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을 읽다가

by 시소

엄마 작년부터 나는 동네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냈을지도 몰라.

이런저런 모임에 다니는 것을 즐겨하는 성격은 못되거든.


얼마 전 모임에서 읽었던 책이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이야.

가끔 나는 과거로 가는 상상을 해.

그런데 책에선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하대.

어쩌면 다행이다 싶어. 내가 상상했던 과거의 시간들은 모두 성인이 된 후거든.

아무리 부정해도 어린 시절은 내게 좀 가혹했어. 그래서 그때로 돌아가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어.

만약 신이 나타나 정말 과거로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면 말이야. 아니라고 답할 거야.

상상은 상상으로 남겨놓고 싶어. 지금이 좋으니까.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라기보다 나에게 지난 삶은 조금 고됐던 느낌이야.

그 시간들을 다시 살아보고 싶지는 않더라고.


엄마, 그런데 책을 보다가 이상하게도 엄마 생각이 났어.

과학책 속에서 엄마를 떠올리다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책에 이런 부분이 나와.


물체는 여러 경로와 과정을 거쳐 땅바닥에 도달할 수 있다. 원형의 경로나 하트 모양의 경로를 따라 낙하하거나, 직선으로 떨어지더라도 처음엔 빨랐다가 나중에 느리게 갈 수도 있고 그냥 일정한 속도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운동경로가 주어지면, ‘작용량(action)’이라 불리는 물리량을 계산할 수 있다. 가능한 모든 경로의 작용량에 대해 이 값을 계산해 보면, 이 가운데 가장 작은 값을 갖는 경우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이때의 경로와 과정이 뉴턴의 관점으로 구한 운동과 정확히 같다. 그래서 그렇게 낙하하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물체가 떨어질 때 원형이나 하트모양으로 떨어지지 않고 왜 직선으로 떨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야.

그게 가장 효율적인 경로이기 때문인 거래. 물체가 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

그때 불쑥 엄마가 떠올랐어.

사람도 물체인 거니까.

어쩌면 엄마도 자신이 갈 수 있는 최선의 경로를 택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사실 난 지금도 엄마가 했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엄마라는 존재는 응당 A나 B, C 같은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엄마는 F를 말해.

그런데 책을 보다가 생각하게 된 거야. 엄마의 선택지엔 애초에 A도 B도 C도 없었던 게 아닐까 하고.

A나 B를 버리고 F를 고른 게 아니라 F, G, H 중에서 F를 고른 거였을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부모와 엄마가 생각하는 부모는 전혀 달랐던 걸지도 몰라.

우리 모두 스스로 선택한 경로로 낙하해 온 거지.

그게 엄마의 최선의 경로였을 테고.


그러니 우리가 가까이 지내지 못한 걸 슬퍼하지는 말자.

거리를 두고 지낸 것은 각자의 선택들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나의 낙하에 엄마의 책임은 없어.


가끔 과거의 일이 후회될 때가 있는데

그게 내 선택지 중에 최선이었을 거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

엄마도 그랬으면 해.


다만 엄마, 나는 이유를 아는 기억들은 덧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많은 억울한 일들 뒤에는 여전히 왜!라는 물음들이 남아있잖아.

그냥 그렇게 된 거다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은 결국 상처가 덧나.


내가 과거의 일을 말하면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어.

정말 기억이 안 난다기보다 딱히 변명할 답을 찾지 못했던 이유겠지.

그래도 이유를 듣고 싶었던 것 같아.

엄마가 만약 그땐 내가 좀 어리석었어.라고 했다면 엄마를 미워하기는커녕 연민했을지 몰라.

아니 분명 그랬을 거야.

하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들의 이유를 엄마가 답해줄 리 없지.


엄마 안심해. 기억조차 못한다고 하더라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

무얼 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지.

내가 조금씩 강해졌기 때문이야.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도 내 안을 들여다보고 정리할 힘이 생겼더라고.

그 이유를 스스로도 찾아볼 수 있는 힘.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힘 말이야.


언젠가 후배가 가장 후회하는 일은 자신의 엄마와 거리 두기에 실패한 거라고 고백했어.

나는 그걸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대.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엄마가 내 부정적인 감정들의 이유가 아니게 된 것도 거리를 두면서부터였으니까. 엄마 때문이야 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분명 성공이라고 할만해.


하지만 여전히 엄마를 불쑥불쑥 떠올려.

멀었던 거리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이 있지. 엄마는 그렇게 나를 침범해.

그게 싫어서 엄마를 더 멀리했던 것 같아. 성공이 아닌 회피일지도 모르겠다 싶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거야. 엄마를 내 안에 잘 정리해 두느라.


언젠가부터 우린 참 멀게 지냈어.

명절에도 엄마를 보러 가지 않게 되었지.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 기억해?

내가 두 번째로 임용고시에 떨어진 후 생활비가 필요해서 학교 시간강사로 나가고 있을 때.

잠깐 고향집에 갔을 때 이웃 아주머니들을 마주쳤고 엄마는 나를 교사라고 소개했지.

틀린 말은 아니었어. 거기까지는.

임용고시 붙었어? 하고 묻는 아주머니에게 엄마는 내 대답을 가로채며 말했어.

붙어서 서울에서 근무한다고 말이야.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지금도 그때의 당황이 기억나.


아주머니들이 지나가고 물었어. 왜 그랬는지.

엄마는 나를 위한 거라고 했어. 내 체면을 세워주려고 그런 거라고.

좋은 대학에 가서 임용고시도 못 붙었다면 다 나를 우습게 볼 거라고 했지.

그러니 동네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런 방식은 엄마의 선택이었어.

나를 위한 거라고 했지만 그건 분명 엄마의 체면을 위한 일이었지.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엄마는 그걸 택했던 거야.


난 다른 선택을 했어.

그날 저녁 고향 친구들에게는 임용고시에 떨어졌다고 말했지.

부쩍 낮아진 자존감을 거짓말까지 해가며 더 낮추고 싶진 않았으니까.

우린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아무렇지 않게 위로를 건넸어.

그런 게 내가 생각하는 친구야.


또다시 명절이 돌아왔고 엄마가 말했어.

사람들 마주치면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내게 그럴 거면 차라리 오지 말라고 말이야.

그때부터야. 고향에 잘 가지 않게 된 게.

그게 엄마의 최선이었을 거야.

엄마는 다른 방식은 알지 못하니까.


엄마 그거 알아? 엄마의 기준에서 자랑스럽지 못한 나일 때

나는 엄마를 협박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어.

엄마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나라고 말하는 거. 그거면 됐으니까.

언제나 승자는 나였지.


"니가 아이를 낳아보면 알 거야. 엄마가 왜 그러는지."

그때 엄마의 말처럼 지금 나는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어.

엄마의 기준대로라면 이 아이들도 자랑할 것이 없을지 모르지.

그런데 누군가 우리 아이들을 비난한다면 말해주고 싶어.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인지. 나는 알고 있는 사랑스러운 면들을 말이야.

나는 엄마라 알고 있으니까.

만약 죽음이 코앞에 닥쳐온다면 나는 이 아이들의 엄마로 살 수 있었던 시간들을 고마워할 거야.


엄마, 우린 참 많이 다른 사람이야.

엄마를 내 엄마가 아닌 친구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 더 엄마를 연민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엄마가 세상을 보는 기준이 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향해있는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엄마,

엄마가 나의 엄마라 나는 꽤나 냉정한 딸이었어.

그러니 서로를 원망하기보다 우리가 모녀로 만난 걸 안타까워하자.

나의 아이들에게 유쾌한 엄마이기 위해 나는 엄마를 조금 덜 안쓰러워할 거야.

그러니 엄마, 그게 억울해서라도 건강해지길 바랄게.

엄마가 말하는 엄마는 늘 대단한 사람이었잖아.

그걸 지금 증명할 때야. 회복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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