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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Jul 02. 2015

슬프고 행복하다.

엄마로 사는 일이, 슬프고 행복하다.

마냥 좋기만한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엄마로 사는 일도 그렇다.

'유독'그렇다고 쓰기엔, 엄마 아닌 삶은 살아보지 않았으니 적지 않는 게 맞겠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둘째는, 보기와 달리 태어나면서 부터 뱃고래가 작았다. 한번에 많이 먹어 주어야 내 수고도 덜 할텐데, 조금씩 자주 달라 보채는 통에 하루 종일 먹이는 게 일이었다. 처음엔 모유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젖을 잘 물지 않아 애를 태웠다. 매일 아프게 유축을 해서 겨우 양을 좀 늘려 놓았는데, 짜고, 먹이고, 소독하는 게 일이라 첫째는 혼자 자라고 있었다. 하루는, 엄마는 매일 동생 젖만 주냐며 첫째가 울었다. 그래서 100일이 될 무렵 과감히 단유를 했다. 다행히 둘째는 분유를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자주 먹는 건 여전해 여유 시간이 그리 길지는 못했다. 뱃고래를 늘려봐야지 싶어 굶겨도 보고, 한번에 많이 먹여도 봤지만, 그러면 번번이 왈칵 토하기 일쑤였다. 집안엔 우유 냄새가 진동을 했고, 덕분에 빨래도 일이 되었다.

5개월이 넘은 지금, 다행히 토하는 횟수는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뱃고래는 작아, 먹이는 일이 하루 중 중요한 일과인 건 변함이 없다.


첫째는 비염에 천식, 아토피도 있다. 그 때문인지 또래보다 작아서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밤에 힘들게 둘째를 재워 놓으면 몸이 가렵다며 첫째가 깨곤 한다. 잠결에 하도 긁어서 귀에 피딱지가 앉았다. 연고를 달고 살지만, 긁지 않아야 는다며 의사선생님은 연고도 크게 소용 없을 거라 했다. 정말 그랬다. 여전히 첫째 귀엔 피딱지가 앉아 있다.

첫째가 울면 그 소리를 듣고 둘째가 깬다. 둘이 같이 울면 나는 첫째를 안아 달래고, 신랑은 둘째를 안아 달랜다. 이런 일은 한밤 중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랑도 늘 피곤해 한다.


첫째가 감기쟁이인 탓에 나도 감기가 잦다. 요즘 같아선 메르스가 아닌 것에 만족 중이지만.

결혼을 하기 전엔 감기가 오는 듯 하면 몸에 좋은 차나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감기엔 약도 없다는 말을 믿었던지, 약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 문제로 자취를 했었는데, 대학 기숙사 생활을 제외하면 많은 시간 같이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프면 혼자 끙끙 앓았다. 체력은 좋았던지 하루 이틀 잘 자고 나면 씻은 듯 나았다. 혼자 아픈게 서러워 빨리 결혼을 하던가 해야지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 알게 되었다. 아플 때 마음대로 아플 수 없는 것이 더 서럽다는 것을.

요즘 나는 감기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먹을 수 있는 약은 망설임 없이, 먹을 수 있는 차,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망설임 없이 먹고 본다. 시댁과 친정이 멀어 내가 아프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고아 신세다. 아이가 아프다고 신랑을 매번 조퇴시킬 수는 없는 일이니, 아프기도 전에 늘 걱정이 앞선다.

한번은 내가 열이 펄펄 끓었다. 아이 밥을 챙겨야 하는 것도 일이지만, 우는 아이를 마음껏 안아 줄 수 없는 일이 곤욕이었다. 감기가 옮을까 싶어서기도 했고, 기침을 하면 그 진동에 놀라 안고 있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게 서러워 나도 눈물이 났는데, 첫째는 제 얼굴을 들이밀며 엄마는 왜 우는지 자꾸 물었다. 나는 기침이 심하면 눈물이 좀 나는 거라고 아이를 달랬다.

아플 땐 마음껏 아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그래서 엄마인 것은 이따금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택의 시간이 주어져도 엄마로 살고 싶다. 사실 하루 24시간 중 행복을 실감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짧은 시간이 나머지 시간을 버티게 할만큼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생겨난다는 사실이, 때론 기적과도 같게 느껴진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 말이다. (셋이라고 쓰고 싶지만, 연애와 결혼으로 13년도 넘게 같이 지내온 신랑에게 '사랑스러운 눈'까지 강요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싶다.으흠.)


"엄마, 아가는 아직 말을 못하는데, 내가 있으니 안 심심해서 좋지?"

동우는 요즘 심심한 나와 놀아준다며, 자기 장난감을 곧잘 양보해 준다. 내가 저와 놀아주는 것이 아닌, 자기가 나와 놀아준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 필요 없는데(전혀!), 엄마 생각해 주느라 그런다니, 호응 해 주는 수 밖에. 아빠처럼 신나게 놀아주지 못하는 데도, "엄마랑 노니 나도 너무 재미있어! 앞으로도 내가 많이 놀아줄께."하고 말한다. 그런 녀석이 귀여우면서도 자꾸만 불쌍해져 눈물이 날 지경이다. 챙겨주지 못한 것은 나인데, 나를 챙겨주고 싶어하는 녀석이니 말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하고 사랑한다. 엄마에게 더 사랑 받고 싶고, 엄마를 더 사랑해 주고 싶어 몸부림친다. 부족한 것 투성이고 때로는 매정하기 까지 한 이 여인을 끊임없이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다니, 그래서 아이들을 천사라 하는 거겠지 싶다. 물론 이 녀석들도 언젠가는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하며 내 곁을 떠날 테지만, 그래도 키우는 동안 많이 사랑받았으니, 나중에 배신해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다짐해...보는데...


에잇! 이거 뭔가 밑지는 장사 아니야?...... 아니....겠지?......장사가...아...니...니까...그렇겠...지? 으음.

아무튼, 엄마인 것이 이따금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지만 강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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