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니 해가 길어졌다. 봉당에 나가 겨우내 먼지 쌓인 자전거에 물을 뿌렸다. 호스 끝을 눌러 물을 세차게 뿌리니 봉당에 무지개가 떴다. 할머니는 얼어 죽을까 집 안에서 키우던 녹보수를 밖에 내놨다. 산은 진달래와 개나리가 한창이다. 나뭇잎은 봄비를 머금었고, 떨어진 나뭇잎 옆으로 연두색 새싹들이 지천이다.
봄이다.
봄이 되면 시골은 바쁘다. 각종 씨앗과 모종을 사서 심기 때문이다. 나의 할머니도 바쁘다. 얼마 전 할머니는 텃밭에 감자와 대파, 상추, 미나리, 치커리, 돌나물을 심었다. 그리고 들에 나가 달래와 냉이, 쑥갓과 머위 나물, 민들레를 캐오기도 했다.
할머니 덕에 난 밥상 위에서 봄을 맛봤다. 향이 진한 냉이를 넣은 된장찌개, 새콤달콤한 민들레 무침, 머위 나물 된장 무침, 달래와 쑥갓을 넣은 무생채…. 봄을 맞이하여 잔치를 치르는 듯했다.
“할머니 달래 더 없어?”
“달래야 저 들에 나가면 더 있지?”
생달래를 먹고 싶다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다음 날부터 달래를 캐러 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할머니는 마실을 나갈 때에도 주머니에 비닐봉지를 넣고 다니며 보이는 족족 달래를 뽑아왔다.
“달래 먹어. 할미가 너 준다고 캐온거여.”
평일 점심시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밥을 먹으러 온 나를 보고 할머니는 달래부터 꺼냈다. 할머니는 아이고 다리야, 하면서도 싱크대 앞에서 달래를 씻었다. 나는 상을 차리고 제육볶음을 먹다 할머니가 주는 달래를 받아먹었다.
톡, 입안에서 동그란 달래 뿌리가 터지니 흙냄새가 났다. 이윽고 알싸해지면서 달래 향이 올라왔다. 겨우내 꽁꽁 언 땅속에서 추위를 견딘 달래라 그런지 향이 더 진했다. 마트에 파는 달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들에서 나온 달래는 맛이 좋았다. 제육볶음 위에 연거푸 달래를 올려 먹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말했다.
“선운이 아저씨가 나보고 뭐라는 줄 아니? 달래만 보면 눈이 돌아 간디야.”
이웃집 아저씨는 달래만 보면 쭈그려 앉아 캐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 웃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아저씨 앞에서 “우리 소희가 좋아해서.”, “우리 소희 주려고.”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주말 아침이었다. 봄비치고 새 찬 비가 내렸다. 천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일어나 밖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 밥을 주러 나갔다. 현관문을 여니 할머니가 봉당에 나와 있었다. 내 옆에서 밥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보고 할머니가 말했다.
“네가 하도 좋아해서 작년에 달래 밭을 만들었는데, 깜순이 저년이 꼭 거기다 오줌을 갈겨 놓는 바람에...”
사실 할머니는 작년에 담장 안으로 작은 달래 밭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담장 안으로 풀어놓고 키우는 강아지가 꼭 달래 밭에 오줌을 싸놓는 바람에 달래 밭이 없어진 것이다. 할머니는 올해 내게 달래 밭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운 듯 강아지를 나무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아지 밥을 주다 방으로 돌아왔다. 비 오는 주말이라 그런지 침대 밖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었다.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다 다시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볕이 좋은 날 할머니와 밭에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달래를 다듬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흙을 턴 달래를 한 움큼 쥐여주며 말했다.
“달래 밭 만들어놨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달래 여기서 원 없이 캐다 먹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빽빽한 달래를 쓰다듬었다. 이 수많은 달래들을 며칠 동안이나 먹을 수 있을지 헤아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조곤조곤 말하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달래 넣고 국수 비벼주리?”
꿈인가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응. 달래 많이.”
할머니가 웃었다.
“그려. 달래 많이!”
눈을 떴다. 꿈이 아니었다. 시간을 보니 점심이 지나있었다.
‘할머니가 방금 나한테 달래 밭을 만들어놨다고 했었나?’
그때까지만 해도 '국수를 다 먹고 달래 밭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가봐야지.' 했었다. 멀뚱멀뚱 천장을 보다 잠깐 눈을 감았다. 10분이 지났다. 주방으로 갔다. 할머니가 양푼을 들고 방바닥에 펑퍼짐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젓가락을 입에 문채 할머니 앞에 앉아 국수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커다란 그릇 안에 하얀 국수와 양념한 김치, 송송 썬 쪽파와 달래를 넣었다. 그리고 맨손으로 국수를 썩썩 버무렸다. 한 가닥을 집어 후루룩 간을 보더니 국수를 한 움큼 집어 내 그릇에 덜어주었다. 나는 빨간 비빔국수를 받아 들고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물었다. 양념한 김치와 국수가 뒤섞여 새콤달콤했다가 달래가 씹힐 때는 알싸함에 코끝이 찡했다.
“맛나다. 그치?”
"응. 엄청 맛있어."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눈은 반지르르한 국수에 가 있었다. 나는 젓가락질 네댓 번에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더 주리?”
나는 입에 국수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비빔국수가 너무 맛있는 바람에 달래 밭을 확인하러 간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다음 날 출근 시간에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열다 오른쪽을 봤다. 담장 밑으로 쪼르륵 달래가 심어져 있었다. 할머니가 강아지가 오지 못하는 곳에 달래를 심어 놓은 것이었다. 담장 밑으로 자리 잡은 달래를 보니 언젠가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달래는 심어 놓은 자리에 매년 나오는거여.”
할머니의 말처럼 담장 밑 달래는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나올 것이다. 나는 해마다 할머니와 함께 이 달래를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봄이면 할머니와 담장 밑에 쪼그려 앉아 달래를 캐고,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으면서 말이다.
자전거가 대문턱을 넘어가는 소리에 할머니가 창문을 열었다.
“잘 댕겨와. 항시 조심하고!”
나는 네, 큰 소리로 대답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비가 개인 뒤라 하늘이 청명했다. 달래를 심어 놓은 곳으로 볕이 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