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그렇다.
벅차오르는 눈물, 그다음에 이유를 찾는다.
감정이 늘 이성보다 빠른 탓이다.
터지는 감정을 이성이 애써 따라잡는다.
열심히 분석하기도 한다.
이 눈물은 뭘까
슬픔일까 고마움일까
애틋함일까 그리움일까
소중함일까 연약함일까
행복일까 불안일까
이토록
감정의 이유를 찾으려는 것은
명명할 라벨을 붙이려는 것은
왜 우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준비일 수도 있고
왜 눈물이 나는 거냐는
나의 추궁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늘 감정의 분출 혹은 폭발이
이성의 분석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속도 만이 아니다.
감정의 섬세함은 아무리 갈고닦은 이성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
행복과 불안 그리고 불행이라는
단어의 낙인, 그 이전에
감정은 무수히도 많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2D도 3D도 아닌
존재하는 지조차 모를
그 이상의 차원에서
무한한 스펙트럼의 형태로
감정은 존재한다.
그래서 차마
1차원적인 단어로는
차마 설명되지 않는 게 당연한
우리네의 감정이다.
그러니 더 이상
감정을 몰아세우지 말자.
감정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도 예리하니까.
당장 이해 되지 않는
감정을 하나로 정의하겠다는
욕심은 그만두자.
절대 설명될 리 없으니까.
그보다는 그저 시간을 주자.
나의 감정이 충분히 피어오를 시간,
그 과정을 스스로 살펴줄 시간,
그리고 소중하다고 여겨줄 시간을.
어쩌면 가습기의 수증기처럼
이내 사라지는 것 같아 보여도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을
우리의 감정이니까.
나를 헤칠지도 모르는
건조함과 차가움을
혹은 뜨거움을 달래려고
슬며시 피어올라
주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