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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언니 Jan 24. 2021

불멍 말고 꽃멍 어때요?

매일 꽃을 바라봅니다.


최근에 꽃을 선물한 적이 있나요?


저는 꽃을 자주 선물하는 편입니다. 제가 꽃을 좋아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만큼 근사한 일이 또 있을까요? 게다가 꽃을 받고 미소 짓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꽃을 주는 저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꽃은 특별한 날에만 주고받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생 때까지는 졸업식과 입학식 날 꽃다발을 받은 게 전부였거든요. 대학생 때는, 21살 성년의 날 때 장미꽃 한아름을 받은 이후로 꽃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꼭 축하할 일이 있어야만 꽃을 선물하는 거구나 생각했었죠.
이런 제 생각을 바꿔줄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대학생 때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데 제 친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는 겁니다.

"지금 학교지? 줄 게 있어. 학교 앞으로 갈게!"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만나자는 친구가 의아했습니다. 그 친구가 사는 곳과 제가 다니는 학교는 거리도 꽤 있었거든요. 저 멀리서 친구가 걸어오는데 손에는 작은 꽃다발이 있었어요. '나 만나고 누구 만나러 가나? 웬 꽃이지?' 생각하고 있는데, 대뜸 그 친구가 저에게 꽃을 내밀었어요. 꽃 선물하고 싶은 친구들 주려고 직접 만들었다고요. 순간, 저는 머리를 한 대 때려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무 날도 아닌데 꽃을 받는 일이 이렇게 가슴 설레는 일이구나. 하고요.

그날 느꼈던 제 감정이 오롯이 그 친구에게 전달되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당황한 나머지 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직도 아쉬워요. 저는 그날 친구에게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선물 받았어요. 꽃 몇 송이에 친구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꽃이 주는 힘은 대단한 것 같아요.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충격이랄까요. 그 친구를 계기로, 저도 아무 날도 아닌 날 꽃을 선물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꽃은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선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꽃을 좋아해서 얼마 전부터 꽃을 배우고 있어요. 제 하루를 온전히 꽃 만지는 데에만 쓰고 있죠. 저는 이 날을 "꽃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코로나 19로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요즘, 꽃요일은 일주일 중에 제일 설레고 행복한 시간이에요.

꽃을 배우고 나서 꽃을 대하는 제 태도가 변했어요. 꽃을 배우기 전까지는 활짝 핀 꽃만 좋아했거든요. 시들어가는 꽃은 예뻐 보이지도 않고 볼품없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꽃을 보고 있노라면 꽃은 활짝 핀 순간뿐만 아니라 시들어가는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꽃이 메말라간다 싶으면 바로 버렸어요.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꽃을 더 오래 내 곁에 머물게 할까 애쓰게 돼요. 꽃은 관심과 사랑을 줄수록 더 오래 피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꽃이 물을 많이 머금을 수 있도록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 물 올림을 해주고, 물도 자주 갈아줘요. 보존제도 쓰고요. 그렇게 하니 2-3일이면 시들었던 꽃이 일주일 이상 그 자리에 예쁘게 피어 있어요. 꽃에 신경 쓰고 마음 준 만큼 보답해주는 것만 같아서, 어떤 날은 꽃이 갸륵하기도 합니다.



꽃요일에 만든 작품들


꽃은 사치가 아니라 가치다.


친구들에게는 꽃 선물을 자주 했지만, 저를 위해 꽃을 산 적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 꽃을 주문하곤 합니다. 꽃이 주는 힘을 믿어요. 집에 꽃 한 송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에 활력이 생기고, 제 삶이 풍성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요즘에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들으며 불을 바라보는 것을 불멍이라고 하던데, 저는 꽃멍을 자주 합니다. 집에 있는 꽃을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얼마나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지 느껴보세요. 아무 날도 아닌데 꽃을 선물하는 게 얼마나 두근거리는 일인지 알고 싶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요? 셀프 꽃 선물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다가오는 봄에는, 친구들에게 더 자주 꽃을 내밀 생각입니다.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 꽃을 바라보는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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