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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수집가 Jan 21. 2020

인간을 위한 건축을 말하다

현대 건축의 위대한 거장, 르 코르뷔지에


의식주(衣食住)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세 가지 요소이다. 특히 인간 활동은 오래전부터 집(住)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더위, 추위, 비, 맹수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자연동굴에서부터 지상에 집을 축조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종류의 주택이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주거 공간의 의미는 확연히 달라졌다. 주택이라는 상품의 실재적 가치를 넘어 ‘상징적 이미지와 기호의 논리’를 바탕으로 수많은 아파트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가령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각 건설사가 침체한 시장 상황을 타개하는 방안 중 하나로 고유의 아파트 브랜드 도입을 앞다투어 추진하였다. 마케팅 차원에서도 고급화, 차별화 전략을 진행하면서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의 ‘명품’에 대한 선망 심리를 자극하고,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갖고 있던 기존의 사회적 구별 짓기 기제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그렇게 가진 자들에게는 과시욕을 부추기는 수단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신분 상승의 욕망과 과시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되었다.


어느새 부(富)의 척도가 되어버린 아파트. 주거 공간의 의미가 변질된 요즘, “작은 공간이라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는 없을까?”라고 본질로 돌아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한 건축가를 떠올리게 된다. 건축으로 서민들의 삶과 행복을 구하고자 했던, 인간을 위한 건축을 행했던 그는 바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이다.



스위스를 떠나 넓은 세상으로


1877년 10월 6일,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뇌샤텔 주 라 쇼드퐁(La Chaux-de-Fonds)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Charles Edouard Jeanneret)인데, 나중에 파리로 이주한 뒤 르 코르뷔지에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13살 때 그는 ‘라 쇼드퐁 장식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시계 장식과 조각공예를 배웠으나, 시계 장인으로만 머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스승 샤를 레플라토니에(Charles L'Eplattenier)의 권유에 따라 17세부터 건축 공부를 시작했다.


넌 반드시 다른 일을 하게 될 거야.
건축가 말이야.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레플라토니에가 소개해준 젊은 건축가 샤팔라(R. Chapallaz) 밑에서 건축을 배웠다. 1901년부터 약 2년간 제도공으로 일하며 콘크리트 건축에 대한 개념을 배웠으며, 무려 17세에 첫 작품으로 '팔레 주택(Villa Fallet)'을 설계했다. 팔레 주택은 스위스 전통 양식에 따른 주택으로 주변의 전나무에서 영감을 얻은 패턴을 사용했고, 발코니의 철제 난간과 창틀에도 똑같은 패턴을 사용했다.


이를 지켜본 레플라토니에는 다시금 그의 재능에 감탄했으며, 그에 비해 이 마을은 너무 좁다고 판단하여 유럽 여행을 제안하게 된다. 그렇게 팔레 주택을 설계하고 받은 돈으로 첫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는 이후 이탈리아, 발칸 반도, 이스탄불, 아토스 산, 아크로폴리스 등 동유럽과 지중해로 여행을 다니며 건축과 도시에 관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구축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조각을 보면서 향후 삶의 뱡향을 결정할 만큼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초기 작품 '팔레 주택(Villa Fallet)'



건축가의 삶을 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삶을 살기로 한다. 1917년 파리에 정착해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의 사무실에 취직했다. 오귀스트 페레는 파격적인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건축에 도입한 젊은 건축가였다. 그곳에서 철과 시멘트의 가능성을 접한 그는 공업화, 과학화, 기계화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를 겪으며 자신만의 건축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제1·2차 세계대전 전후였다. 유럽 곳곳은 폐허로 변했고, 도시의 많은 건물이 헐리는 동시에 새로운 도시 건설 계획이 세워졌다. 이 시기는 건축가로서의 이상을 실현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또한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거나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을 위해 빠르고 효율적인 집을 짓는 것을 오랜 화두로 삼았다.


대규모 공동주택‘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 habitation)’


그는 도시 재건을 위해 프랑스 임시정부의 의뢰를 받아 대규모 공동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 habitation)’을 설계했다. 현대 아파트의 효시인 이 건물은 강력한 필로티(pilotis)를 떠받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1,600명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340여 채 들어서 있었다. 2층 높이의 거실, 쇼핑가와 편의시설을 갖춘 내부 공간, 건물 중간의 서비스 층, 그리고 옥상에 유치원과 체육시설까지 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


‘돔-이노(Dom-Inno)’ 시스템


한편 그는 스위스에서 돌아와 모교에서 건축학을 강의하면서 현대적 기술을 사용한 건축 이론을 연구했다. 그리고 향후 100년간의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구조를 발표한다. ‘돔-이노(Dom-Inno)’ 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단어는 ‘도미노’란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와 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결합한 단어로, 최소한의 숫자로 얇은 철근 콘크리트 기둥들이 모서리에서 지지하는 단순한 구조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구조가 유럽의 건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건물의 주요 기능들을 구획하는 벽체와 지붕은 구조체와 분리하여 모든 하중을 기둥이 지탱하되, 내부의 입면이나 평면은 자유롭게 구성하게 된다.' 이는 도미노 구조 이론의 핵심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벽은 물론이고 창문도 지붕도 바닥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때까지의 유럽 건축은 벽으로 무게를 지탱했기 때문에 두꺼운 벽이 많이 필요했고, 따라서 창문도 엄청나게 작게 혹은 위아래로 길게 내야 했었다.


이 구조를 바탕으로 ‘현대 건축의 5원칙’을 정립하게 된다. 이는 건축가마다 공법과 미의 기준이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 통일되지 못했던 과거의 건축을 선진화되고 정형화된 건축으로 옮겨놓는 데 핵심적인 공헌을 하였다. 아울러 폐허로 변한 도시를 구하고자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기에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황금 수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현대 건축의 5원칙

1. 철근 콘크리트 기둥인 필로티(pilotis)로 무게를 지탱하고 건축 구조의 대부분을 땅에서 들어올려 지표면(1층)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만든다.
2. 건축가가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도록 구조 기능을 갖지 않는 벽체로 ‘자유로운 입면(façade)’을 만든다.
3. 훨씬 채광 효과가 좋은 길고 낮은 ‘띠 유리창’을 사용한다.
4. 지지벽이 필요 없이 바닥 공간이 방들로 자유롭게 배열된 ‘열린 평면’을 만든다.
5. 건물이 서기 전에 있던 녹지를 대체하기 위해 옥상에 ‘옥상 정원’을 만든다.



인간을 위한 건축을 말하다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 중 하나, 건축.
이것은 행복한 사람들이 만들어냈고, 행복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행복한 도시에는 행복한 건축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당시 보수적인 건축가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멸시를 받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본인의 신념대로 나아갔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 건축에 적용되는 수많은 이론을 만들어내 건축사에 크게 기여를 했다.


특히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인간’을 위한 건축을 했다는 점이다. 그에게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였다. 즉, 집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쾌적함을 제공하기 위해 최적화된 기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지어져야만 했다.


투자와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 되어버린 오늘날의 주거 공간을 바라보며 르 코르뷔지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을 위한 기계로서의 집’이 아닌 ‘공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더 높이, 더 세련되게 쌓아 올릴수록 삭막해지고 공허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주객전도된 공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장 보드리야르, 임문영 옮김, 『소비와 사회』, 계명대학교출판부, 1988.
박소진∙홍선영, 「주거를 통한 사회적 과시의 한국적 특수성: 일본과의 비교」, 《담론 201》 4호, 46쪽, 2009.
[네이버 지식백과]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 ‘인간을 위한 건축’을 행한 현대 건축의 위대한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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