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에게

by 시선

고모가 방학 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고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밥’부터 찾았다. 할머니가 그 말에 우라질, 한마디 하더니 찌개 끓일 채비를 했다.

밥상이 차려질 동안 고모는 욕실에 들어가 아이들을 씻겼다. 거실에 앉아있던 나는 열려있는 욕실 문으로 아이들을 봤다. 아이들은 못 본 사이 콩나물처럼 쑥 자라 있었다. 첫째 민건을 씻기고 둘째 민채를 씻기던 고모가 내게 말했다.

“민채 많이 컸지? 내가 일하고 오면 민채가 지 오빠 챙겨서 저녁 먹고 설거지도 싹 해놔. 얼마나 야무진데.”

아홉 살 민채 위로 열두 살 민건이 있다. 민건에겐 어려서부터 과잉 행동 장애가 있었다. 주의가 산만한 건 물론이고,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친구들을 때려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게 했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이리저리 뛰어놀다 다치기도 했다. 민건은 행동 치료를 받아야 했다. 치료비용은 비쌌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거실에서 테이블에 반찬을 놓다 큰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민건이 비누칠 한 발로 장난을 치다 넘어진 것이다. 욕실을 보니 고모는 민건의 팔을 잡고 화를 내고 있었다. 민건은 큰 소리를 한 번 듣고 나서야 장난을 멈췄다. 옆에서 민건을 보며 웃고 있던 민채도 놀란 것 같았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여와서 밥 먹어라.”

할머니의 부름에 아이들은 잽싸게 욕실을 뛰쳐나왔다. 아이들은 속옷 바람으로 밥상 앞에 앉아 쌀밥을 한 숟갈 크게 펐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 선풍기를 돌리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려주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해치웠다.

“언니 방에 가서 놀고 싶어.”

밥을 다 먹은 민채가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뒤이어 쫓아온 민건이 내 방에 들어오더니 침대 위에 올라가 뛰어놀았다. 민건을 보고 서있던 민채는 침대 위에 있던 강아지 모양 베개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것을 안았다.

순간 민건의 뜀박질에 개어놓은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민채는 민건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지.”하고 제 오빠 대신 이불을 갰다.

민채가 내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주고 싶었지만 급한 대로 A4용지와 형광펜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민채는 네 가지뿐인 색으로 가만히 그림을 그렸다.

“생일인데 꽝이야.”

갑자기 민채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민채의 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초콜릿 케이크 먹고 싶어. 안에까지 다 초코인 걸로.”

제 오빠 대신 이불을 개어주는 ‘애어른’ 같던 민채가 그제야 아홉 살 같아 보였다. 나는 민채의 생일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 미안해 지갑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초코케이크 주세요. 안에까지 다 초코인 걸로요.”

집 앞 빵집에서 제일 달아 보이는 초코 케이크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나는 거실 한가운데 케이크를 놓고 가족들을 불렀다. 그러자 고모는 민채 좋겠네, 하며 민채 머리 위에 고깔모자를 씌워주었고, 할머니는 고깔모자를 쓴 민채를 보고 연신 예쁘다고 말했다. 민건은 폭죽을 터트리고 싶은지 벌써부터 폭죽을 터드릴 준비를 했다. 나는 초를 지그재그로 꺾어 예쁘게 케이크에 꽂아 놓고 불을 붙였다.

“사랑하는 민채의 생일 축하합니다!”

가족들이 민채를 보고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와 고모는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고 민건은 신이 나는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휴대폰으로 민채와 가족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러다 민채의 앞으로 가 민채의 얼굴에 줌을 당겼다.

이상했다. 웃고 있는 줄 알았던 민채가 웃고 있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힐끔힐끔 곁눈질을 했다.

민채는 여태껏 이런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던 걸까, 그런 민채를 보니 마치 어린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 모르게 그늘져있고 또 나이답지 않게 철이 든 나의 아홉 살을 마주한 것 같았다.


아홉 살이던 어느 날 밤, 나는 무언가 쨍그랑하고 깨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안방에서 아빠의 고함이 들렸다.

“빚을 갚진 못할망정 카드 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어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눈물이 났다. 코에서 묽은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훌쩍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죽였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안방에서 깨진 도자기와 화병을 주웠다.

며칠 뒤 엄마는 집을 나갔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나는 열린 방문 사이로 엄마가 짐을 챙겨 나가는 모습을 봤다. 뒤이어 아빠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나갔다. 밖은 컴컴했다. 나는 달랑 내복만 입고 있어 몸이 떨렸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어 발이 시리기도 했다. 나는 달려가 아빠의 손을 잡았다. 커다랗던 아빠의 손이 차가웠다.

길가에는 가로등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앞에 걷던 엄마가 가로등을 지나치고 나면 한동안은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걷는 내내 엄마가 다음 가로등 불빛에 다시 비치기를 바랐다.

“아빠. 엄마 어디 가는 거야?”

“장난치는 거야.”

아빠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땐 억지로 웃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록 아홉 살 밖에 안됐지만 그 순간 아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지금 집을 나가려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려는 것이다.’

엄마가 가로등 불빛을 지나쳐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번에 엄마를 붙잡지 못한다면 다신 엄마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잡고 있던 아빠의 손을 놓고 엄마를 향해 뛰었다.

“엄마 가지 마.”

뛸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그리고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 엄마가 울었다. 엄마는 나를 안았다. 나는 엄마 배에 얼굴을 묻다 엄마 뒤로 비치는 아빠의 모습을 봤다. 아빠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홉 살, 나는 어렸어도 엄마 아빠가 싸우는 이유는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쟤는 무슨 애가 애교도 없어.”

집안 어른들은 가끔 집에 와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었다. 아홉 살 나는 앙탈을 부릴 줄도, 애교를 부릴 줄도 몰랐다. 나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어린것이 철이 일찍 들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엄마 아빠 대신 나를 키우던 할머니는 내게 ‘어린것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했었다.

그날, 생일 케이크 앞에서 마음껏 웃지 못하는 민채를 보며 할머니는 그때 같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겐 아주 익숙하던 그 표정을 말이다.


펑.

민채가 폭죽을 터뜨렸다. 귓속을 울리는 폭죽 소리에 놀랐는지 민채는 곁눈질로 어른들의 눈치부터 살폈다. 어른들이 웃으니 그제야 민채도 웃었다. 나는 그런 민채를 안았다.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민채의 작은 어깨가 품에 들어왔다. 순간 나는 어린 나를 껴안는 것 같았다. 어른인 내가 어린 나에게 괜찮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민채의 등을 여러 번 쓸어내렸다. 그렇게 나는 아홉 살의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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