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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May 28. 2015

가방 속, 너의 마음.

너의 가방 속에는 네가 담고 싶은 걸 담으렴.

동우는 집 앞 마트에 따라 나갈 때에도 가방을 찾는다. 그리 긴 외출이 아니어도 굳이 가방을 메고 싶다 한다.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간다 했으니 짐이라도 덜어 주려나 싶지만, 자기가 애초에 챙겨나간 것 외엔 넣고 싶지 않아하니 가방은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많다. 어차피 장을 보고 오는 동선에는 가방을 열어 볼 여유는 없는 데 말이다. 집에 있으라 해도 가방에 장난감 이것 저것을 챙겨 따라나서는 녀석을 보면 살짝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귀엽기도 하다. 이제 다섯살이지만, 가방을  꼭 잡고 씩씩하게 앞 서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제법 초등학생 못지 않은 패기가 엿보이기도 한다. 뭐, 콩깍지 엄마 눈에 그렇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집 근처 여기저기를 알아 보고 다닌 적이 있었다. 상담을 해 주시는 원장선생님들은 교육 내용에 대해 자신감이 넘쳤다. 영어나 한글을 가르쳐준다, 전문 선생님이 오신다, 그래서 교육이 체계적이다,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교구들은 오감을 자극시켜 발달을 돕는다 등등. 어쩐지 나는, 어린 나이에 배워야 할 것이 이렇게도 많은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그저 재미있게 놀다 오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가진 내가 꽤나 까다로운 부모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이 돈이 더 든다는 것도 말이다.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해주는 어린이집은 대안교육 형태라 교육비만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이 교육에 많은 돈을 쓸 생각은 없어서, 포기는 쉬웠다. 다행히 지금은 일반 어린이집에서 적당히 수업을 즐기며 적응하고 있다. 덕분에 평범한 일상도 고마운 요즘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큰아이 어린이집 시간에 맞추어 종종 카페에 나갔다. 엄마이다보니, 집에 있으면 집안일 할 것이 눈에 들어와 책 한 권 편하게 읽기가 쉽지 않아서다. 혼자 카페에 있다보면 시간이 두 배는 빠르게 흐르는 듯 했는데,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고 오는 건 싫다는 아이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서너 시간이 전부였다. 밤중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니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책을 읽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거면 충분하지 싶었다.


평일 오전 카페 안은 엄마들로 북적인다. 그래서 사실 책을 읽기에 좋은 장소는 못되지만, 집보다는 낫지 싶었다. 테이블 밀도가 높아서 본의 아니게 옆테이블 이야기를 공유하게 될 때가 있는데,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은 대체로 과외나 학원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평일은 이미 꽉 차있으니, 주말 시간을 쪼개어 학원을 몇군데 더 보내보려 한다는 엄마, 그룹과외를 시켜보려고 한다는 엄마 등등, 성적의 빈틈이 학원이나 과외로 채워질 듯 저마다 열심히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잠깐씩 생각이 복잡해 졌다. 내가 가진 교육관이 그저 방임은 아닌지 되물어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의 크고 작은 실수들을, 하며 살게 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의 가방을 대신 채워줄 마음은 없다. 그저 30년 인생 선배로서 보고 배울 것이 있는 삶을 살아주면, 그것이 내 아이에게 가장 큰 교육이 되리라 믿는다. 아이의 실수를 지켜보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매 순간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고, 아이는 그 과정을  통해 배워가고 커갈 테니 말이다.


요즘 아이들의 발걸음이 꽤나 무거워보인다. 육아는 언제나 장담할 순 없었으니, 동우도 나중엔 그럴 지 모르겠다. '평범'이라 불리우는 삶의 무게도 결코 가볍진 않으니까.

" 가지고 놀지도 못할 건데 왜 가지고 나가려고 해?" 하고 물으면 동우는 답한다. "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같이 가야해." 라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등에 멘 녀석의 발걸음은 그렇게나 가볍고 씩씩할 수 있는 데 말이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도 어려운 세대들이다. 그러니 부모의 삶까지 짊어지지는 말았으면 한다. 나도 내 결핍은 아이를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채우며 살자 다짐 중이다. 해보고 싶었던 공부는 아이가 아닌 내가 직접! 배우고 싶었던 악기도 내가 직접! 갖고 싶었던 얼굴도 내가 직접!(이건 농담이다.)


꺼내보지도 않을 장난감이라도 가방에 담아가고 싶은 동우의 귀여운 마음이 언제까지 계속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가방이 커질 수록 아이의 생각도 더 많이 담기게 되길,

나는, 엄마니까, 언제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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