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복잡할수록 책을 읽어. 책에는 답이 있지 않을까 해서.
작년에 정말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이 박완서 선생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야.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어.
아이를 잃는다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
천주교 신자이던 그녀는 아들이 죽자 신을 부정해.
나는 그 목주가 특별히 영검하다는 걸 믿지 않는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었다. 내가 그걸 굳게 믿을 수 있었다면 아마 그 목주로 남편의 병을 고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주를 보자 덜컥 가슴이 내려앉아 얼른 주모경을 바치고 나서 작은 주머니 속에다 넣어두었다. 그리고 나서 “주님,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믿어서도 아닙니다. 만에 하나라도 당신이 계실까 봐, 계셔서 남은 내 식구 중 누군가를 또 탐내실까 봐 무서워서 바치는 기도입니다”라고 내 기도에다 주석을 달았다.
주를 믿어서도 사랑해서도 아닌, 단지 공포 때문에 올리는 기도란 얼마나 참담한가. <본문 가운데>
신을 부정하고 나니 만에 하나라도 신이 있다면 나머지 가족도 잃을까 두려워졌지.
그래서 신을 버리지도 못해. 그녀도 자식의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나 봐.
아마도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도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했을 거야.
세월호나 이태원 그리고 항공기 사고 유가족들이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닐 거야. 그냥 묻고 살아가는 거겠지.
난 세상에 극복할 수 없는 상처라는 게 있는 것 같거든.
엄마,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순간이야.
그보다 더 큰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
그래서 궁금해. 나와 멀어지는 걸 알면서도 엄마를 멈추지 못했을 만큼 중요한 게 무엇이었을까 하고.
나도 기도라는 걸 해.
아이들이 아플 때. 그것도 아주 열심히 말이야.
정말 간절한 순간에는 모든 신을 찾아 기도를 하게 되더라.
하나님도 찾고 부처님도 찾고, 어떤 날은 조상님도 찾아.
뭔가를 기도한다고 해서 이 중 어떤 신이 응답한다고 믿어서는 아니야.
종교인들도 안 좋은 일들을 피해가지는 못해. 기도를 한다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지.
다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은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
나의 기도도 일종의 그런 주문 같은 거야.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주문.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
어차피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거라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 있었으면 했어.
어디를 바라보고 기도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쇼핑몰을 뒤졌지. 불상을 하나 사야겠다 싶어서.
종교가 중요하진 않았어. 언뜻 그게 떠올랐을 뿐.
그런데 검색하는 것마다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그러다 성모마리아상을 주문했어. 불상을 고르다 성모마리아상이라니.
아마도 내 마음에 드는 불상을 찾아냈다면 지금쯤 우리 집엔 불상이 놓여있었을 거야.
언젠가 성모마리아상 옆에 불상이 놓이게 될 때가 올지 모르지.
내가 조상님까지 찾을 땐 정말 극도로 불안할 때야.
왜냐하면 죽은 사람에게까지 산 사람들을 돌봐달라고 하는 건 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거든.
죽으면 다들 이승의 일들은 잊고 어디론가 갈 거라 믿잖아. 그게 천국이든 다음 생이든.
그런데 죽어서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없다면 그건 산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명절에 제사를 지내러 가면 난 이렇게 기도해.
조상님들이 계시다면 자꾸 다시 찾아오지 마세요. 여기는 다 잊고 각자 가신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홀가분해지세요 하고.
죽음엔 순서가 없는 거니까.
엄마가 먼저 가면 굳이 나를 돌봐주지 않아도 돼.
엄마가 지금 그렇게 찾고자 하는 것들을 다음 생엔 꼭 찾아.
천국으로 가면 거기서 꼭 이루고.
엄마가 진짜 원하는 걸 엄마도 한 번은 이뤄야지.
그리고 내가 만약 엄마보다 먼저 가면 난 엄마는 잊을 거야.
대신 어떠한 원망도 미움도 남겨놓지 않을 거니까.
혹시나 엄마도 미안함 같은 건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말해둘게.
최근에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봤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연이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택하거든.
링거에 연결된 버튼을 스스로 밀면 죽게 되는 거야.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는 거지.
상연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밀어.
그 장면을 보다 생각했어. 그렇게 미련 없이 죽음을 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홀가분한 상태가 어떤 상태일까.
아마 이승의 삶이 지옥이라 빨리 벗어나고 싶다거나, 이승의 삶은 이것으로 됐다 싶을 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운 마무리거나.
그러면 후자여야겠지.
이것으로 됐다 싶게 지내볼게.
나도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