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때 활동했던 학회가 현대문학반이야.
엄마도 학회 친구들을 본 적 있을 거야. 고향집에도 다녀간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읽었던 문학 작품 중에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모음집 <호출>이 있었는데,
비상구라는 단편이 특히 기억에 남아.
친구들은 저마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을지 모르는 해석들을 늘어놓았지.
글의 의미는 작가와 작품 독자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우리는 독자 중심의 관점으로 감상을 했던 것 같아.
저마다의 해석을 이야기하며 깔깔거리곤 했어.
지금도 기억나는 해석 중 하나는 소설 속 여자가 마트에 들어가 뒤집개를 고르는 장면이야.
우리는 그것이 왜 하필 ‘뒤집개’인가를 이야기하다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버리고 싶은 걸 거라며 웃어댔지.
다시 떠올려봐도 재미있는 시간들이야.
누군가가 상상해서 만들어 낸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꽤 재미있었어.
직접 그 세계를 만들어 보는 일도 좋아했었지.
상상으로는 어떤 세계든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김영하 같은 소설가가 될 수 없었던 건 언제나 긍정적인 상상만 하려 했기 때문인지 몰라.
내 상상엔 극적인 긴장감이라곤 없는 행복한 전개만 가득했었거든.
엄마, 난 어쩐지 어두운 느낌이 드는 작품을 읽을 때에는 결말부터 읽고 앞부분을 읽을 때가 많아.
비극으로 가는 과정을 즐기지 못해.
결말이 비극인 걸 알게 되었다면 글 읽기를 포기할 때도 있어.
상상의 세계는 현실과 반대였으면 하고 바랐었으니까.
내가 김영하 소설 속 그녀를 그렸다면 뒤집개를 사는 순간 인생이 정말 뒤집어졌을지도 몰라.
재미없을 정도로 잔잔한 평화. 그때의 내겐 그게 너무 간절했거든.
상상이라는 건 나에게 꽤나 유리한 방식이야.
상상이 없었다면 과거의 나는 훨씬 더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니까.
술냄새가 가득한 방안에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가득 찼어.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멋진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지.
상상은 아주 구체적이었어. 고등학교 진학부터 대학교 진학까지. 그리고 졸업, 미래의 직업까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현실이 될 것 같았거든.
그래서 매번 아주 세세한 것들까지 상상해 내곤 했지.
그중 많은 부분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에겐 분명 잘 만들어진 힐링 영화가 되어주었어.
구교환 배우가 TV에서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주인공 서사’를 떠올린다고 말이야.
자신을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대.
그저 재미있기만 한 주인공은 없으니까.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하는 상상이 주인공 서사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구나 싶어.
언젠가부터 나는 여러 생을 반복해서 살고 있는 중이라고 상상하곤 했거든.
이번 생엔 지금의 엄마를 만났다고.
그러니 엄마가 삶을 힘들어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와 무관한 거다.
엄마는 주인공인 내가 넘어야 할 산일뿐 내가 힘든 것 역시 근본적으론 엄마와 무관하다고 말이야.
우린 각자의 반복되는 생에서 그저 엄마와 딸인 채로 만났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서로 미워할 이유도 원망할 이유도 없어지지.
나와 다른 선택지들을 가진 나와 전혀 다른 사람.
이런 생각은 아이들을 키울 때도 도움이 되었어.
아이들이 내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일 때 조금 조급해지거든.
나를 보듯 아이를 보게 되니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해.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우연히 나에게 왔고
나는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된 거라고.
그 역할은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돕는 것 딱 그뿐이라고.
그렇다고 매 순간을 이상적으로 보내는 건 아니야. 화도 내고 짜증도 내지.
하지만 내가 맡은 역할이다 생각하니 아이들을 감정적으로 대할 일이 줄어들더라.
100년 인생이라고 보면 길어야 20년을 같이 지내는 거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그러니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지 많이 사랑해 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그리고 순간순간이 아쉽게 느껴져.
엄마를 볼 때면 남들이 주인공인 이야기 속에 외로운 조연인 듯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도 엄마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엄마에게 우리는 엄마 삶을 증명하는 결과물 같은 거였으니까.
이번 생에 만난 엄마.
나는 상상 속에서도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했지?
그러니 엄마가 스스로 조금 더 평안하길 바랄게.
삶이 꼭 드라마일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오늘도 재미없을 정도로 잔잔한 평화를 기원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