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틈만 나면 바닥을 닦았어.
손걸레로 여기저기를 닦아대던 모습이 지금도 종종 생각나.
엄마가 걸레질을 하는 뒷모습을 내가 흉내 낸 적도 있잖아.
바닥을 스윽 닦아내는 게 아니었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팔에 힘을 주어 바닥을 눌렀지.
정말 그랬어. 엄마는 바닥도 누르듯 닦았어.
요즘은 마루가 있는 집엔 오일스테인으로 칠해 자연스러운 멋을 내지만
우리 집 마루는 니스를 칠해 번쩍번쩍 광이 났어.
시골 마을이니 흙먼지가 많아 마루를 반짝이게 관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걸레를 들었지.
집이 더러워지는 게 싫어 내 친구들이 놀러 오면 엄마의 기분은 순식간에 나빠지곤 했어.
그래서 집에서 논 기억이 많지는 않아.
엄마는 늘 자랑을 하듯 말했어. “사람들이 우리 집 보고 다들 깨끗하다고 난리야.”
하지만 그게 정말 깨끗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어.
엄마에게도 이야기한 적 있을 거야. 정말 깨끗한 게 맞는 거냐고.
한 번은 냉장고 페인트가 흉하게 벗겨지는 일이 있었어.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댄 탓이었지.
먼지를 닦자고 페인트를 벗겨내다니.
중고로도 팔 수 없는 망가진 냉장고를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혀왔어.
투명한 플라스틱 반찬통들도 엄마의 철수세미를 피해 가지 못했지.
투명하던 통은 수많은 흠으로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어.
내가 엄마에게 선물했던 외투 기억해?
엄마는 그걸 물로 빨아서 다시 입을 수 없게 만들어놨었지.
“다들 내가 유별나다고 그러기는 해.”
나는 분명 화를 내는데 그때 엄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답했어.
그리곤 매일 레퍼토리처럼 하는 말들을 쏟아냈지.
“동네에 다 물어봐라. 내가 얼마나 깨끗한 사람인지. 유별나게 깨끗하다고 그런다. 우리 집 한 번 와 보면 농사지으면서도 살림을 어떻게 이리 잘하냐고들 그래.”
정말 듣고 또 들었던 말이야.
엄마에게 ‘유별나다’는 그저 ‘깨끗하다’를 강조하는 수식어인 듯했으니까.
엄마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 했어.
그건 자존감과는 달랐어. 남들이 인정해 주는 엄마만 엄마인 사람이었으니까.
설령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다 해도 말이야.
엄마는 유튜브 알고리즘 같았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골라 듣는 사람.
그런 엄마에게 그건 현명한 게 아니라고 꼬집어 말해도 엄마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
나중엔 엄마에게 ‘현명하다’는 개념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엄마는 가끔 해선 안 될 것 같은 말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엄만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 이렇게 답하곤 했었으니까.
“엄마는 뭘 잘 몰라서 그런다니까. 그렇게 똑똑하면 니가 걸러 들으면 되지!”
엄마는 현명하든 아니든 그저 ‘깨끗한 사람’으로만 인정받으면 되는 거였어.
그러니 나는 알 수 있었지. 엄마를 어떻게 하면 화나게 만들 수 있는지.
엄마에게 ‘깨끗하다’는 말 외에 모든 말들이 그저 수식어에 불과하다면
‘깨끗하다’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면 되는 거였어.
그래서 하루는 작심하고 말했지.
“따지고 보면 엄마는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야. 물건들이 원래의 기능을 못하게 된다는 건 결국은 정말 더러운 상태가 된 거라고.”
그제야 엄마는 마치 자신을 부정당한 듯 화를 냈어.
순식간에 흥분한 상태가 되어 자주 하던 말들을 유독 더 거칠게 쏟아내기 시작했지.
“나는 우리 집에 있다가 남의 집 놀러 가면 더러워서 그냥 앉지도 못해! 걸레라도 있으면 닦고 앉아야 해서 사람들이 깔끔떤다고 얼마나 그러는지 알아?”
가만히 보면 엄마가 들었다는 말들은 칭찬만은 아닌 게 분명해.
하지만 엄마는 남들이 인정하는 자신의 모든 가치가 청소에 있다는 듯
그저 ‘깨끗하다’를 부정당하지 않으면 그만인 사람 같았어.
누군가 엄마를 비난하려 ‘깔끔떤다’라고 했어도 엄마는 그걸 칭찬으로 들었을 거야.
재작년 해외에서 지내던 대학 후배 Y가 귀국을 했어.
귀국 후 자리 잡은 지역이 우리 집과 멀지 않은 곳이라 몇 년 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러던 중 다른 후배 P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왔지.
P는 아내를 대신해 육아휴직 중이었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와 함께였어.
낯가림이 있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지만 아이가 주는 사랑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보였어.
육아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를 가장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기가 그때가 아닐까 해.
생존을 위한 돌봄이 대부분인 시기.
말을 배우기 시작해 “엄마!”, 혹은 “아빠!”라고 불러주면 그걸로 벅차리만큼 행복한 시기말이야.
P는 기저귀 가는 솜씨는 물론 이유식을 먹이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능숙한 아빠의 모습이었어.
그게 무척 대견해 보였는데 Y는 그런 P에게 조금씩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어.
스스로 하는 아이로 키우라고 강조하면서 말했지.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 연습시키면 다 해"라고.
나는 왜 Y가 자립성을 강조하는지 알고 있었어.
Y는 친정식구가 없이 지내왔거든. Y에게 독립성은 생존과도 같았던 거야.
그래서 자신의 아이도 그렇게 키우는 듯했지. 스스로 하는 아이로.
하지만 나는 Y의 다른 면을 알고 있었어.
Y는 뭐든 혼자 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 같았거든.
나는 많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Y는 달랐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 했지. 절대 혼자이면 안될 것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로워 보였던 이유야.
그날 후배들이 돌아가고 생각했어.
사람들은 육아에 있어서도 자신이 살아온 삶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는구나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중요시하는 것들은 뭐였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어.
나는 그게 정서적인 안정이었어. 두 아이 앞에서 싸우는 부모는 되지 말자고 말이야.
공부에 대한 한이 있는 사람은 아이들에게 그걸 강조하겠지.
잘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자식의 먹는 일이 제일일 테고.
나는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이 없어.
싸워야 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였지.
그게 꼭 옳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야.
다만 지나고 보니 나에겐 그게 정말 중요했었구나 싶어.
엄마는 뭐가 제일 중요했을까?
그걸 떠올려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어.
언제나 다른 사람의 눈이 신경 쓰여 집을 깨끗하게 닦아댔지만,
누군가 아빠의 흠을 들여다보는 일은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흠을 감추려 하기보다 오히려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치며 싸우던 엄마였지.
아빠는 매일 술을 먹고, 일은 자기 반만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과 살면서도 가정을 잘 꾸려 나가는 사람이 엄마임을 알리고 싶어 하는 듯했어.
엄마가 원했던 건 부족한 남편과 살면서도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아내의 모습이었을까?
외할머니가 여러 번 결혼을 해서 그랬던 걸까?
나는 그런 엄마를 아직 다 이해하지는 못해.
냉장고를 보거나 플라스틱 반찬통을 보면 엄마가 생각나.
칠이 벗겨진 냉장고와 흠집으로 뿌옇게 변한 플라스틱 반찬통처럼
나도 어딘가 흠집이 났던 건 분명하니까.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사람이라 새로운 세포들이 생겨나고 상처도 아물어가.
그래서 나의 아이들은 지금 누구보다 밝은 아이들로 자라나고 있어.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나이 아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