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유학생활
포르투갈 하면 1년 내내 맑은 날만 있을 줄 알았던 나는 포르투에 1년간 유학하면서 날씨의 중요성을 뼈 저리 실감했다.
포르투갈에 발을 들인 9월 초는 맑은 하늘과 적당히 더운 날씨에 와인 한잔 하면 더위가 싹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10월이 되더니 날씨는 점점 우중충해지고 비바람이 쏟아지는 날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포르투갈이다.
비바람도 일본의 장마철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운치 있는 비가 아니라 걷기 힘들 정도로 거센 비바람인지라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학교조차 가고 싶지 않게 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그토록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비가 와도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신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 우산 써라 누누이 들어왔던 나에게는 보기만 해도 엄마의 꾸중이 들려오는 듯했다.
젖은 머리도 말려야 되고 축축해진 양말 때문에 기분도 안 좋을 터인데.
괜찮은 걸까?
젖은 가방 안에 있는 노트도 수업 중에 받은 프린트도 다 젖어버릴 텐데.
무엇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데 신경 안 쓰이나?
우산을 쓰며 걸어가는 내 앞을 달랑 후드 하나 뒤집어쓴 포르투갈 학생이 천천히 내리막길을 내린다.
그 소신 있는 뒷모습이 아직까지도 인상깊이 남아 있다.
그렇게 삶의 이치를 전부 깨우친 듯한 포르투갈 사람들과 달리 흐리고 비 오는 날들은 때때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추적추적 운치 있게 오는 비라면 집에서 커피 한잔, 케이크 한입 먹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겠으나
회색빛하늘에 우산조차 견딜 수 없는 바람이 한 달, 두 달 계속되어 도무지 무언가를 할 기력이 나지 않았다.
유학에 왔으니 하루하루 특별한 나날을 보내야 할 것만 같고 집콕이 아닌 유학 아니면 해보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도대체 '특별한'이 뭐길래.
새로운 친구 사귀기, 카페에서 책 읽기, 아침 일찍 운동하기,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과제하기 등.
생산적이라 느껴지는 하루에는 늘 에너지가 필요하고 밖으로 나가서 움직여야만 한다.
반대로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서 넷플릭스 보는 날이면 큰 죄책감을 느낀다.
오늘 하루 허투루 보냈다. 의미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그다음 날은 어떻게든 '특별한' 하루를 보내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해 뜰 때부터 보고 있던 드라마를 멈춘 뒤 노트북을 침대 맡에 놓고 잠을 청한다.
유학에 온 지 두 달이 되던 11월, 어김없이 비가 오는 아침.
여기 와서 우산을 벌써 두 개나 샀다.
일본에서 가져온 우산은 잃어버렸고 여기에서 산 첫 번째 우산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바람에 뒤집혀 부서졌다.
이번 우산은 절대로 잃어버리지도 부시지도 말아야지 마음먹었다가 곧바로 포기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어느 때처럼 빗줄기가 굵게 내리던 오후
우산 쓰며 학교 가던 등굣길에 며칠 전 인스타를 교환한 기숙사 친구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다음에 한국음식 먹으러 가자!'
라는 친구의 한마디가 수업 듣는 내내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내친김에 집에 가는 길은 우산을 안 써봤다.
우산을 쥘 필요가 없어서 두 손 다 자유로웠고 두 볼에 차가운 빗물이 스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아닌 오직 빗소리와 차가운 빗물, 그리고 친구에게 어떤 한국요리를 추천해 줄 까만이 머릿속에 있었다.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특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