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아홉 이모가 보낸 사진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월간지 『좋은생각』을 읽었다. 용인의 끝자락, 서점 하나 없는 시골에 살던 우리는 시내를 나갈 때마다 꼭 서점에 들러 그 얇은 책을 사 오곤 했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나서부터 엄마는 이따금 나에게 그것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가 읽는 월간지에 글을 싣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장소희 씨 되시죠? 보내주신 원고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평일 점심이었다. 집에서 밥을 먹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남자는 자신을 좋은생각사람들의 편집부라고 소개했다.
전화를 받기 한 달 전, 『좋은생각』에 글을 응모했었다. 응모 주제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상금 백만 원이 걸려있는 주제 <그러나>였다.
내가 쓴 글은 지난여름의 이야기였다. 지독한 장마 때의 이야기였다.
주말 아침 비가 폭포처럼 쏟아졌었다. 윗동네 저수지에서는 방류를 시작하였고, 집 주변 배수로는 밀려들어온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 빠져나가지 못한 빗물이 집을 지어 삼켰다. 나는 집을 잃었다. 수재민이 되었었다. 일상을 통째로 빼앗겼다. 좋은 시간보다 좋지 않은 시간이 더 많았다. 일기도, SNS 기록도 모두 하기 싫었다. 며칠은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기록해두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집을 잃고 남의 집 생활을 하며 매일 밤 이불에 들어가 휴대폰 메모장에 일기를 적었다. 망가진 집의 모습과 사람들, 동네의 분위기, 나의 마음을 그대로 적었다.
‘…어떤 남자가 물에 잠기고 있는 우리 집을 보고 누구에게 보내려는 듯 동영상을 촬영하였다. 휴대폰을 빼앗아 짓밟고 싶었다.’
일기를 쓰고 나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일기를 쓰던 이유는 하나였다.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일기의 끝자락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들어가 있었다.
‘집을 치우러 와 준 고모들, 백만 원을 쥐여주던 이모할머니, 옷을 보내 준다던 친구, 면사무소에서 구급 용품을 챙겨주던 이웃들...’
물심양면으로 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일으켜 세우던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슬픔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덕분에 하루의 끝이 조금이나마 아름다웠다.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고마움이 담긴 일기를 다듬어 『좋은생각』에 보내기로 했었다.
그날 나에게 전화를 건 남자는 내 글이 채택되었다고 말했다. 나더러 상금 백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 말에 밥을 먹다 말고 일어서서 두 발을 굴러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에게 말했던 건지, 그 남자에게 말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저 나와 가족을 보듬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것도 엄마가 자주 읽는 잡지에서 말이다.
밥상 주변을 빙빙 돌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됐데. 나 백만 원도 받는데!”
엄마는 계속해서 "진짜?", "정말이야?"라고 되물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매일 책이 오길 기다렸다.
전화를 받을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집 앞 우체통에 비닐에 쌓인 『좋은생각』 한 권이 꽂혀있었다.
그것을 들고 집에 들어와 겉옷을 벗지도 않은 채 책 포장을 먼저 뜯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보던 잡지에 정말 내 이름과 내 사연이 적혀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많은 사람의 사연을 건너뛰어 <그러나> 페이지를 찾았다.
‘용인시 처인구 장 소희.’
집에 물이 차던 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아프던 가슴이 이제는 설렘으로 뛰고 있었다. 두려움의 눈물이 아닌 설렘의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엄마가 잡지를 들고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앉아 글을 읽었다. 엄마가 울었다.
그날 이후 친구들은 내 사연이 실린 잡지를 직접 사서 읽어주었다. 책을 손에 쥐고 사진을 찍어 ‘인증샷’을 보내왔다.
제일 먼저 희원이 책을 손에 쥔 사진과 문자를 보내왔다.
‘야. 동네 서점에서 이거 사려다 과월호로 잘 못 사는 바람에 시내까지 나갔다 왔어. 네 이름이 실린 잡지를 커다란 서점에서 보는데 나까지 벅차더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네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나서 간신히 참았어. 진짜 축하해.’
세연도 책을 손에 쥔 사진과 문자를 보내왔다.
‘나 지금 교보문고야. 추운데 내 손으로 직접 사고 싶어서 남자 친구랑 걸어왔어. 교보문고에서 네 이름을 보니 신기하다. 글 잘 읽었어. 정말 고생했다. 축하해.’
나와 제일 오래된 친구 연옥은 ‘나 운다.’라는 짧은 문자와 함께 ‘눈물 셀카’를 찍어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매일 그런 종류의 축하를 받는 것에 행복해했다.
글이 실린 지 보름 정도가 지났다. 주말이었다. 늦잠을 자고 있었다. 방문이 열렸다. 엄마가 나를 깨웠다.
“소희야. 이것 좀 봐라. 네 큰이모란다.”
눈을 떴다. 엄마가 내 얼굴 앞으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엄마의 휴대폰 메시지 함이 보였다. 큰이모의 이름과 그 밑으로 사진이 보였다.
“큰이모?”
의아했다. 그동안 이모와 가깝게 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껏 해봐야 다 여섯 살 때 이모 집에 놀러 갔다가 운다고 혼난 기억이 전부이니 말이다. 그때 나는 목소리 큰 이모가 무섭기만 했었다. 큰이모는 쉰여덟인 엄마와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왕언니’이다. 일흔여덟 나의 친할머니보다도 한살이 많은 ‘할머니’이다. 이모와 짧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우리 소희 다 컸을 텐데, 이모가 한번 보러 가야 하는 데..’ 그러던 이모였다.
“니 큰이모가 니가 쓴 글을 똑같이 써봤댄다.”
엄마의 휴대폰을 받아 사진을 확대했다. 손자의 밥상 같아 보이는 작은 뽀로로 상이 보였다. 작은 상 위에는 공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펼쳐진 공책 위로 손글씨가 빼곡했다. 공책 위에는 또 다른 종이의 가장자리가 보였는데, 마찬가지로 손글씨로 빼곡했다. 아무래도 공책에 옮겨 적기 전 연습을 한 모양이었다. 자세히 삐뚤삐뚤한 이모의 글씨를 보았다. 내가 쓴 글을 따라 쓴 이모의 글을 보았다. 얼마 전 엄마는 큰이모가 노인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고 했었다. 이모가 한글을 배워 나의 글을 따라 썼다. 아이 같은 글씨체로.
나는 그 글씨를 구경하다 책에 인쇄 된 그림까지 따라 그린 이모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다음 장을 넘기니 이모의 편지가 있었다.
‘소희야. 글을 잘 지였구나. 엄마가 이야기해서 이웃집 책에 차자보니 장소희가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찌거 와 소희 글을 따라 써보았다. 이모가 사랑해. 우리 집안에 경사 났다. 이모도 맛있는 것 사조. 책 한 권 선물해 주세요. 화이팅.’
맞춤법도 틀린 이모의 엉성한 글씨체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앞에서 다시 잠을 자는 척을 하고 이불에 들어갔다. 이불로 눈물을 훔쳤다. 잘 보이지도 않을 눈으로 손자 밥상에 앉아 내 글을 따라 쓰는 이모의 모습이 그려졌다. 구부러진 글씨를 보니 호랑이 같던 이모가 많이 늙었구나 싶었다. 엄마가 큰이모를 보러 갈 때마다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나중에, 나중에 하며 이모를 보러 가길 차일피일 미루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날, 일흔아홉의 이모는 내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축하를 보내왔다. 작은 책상에 앉아 나의 글을 한자씩 옮겨 적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왔다. 이모가 옮긴 나의 글은 내게 최고의 축하가 되었다.
곧 이모를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