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음에 구멍 난 그릇을 가지고 사는 사람 같았어.
밑바닥에 구멍이 나있어서 채워도 채워도 늘 비어 있는 사람.
내가 애써 구멍을 막아주면 스스로 다른 구멍을 내어 자신을 비워내는 사람말이야.
조금도 가득 차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그러면 모두 자신을 떠날 거라고 믿는 사람처럼
그렇게 스스로 다른 구멍을 내지.
엄마의 말들은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어.
‘봐봐. 나는 너희들이 채워줘야 해!’
엄마, 그런데 나는 정말로 텅 비었던 적이 있었어.
지금까지 우울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정말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한 두 번의 시기가 있었거든.
우울증이었는지는 모르겠어.
정신과 의사가 보았다면 그건 우울증이 아닌 우울감정도입니다 했을지 모르지.
제대로 검사를 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다만 나는 자기 전에 기도했어 내일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자다가 큰 고통 없이 가면 좋겠다고 말이야.
첫 번째 시기가 대학생 때야.
졸업 후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점점 무기력해지더라.
학원에서 시간강사를 하며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집 밖을 나오지 않았어. 방값을 낼 돈이 없었다는 게 어쩌면 다행이야.
완벽히 고립되어 지내지는 못했으니까.
내 우울이 단순하지 않다고 느낀 것은
횡단보도를 지나던 내가 신호대기 중인 트럭이 날 덮쳐주길 바라고 있었다는 거야.
작은 차로는 혹시라도 살아날까 봐
큰 트럭을 마주할 때마다 기도를 했어. 제발 저 트럭이 나를 덮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최대한 신호를 다 써가며 횡단보도를 건넜지.
신이 내 기도를 들어주고 트럭을 움직여주면 좋겠다 싶어서.
달리는 트럭에 뛰어들면 될 텐데 그럴 용기는 또 없었던 거야.
혹시나 달리던 트럭 앞으로 뛰어들었는데 트럭이 멈추면, 그래서 내가 살아나면,
길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트럭 운전사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겠지.
그런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무섭더라고.
그러니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었어. 트럭이 나를 일방적으로 덮쳐주기를.
그래야 잘못되어도 나에게 화를 내진 않을 테니까.
그때 나는 엄마에게 내 우울을 이야기했었어.
엄마가 말했지. 내가 배가 불렀다고.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면 너는 그런 말을 못 할 거라고.
자신처럼 부지런하지 않은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어.
왜 다른 집 딸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지, 이웃집 딸들이 하나 둘 직장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말이야.
그때 엄마는 내 우울을 들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어.
자신의 힘든 이야기만 쏟아놓다 전화를 끊었지.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 내가 전화를 잘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하다 말했어.
“너는 엄마 전화도 안 받고 성격도 지랄 같아. 동네 사람들 다 욕해. 엄마한테 그거밖에 못한다고!”
그리고 이 말은 전화를 받지 않을 때마다 엄마가 하는 레퍼토리가 되었어.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해. 그런 불효녀가 또 어디 있냐고.’
엄마 나는 지금도 엄마의 말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
나라는 사람의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하고 인정할 뿐이야.
내 아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상상만 해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 것 같거든.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를 위로할 거야.
그런 아이에게 넌 왜 그거밖에 못하냐는 이야기는 상상조차 하지 못해.
다행히 나의 첫 번째 우울은 끝이 있었어. 나를 불러내 주는 사람이 있었거든.
엄마에겐 최악의 딸인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어.
단 한 사람이면 되더라. 내 편이라는 거.
그게 지금의 남편이야.
그 사람이 말하는 내가 진짜 나였으면 했어.
그래서 노력하게 되더라. 정말 그런 사람이 되려고.
나에게 불안은 일상이었는데 그 사람은 달랐어. 그걸 닮고 싶었지.
그래서 긍정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 또 읽었어.
고시원에 살아도 서울 하늘 아래 등 붙이고 살 집이 있다는 걸 감사해하고,
만나야 할 친구가 있음에 감사해하게 됐어.
눈뜨는 순간부터 하루를 행복하게 여길 이유를 찾곤 그 이유를 되뇌며 지냈지.
난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어!라고.
아무 이유도 찾지 못한 날엔 내 앞에 싸우는 누군가가 없음을 감사해했어.
그 고요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지.
내 두 번째 우울은 결혼 후 아이를 낳고였어.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산후 우울을 피하지 못했지.
첫째는 그래도 잘 버텼는데 둘째를 낳고는 아이가 미워질 만큼 우울한 시기가 찾아왔어.
남편은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이를 같이 돌봐야 했으니까.
그래도 나의 우울을 막진 못했어.
그때도 엄마는 여느 날처럼 내게 전화를 걸어왔지.
안 받으면 또 하고, 그래도 안 받으면 아빠에게 전화가 왔어. 왜 엄마를 그렇게 대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힘조차 없었어.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엄마에게 차분히 내 이야기를 해나갔지.
요즘 많이 우울하다고. 아이를 낳고 잠도 잘 자지 못해 겨우 버티고 있다고.
"니가 나처럼 농사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만 일을 하는데 뭐가 힘들어. 내가 너라면 아이 열도 키웠겠다. "하는 답이 돌아왔어.
그나마 잡고 있던 엄마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지.
엄마는 엄마가 제일 힘들어야 하는 사람 같았어.
그런 엄마에게 미친것처럼 울며 소리를 질렀지.
엄마는 말했어.
“너 부모에게 그렇게 대하다 나중에 나 죽고 나면 후회한다.”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될 거라면 후회를 택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어.
엄마 나는 온전한 그릇 같은 마음을 품고 살고 싶어.
그리 강하지 않아서 수시로 보수해야겠지만 조금의 감사로도 금세 채워지는 마음이면 좋겠어.
아이들도 남편도 아닌 그저 나로도 채워지는 마음말이야.
드라마 <디어 마이프랜드>에 그런 장면이 나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김혜자가 친구 나문희에게 말해.
넌 맨날 왜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
맨날 힘들어, 그래서 내가 마음 놓고 기대지도 못 하게 해!
지금의 나는 우리 아이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엄마이고 싶어.
그래서 유쾌하게 지내려고 노력해.
매년 봄이 온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잖아. 아이들에게 계절 같은 내가 되었으면 해.
애쓰지 않아도 늘 따뜻하게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계절.
그런 엄마였으면 해.
엄마, 이제 완연한 가을이야.
병원에 있느라 엄마에게 이 계절이 많이 가혹하지?
추운 겨울을 나려면 화려한 잎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어.
다 붙잡고는 겨울을 날 수 없으니까.
엄마가 다가올 겨울을 잘 빠져나오길 기도할게.
엄마도 나의 엄마잖아.
봄처럼 앞서가서 기다려줘. 한 번쯤은 말이야.
건강을 빌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