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진짜 필요했던 사람

by 시소

엄마는 아빠와 싸울 때 나를 찾았어.

아빠와 싸우는 모습을 어린 나는 고스란히 보아야 했지.

그게 무서워서 작은 방으로 도망쳤을 때, 엄마는 아빠를 끌고 그 방으로 왔어.

나중에 물었어. 도대체 오빠들은 두고 왜 어린 나만 싸움을 지켜봐야 하는지.

두려움에 떠는 내게 말했어. 니가 지켜봐야 아빠가 그냥 당해준다고.

싸우지 않고 아빠를 그냥 두면 아빠는 또 술을 마실 거라고도 했어.

하지만 엄마의 말은 언제나 맞지 않았어. 그렇게 싸워도 아빠는 또 술을 마셨지.

난 그 싸움들이 아직 생생해. 두렵던 내 마음들까지.


가끔 그 모습들이 어지러이 떠올라.

그래서 엄마로서의 엄마는 이해할 수 없어.

그런데 엄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지금도 그런 엄마를 연민해.


외할머니도 다르지 않았다는 거 알아.

그래서 따뜻한 가족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운이 없게도 따뜻한 시댁을 경험해보지도 못했지.

그러니 그것 말곤 다른 삶의 방식을 몰랐을 거야.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엄마를 인정하는 거야.


자신을 잘 받아주지 않는 내게 엄마는 자주 억울해하곤 했어.

예전의 난 그 억울함이 억울했지.

그 억울함도 예전 얘기야.

엄마로서의 엄마가 아닌 한 시절을 힘들게 살아온 여자로서의 엄마를 보려고 하니

더 이상 어떤 원망도 하지 않게 되었어.

원망은 바라는 게 있을 때 하는 거더라고.

난 엄마가 그저 엄마인생을 잘 살길 바랄 뿐이야.

지금은 아파서 그마저도 힘들어 보이지만.


둘째 오빠는 흔히 말하는 ‘착한’ 아들이지.

내가 늘 말했잖아. 결국 효도는 둘째 오빠가 할 거라고.

엄마는 그걸 몰라서 오빠에게 참 독하게 굴었지만 결국 아픈 엄마 곁엔 오빠가 남았어.

내 눈에 오빠는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사랑하지. 그게 너무도 눈에 보여.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냉정한 딸이야. 착한 딸이고 싶어 하지도 않지.

더 이상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으니까.

하지만 오빠는 아직 엄마의 사랑이 필요해 보여.

그러니 더 살아서 오빠를 많이 사랑해 주면 좋겠다 싶어.


그때의 엄마는 나를 사랑해 주었어. 그건 분명해.

잘못이 있다면 사랑하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오빠들에겐 그마저의 사랑도 잘 표현해주지 못했잖아.

그건 또 다른 상처야.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 것.


엄마가 죽고 싶다는 이유 중에 하나는 오빠들이 결혼하지 않는다는 거였어.

오빠들이 결혼하지 않는다며 나를 잡고 몇 번이고 하소연했지.

엄마, 그런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려워.

자신을 사랑하려면 부모에게 사랑받은 경험이 중요하고.

만약 엄마가 조금 더 사랑을 표현해 주었더라면 오빠들도 조금 더 스스로를 사랑했을 텐데.

엄마는 아빠에게는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뭐라도 표현했지만,

오빠에게 있어서 만큼은 너무 무기력했어.

나는 그 무기력함을 기억해.

내가 두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 더 그럴 거야.

그때의 두 아이가 안쓰러워. 내 오빠이던 두 아이.


큰 오빠가 사춘기 때 엄마에게 대들었던 거 생각나?

오빠를 원망하는 건 아니야. 화낸 걸로 치자면 내가 더 잦았을 테니까.

그런데 나에겐 그렇게도 잘 받아치는 엄마가 오빠에겐 그러지 못하더라.

엄만 오빠에겐 어쩌지 못했어.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굴었지.

엄마, 난 내 아이를 무기력하게 대하진 않을 거야. 왜냐면 그건 포기 같은 거니까.

나는 엄마의 표정이 기억나.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냥 멍하게 있던.

그게 오빠를 포기했던 게 아니라는 걸 알아.

그런데 엄마, 그 표정이 오빠의 엄마이길 포기하는 것 같았어.

오빠도 그걸 느꼈을 거야.

나는 그래서 오빠가 불쌍해.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봐.

오빠도 사랑받았다는 걸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그걸 물을 만큼 가깝게 자라오지 못해서 나는 오빠 마음도 잘 알지 못해.

다만 내가 본 모습들에 내 아이를 대입하면 그때의 어리던 그 아이들이 안쓰러워.

고작 사춘기 아이들이었는데 말이야.


둘째 오빠는 성인이 되고도 한동안 밤낮이 바뀐 채 지냈어.

엄마는 내 앞에서도 모욕을 주듯 오빠를 비난했지.

그때 내 눈에 오빠는 우울해 보였어.

내가 그 비난을 들었다면 난 분명 집을 떠나 지냈을 거야.

그런데 오빠는 그러지 않았어. 그 모욕을 다 견디고 있었지.

오빠는 집을 떠날 만큼의 의지도 남아있지 않아 보였어.

그때 엄마에게 오빠는 그저 게으른 사람이었지만,

내 눈앞엔 무기력해질 대로 무기력해진 오빠가 있었거든.

그때의 무기력했던 오빠가 지금 엄마를 돌봐.

아마 많이 힘들 거야. 아빠가 할 일을 오빠가 대신하고 있으니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 오빠가 엄마를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거야. 오빠는 엄마가 오빠를 비난하던 그 모든 순간들에도 늘 그런 사람이었어.

엄마가 그걸 알아봐 줬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 동우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는 편이야.

사춘기지만 사랑해요 하고 불시에 고백해 오곤 해.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는 편이지.

아마도 그때의 오빠들이 떠올라 더 그러려고 했던 것 같아.


엄마 내가 국어교육과를 나왔잖아?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건 아니지만 그때 배웠던 것들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

언어가 먼저인지 인지가 먼저인지하는 이야기. 말이 먼저인지 생각이 먼저인지 하는 거야.

지금의 나는 언어가 먼저인 것 같아.

사랑한다는 마을 자주 하다 보면 정말 아이들의 사소한 것들이 사랑스러워 보여.

그러니 고백하자면 사랑한다는 말이 처음부터 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었다는 거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대부분 진짜가 되더라.

엄마, 엄마에겐 그렇게 냉정한 딸이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사랑한다는 말을 충분히 하고 지내.

그러니 아마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못한 말은 남아있지 않을 거야.

아이들도 의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엄마가 자신들을 사랑했는지 아닌지.

그 정도로 많이 표현하며 지내왔어.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엄마 덕분에 하게 되었네.


엄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오빠들을 많이 사랑해 줘.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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