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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째붕이 Mar 18. 2023

대롱대롱 청년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청년과 중년 사이에서

 술을 더 들이켜야 했다. 한두잔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지만 이걸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술이 목에 착 감기지 않는다는 거였다. 술이 영 썼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정신은 여전히 또렷한 채로 술잔에 뿌연 지문만 쌓여갔다. 이렇게 술과 데면데면 해진 이유는 거의 반년 동안 지속된 컨디션 저하 때문이었다. 독감 두번을 앓은 후 코로나19에 확진 됐다. 거의 두 달을 밤마다 콜록대느라 목에서는 쇳소리가 나고 낮에는 기력이 딸렸다. 예전에는 넥타르로 보이던 술이 이제는 독약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작년에는 위경련과 음주 더블콤보로 분수토를 쏟아대다못해 피를 토하기도 했으니, 술잔을 들어올리는 데에는 용기마저 필요했다. 술잔은 만지작거릴수록 조금씩 더 무거워졌다. 


 게이클럽에 들어가기 1시간 전이었다. 단전에서부터 텐션을 끌어모아도 20대 브라질 남자애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말까였다. 술의 도움이 절실했다. 밤이 깊자 잠자던 기침이 깨어났다. 콜록 한번에 스테미나가 한칸씩 떨어졌다. “얼굴은 절대 안나가고 넌 그냥 애들 흥 안 떨어지게 놀아주기만 하면 돼.” 며칠 전 케이팝 관련 다큐 촬영을 하는 친구가 부탁을 해 왔다. 백수 주제에 거절할 핑계도 없었거니와 노는 건 내 특기지 하는 생각에 허락했는데…. 나 지금 흥이 오르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20대에 이태원에서 자취를 하는 동안 집보다 길바닥에서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30대로 넘어와서도, 심지어 지방근무를 하던 때도 매주 금요일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하던, 프로 음주가무인이었다. 클럽에서 누님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했는데, 집에서 혼자 졸고 있을 고양이만 자꾸 보고싶었다.


B2는 그 친구들이 속한 댄스팀의 이름이었다. 케이팝이 좋아서 케이팝 커버댄스를 추는 친구들이다. 정확하게는 걸그룹 댄스만 춘다. 그게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처음에 영상을 봤을 때는, 고백건대 끝까지 보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혐오주의자들에 대한 혐오주의자라고 떠들던 나였지만, 햇살 아래서 치명적인 표정을 하고 요염하게 팔다리를 흔드는 남자들을 애써 바라보다 나는 이내 시선을 떨궜다. ‘거북한 표정을 짓는 건 옳지 못하지.’ 하는 내면의 꾸짖음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막상 내 눈 앞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마시는 그들에게서 꺼림칙한 괴짜의 모습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었다. Lucas, Kevin, Thiago, Subin, Yuri, 그들은 서로 다른 이름만큼 서로 결이 다른 친구들이었다. 그들을 묶어 준 것은 게이도 괴짜도 아닌 케이팝이었을 게 분명했다. 그들은 케이팝이 좋아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케이팝이 좋아서 무작정 한국으로 넘어와 춤을 추는 열정이라니. 현재만 사는 삶이라니. 나도 현재만 사는 백수인데 하고 은글슬쩍 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청년 백수가 아니었다. 이제는 나이를 밝히는 것 자체가 분위기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가까스로) 무늬만 청년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보광동에서 제일기획 건물까지 오르막 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뿔사, 걸어가다 보니 술이 다 깨서 원점으로 돌아간 듯 했다. 이제 믿을 건 자기최면 뿐이었다. 현재 시각 오후 11시 30분. 나는 오후 9시까지 푹 자다 잠시 놀러 나왔다. 나는 쌩쌩하다! 근데 난 정말, 뭘 믿고 오전 9시에 일어났을까. 다행히 최면이 잘 걸려 깔깔거리며 등반을 하는데, 이태원 역을 300m  정도 앞에 두고 남자 취향이나 공유하던 대화가 꽤 묵직해졌다. 가장 연장자인 Lucas는 이제 연애 말고 평생 함께할 동반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싶은데, 그건 커밍아웃보다도 위험한 일이라 용기가 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배부른 소리라는 듯 눈알을 굴리던 Kevin은 커밍아웃은 자기 인생의 숙제였다며, 케이팝이 없었으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었을 거라고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Love yourself 라는 BTS의 건강한 메시지 때문인지, 비주류이면서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케이팝의 특성 때문인지, 해외에서 케이팝은 성소수자나 소수인종자 같이 음지에 있는 친구들에게 정서적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범한 꿈이 위협이 되는 삶은 얼마나 고독할까.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소외된 삶일까. 이런 감상적인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오늘밤 잘 노는 멋진 누님이 되기는 물건너 간 것 같아 보인다. 이런 내 마음에는 아량곳없이 길 건너편에서 우리가 깨부술 킹클럽이 왕관 사인을 번쩍거리며 도발하고 있었다. 난 다시 한번 투지를 다졌다.


남자는 만원, 여자는 5만원. 5만원이라는 진입장벽을 뚫고, 나는 구릿빛 피부에 곱슬머리가 근사한 Lucas의 손에 이끌려 스테이지 앞으로 나아갔다. 오래전 킹클럽의 음침한 구석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DJ세트 앞에 설치된  단차 높은 스테이지에는 이목구비를 뭉개는 초록색 조명이 아니라 머리카락 질감까지 살리는 환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빠른 비트의 EDM이 흘러나오는 동안 그 아이돌 무대 같은 스테이지는 존재감만 남은 채 텅 비어있었다. 순간 EDM이 멈추고 솜사탕 같은 신스 사운드가 클럽을 휘감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 위로 향했다. 30분마다 돌아온다는 케이팝 타임이다. 뉴진스의 ‘OMG’ 첫소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무대 위로 뛰어 올랐다. 눈치가 얼마나 빤한지 누가 중앙에 서고 누가 뒤로 빠질지 빠르게 대열이 정리됐다. 떨어지면 망신살인 살벌한 눈치게임이었다. 춤은 파트에 맞춰 나눠지다가 칼같은 군무로 다시 모였다. 팔을 돌리고 가슴을 튕기는 힘 조절과 천진한 시선처리가 여돌 저리가라였다. 거북함은 커녕 눈을 반짝이며 춤을 추는 모습에 오소소 소름까지 돋았다. 라디오헤드나 레드핫칠리페퍼를 좋아하던 내가 그간 케이팝을 얼마나 무시해 왔던가. 그러나 노래가 절정을 지나고 턴을 하는 머리카락 끝에 맺힌 땀방울을 보았을 때, 나는 속으로 외치고 만 것이다. 케이팝이 짱이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조명을 받는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나 따위에 좌지우지 될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까지 깨닫자, 걱정되는 손으로 바들거리며 술잔을 꺾던 스스로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케이팝 타임 동안 나는 아들 응원나온 극성 엄마 모냥새로 호응에 최선을 다했다. 주인공은 못 되어도 조연으론 백점이었다. 한편으로 나의 비루한 체력을 생각하면, 너무도 고마운 케이팝 타임이었달까. 케이팝이 끊기면 우리는 파랗게 점멸하는 플로어 아래로 내려가 둥글게 서서 한 부족처럼 춤을 췄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놓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무구한 웃음을 지으며 불경스럽게 몸을 흔들었다. 천상 알파메일 재질인 Lucas와 어두운 클럽에서도 멈추지 않고 선한 아우라를 풍기던 Kevin, 커다란 곰인형 같은 Yuri와 배탈이 나 허예진 얼굴로도 열심히 노는 모습이 존경스럽던 Thiago, 이름처럼 얼굴도 말투도 예쁜 Subin, 우리는 누구하나도 소외시키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30분이 지나면 나는 어김없이 다시 학부모 모드로 돌아갔으나, 사려깊은 아이들은 화려한 과거를 그리워 하던 누님을 위해 어두운 구석에서 예전 킹클럽의 구시대 유물로 남은 ‘봉’을 찾아냈고, 뭐 나도 할건 다 했다.


 새벽 5시, 집으로 가는 택시 안, 완전히 지쳐 고개를 떨구니 코트 틈 사이로 드러난 자켓에 단추가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복기해보니 만족스럽게 잘도 놀았다. 드디어 에너지 넘치는 나로 컴백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다행히 나는 아직 건재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눈 뜨기 전까진. 

 다음날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손 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딸리는 기력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내일의 기력까지 박박 그러모아 게걸스럽게 입에 욱여 넣던 자의 최후였다. 그렇게 골골거리는 와중에도  ‘나이들고 나서는 난 변기에 기대서라도 세수는 하고 자잖아.’ 하던 친한 언니의 목소리가 번뜩 생각나, 놀란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다행히 세수는 했구나. 안티에이징에 협조해준 어제의 술취한 나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뿌듯한 마음으로 누워있는데, Lucas한테 문자가 왔다. 잘 들어갔냐고. 자기는 또 놀러나왔다고. 가랑이가 얼얼했다. 난 나이든 뱁새였다.


 그렇게 주변에서 계란 한판이 어쩌고 겁을 주던 서른이 되고 나서도, 조금 칙칙해진 낯빛 말고는 어디가 달라지긴 한 건지 크게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 몇년 후 코로나가 거리의 빗장을 걸어 잠글 즈음이 되어서야 내 장기들도 슬슬 태업에 돌입했다. 만성피로로 꽤 오래 고생을 했다. '그렇게 놀더니 드디어 맛이 갔네.’ 하는 언니들은 내심 나의 변화를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변의 환대와 달리, 나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신체적인 변화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허약하게 태어난건 내가 아니라 동생이어서 아프다는 소리를 하는 내 자신에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그즈음 결혼도 하고 승진도 했다. 변화는 사방에서 찾아와 호그와트의 부엉이처럼 끈질기게 쪽지를 물어다 줬다. 쪽지를 열어보면 이런 말이 써있었다. ‘넌 이제 청년이 아니야.’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서러운 마음에 유튜브 창에 레드핫칠리페퍼를 검색했다. 2016년 지산 락 페스티벌에서 본 이후로는 음반으로만 소식을 듣고 있었다. 어젯밤 잠시 케이팝에 열광했지만, 사실 몇몇 아이돌 빼고는 르세라핌이니 아이브니 잘 알지도 못했다. 익숙한 얼굴에 기대 서러워진 마음을 조금 달래고 싶었다. 유튜브 상단에 2022년 뉴저지 공연 실황 영상이 떴다. 영상을 클릭하고 나서, 나는 버짐 핀 입가가 찢어지게 웃었다. 이제 60살이 된 플리와 앤소니 키디스가 아직도 웃통을 까고 무대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식스팩 만큼이나 단단한 희망이 가슴 속에 피어 올랐다. 중년은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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