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문 여셨나요?"
"그럼요, 스스럼없이 머물다 가세요."
영광스러운 발걸음으로 30년이 훌쩍 넘은 인사동 고갈비집에 갔다. 막걸리를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 4시. 골목을 돌아가니 야구장 옆 초록색 펜스를 친 간판 없는 고갈비집이 보였다. 그동안의 연식이 보이는 건물과 흔적에 갓난쟁이인 내 발걸음이 아장거리며 사실 주춤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창문을 들여다보니 주인 할머니가 장사 준비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보인다. 왠지 모를 감사함으로 문을 열려했을 때, 창 문 틀에 끼워진 '와사등의 추억'이라 쓰인 글이 보였다. 30년 단골손님이 쓴 글인 것 같았다.
"내 젊은 시절, 여기 와사등에서 나눈 친구들과의 막걸리 술잔과 세상과 인생의 얘기들로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한다. 이를 어찌 잊으리오. 30년 전 21살 때... "
30년이란 세월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30년 전 21살에 이 곳에 왔던 50대의 추억을 함께 되새기고 있다. 몇 년 전에 비엔나에서 3대 카페를 가보겠다며 센트럴 카페를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작가 페터 알텐베르크도 자주 왔던 카페라고 한다. 그때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 시대를 상상했었는데, 이 고갈비 집은 그보다 마음의 울림이 더 컸다.
문을 살짝만 열어 고개만 들이밀고 말을 건넸다.
"지금 문 여셨나요?"
할머니가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며 대답하신다.
"그럼요, 스스럼없이 머물다 가세요."
스스럼없이, 그것도 머물다 가라고 하신 말씀이 또 마음에 꽂힌다. 그러면서 저번 하동에 놀러 갔을 때 우리를 보고 "어디서 왔어 이 청춘들은?" 말을 건네었던 슈퍼 아줌마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나에게 예뻐 보이는 말투 이런 어투다. 그동안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따듯한 말소리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낮은 지붕 밑으로 테이블이 정말 많았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왼쪽 편은 불이 켜져 있었고 중앙은 누군가 막걸리를 먹고 나간 흔적이 있었다. 오른쪽 한편은 불을 켜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영화 <북촌방향>에서 배우가 혼자 술을 먹던 자리였다. 나는 불 켜진 왼쪽 편 벽에 붙은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께서 당연스레 막걸리를 푸고 계신다. 조금 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40대 남녀가 들어온다. 내가 그랬듯 가게의 왼쪽 편으로 걸어 들어와 우리 테이블 뒤에 앉는다. 연이어 두 번째 종소리가 올리고 남자 둘과 또 다른 커플이 들어온다. 모두 연세가 지긋한, 오래전부터 알던 단골손님인 듯 보였다. 두 번째 손님들 역시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 옆으로 온다. 갓난아이가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이 신기하듯. 그 표정으로 나는 연신 눈을 굴리고 있었다.
“아니, 간판도 없는 막걸릿집에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네”
할머니가 막걸리를 세숫대야 만한 양동이에 퍼서 테이블에 툭. 하고 내어놓으신다. 내어주신 막걸리를 사이좋게 나눠 담고 한입 마시니 아주 맛이 좋았다. 이게 바로 얼. 죽. 아라며 평소 잘 먹지도 않는 막걸리 한입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떤 포스트를 읽었는데 이 곳은 고갈비 맛이 술 마시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라, 단지 이 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술 마시기 좋은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고 했다. 나는 막걸리를 마셨을 뿐인데 그 말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듯 공간이 주는 힘이 몸에 퍼졌다. 그것은 알코올이었을까.
아 참. 빈대떡이 맛있었다. 빈대떡을 한입 물고 입술에 묻은 기름을 쪽쪽 빨아 오물오물 씹으니 심심할 때쯤 입속에서 청양고추가 알싸하게 터졌다. 막걸리를 먹을 때마다 양동이에서 퍼담는 게 재밌었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엘피의 수고로움을 말하는 것처럼 나도 이곳에서 막걸리를 푸는 행동의 수고로움으로 재미를 얻었다.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양동이 속을 휘휘 저어 차가운 막걸리를 엄지에 묻힌 채 각자의 잔에 담는다. 그리고 얼굴만 한 잔을 들어 꿀떡꿀떡 마신다. 막걸리 한잔을 따르는 행위에 시각, 촉각, 청각을 동원한다. 그리고 빈대떡 한 조각에 후각 미각은 말할 것도 없다. 자세히 보면 우리는 오감 만족하며 막걸리에 목을 축이고 있었다.
이야기 재료가 떨어지면 고개를 돌려 벽에 쓰인 낙서를 보면 된다. 삐삐 치라는 낙서, 사랑의 낙서, 삶의 낙서, 우정의 낙서 등 여러 사람들의 아우성이 녹여져 있다. 나도 볼펜을 꺼내 세월의 흔적이 제일 가벼운 낙서를 세긴다.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의 역사를 세기는 심정으로. 이 공간이 사라지지 않게,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실 수 있게, 나름의 염원을 담는다.
* 와사등 고갈비집은 2020년부로 영업 종료되었고 다른 곳으로 이전 하신다고 한다.
글과 사진 / 장소희 @pppmpmff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