 작은 시작이겠구나. 웃음 나는 일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겠구나.

'웃으며 살아요.'는 노점 주인이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 보라고 써놓은 문구다. 웃으며 살자! 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투라면 웃으며 살아요. 는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는 심심한 위로이자 행복 전도사 같은 말투였다. 십여 년을 그곳을 지나다니고 노점수레도 하루이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오늘에서야 보다니 참 이상했다.


쾌활한 사람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진짜 밝아서 쾌활한 걸까, 아니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쾌활한 척하는 걸까. 내가 후자에 가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원래 밝은 줄 아는 사람도 많았다. 걱정 없어 보인다고, 혼자 여유 있어 보인다고 시기하는 이도 있었고 딸 많은 집 막내딸로 사랑받고 자랐을 거 같다고 흐뭇하게 바라봐주는 좋은 분도 있었다. 속으로는 다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웃어 보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보인다니 감사한 일이겠지. 힘들어 보이고 찌들어 보인다고 하면 그거는 그거대로 좋은 게 아니니까.


k강사도 그랬다. 자기 집이 힘들고 어려우니 밖에서 더 원숭이처럼 까불고 남을 웃겼다고.

마음을 숨기려고.

그래서 지나치게 명랑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고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아픔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수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보다 쾌활한 이들은 눈에 띄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에너지가 상당히 드는 데도 불구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도 풀어주고 사람들을 웃겨준다. 한바탕 웃고 나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모여든다. 함께 하면 재밌고 즐거우니까.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나. 새로운 것도 없고 맛난 음식도 별로 없는 중년쯤 되면 재미가 참 없다. 젊을 땐 먹고 싶은 게 많아 뷔페를 좋아했는데 어느새 그것도 귀찮다. 음식도 가져다주면 좋다. 귀차니즘이 몰려올 뿐 아니라 다들 누가 더 힘든지 내기하듯 한숨 나오는 이야기들이 줄 줄이다.

뷔페조차 귀찮아지는 건 다 아는 맛이기 때문이고 설렘이 줄어들기 때문이고 하고 싶은 게 줄어드는 마음 탓일 게다. 취미라도 가지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도 찾아보면 즐거울라나 싶어 여기저기 기웃댄다.

모임에 가서 큰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부럽기까지 하다. 아직 에너지가 넘치는, 그야말로 파이팅 넘치는 사람이. 소위 기가 빨린다고 하지만 여전히 펄펄 뛰는 심장을 가진 활달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모임이 잘 돌아가기도 한다. 그 시간이 즐겁고 하하 웃다가 집에 오면 웃은 덕분인지 힘이 나기도 한다. 웃음이 전염력이 있다더니 그런 것 같다.

설사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그에게 있었다한들 웃으며 사는 사람이 인생의 승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웃으며 살아요.

마음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살아가야지. 그리고 앞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야겠다.

다음에는 노점에 파는 호두과자 한 봉지 사야겠다. 웃으며 살아요라고 삶의 지혜를 알려주신 보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