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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수집가 Apr 16. 2020

우리와 그들을 가로지르는 장벽

팀 마샬, 『장벽의 시대』 리뷰


둘 사이의 관계를 순조롭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 이는 장벽의 사전적 의미를 뜻한다. 다만 사전적 의미를 조금은 다른 기준으로 새롭게 재정의할 필요성을 느낀다. 둘 사이의 관계가 아닌, 전 세계라는 확장된 관계로. 초연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거미줄처럼 언제, 어디서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반면 이웃한 나라에서 넘어오는 이주민과 난민을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부터 언어, 민족, 국가, 소득, 세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장벽까지 다양한 장벽을 맞닥뜨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인류는 나누고 가르고 가두기를 반복하는 유구한 장벽의 역사를 목격해왔다. 가까이서는 분단의 상징이자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는 38선을, 지구 반대편에서는 미국-멕시코 장벽을 비롯하여 중국의 만리장성,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가로막는 장벽을 말이다. 콘크리트, 벽돌,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단단한 만큼이나 그것이 상징하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는 깨부수기 어려운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장벽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이해와 타협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장벽의 시대』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책이다. 저자 팀 마샬은 국제 문제 전문 기자로 30년 이상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벼왔으며, 여전히 세계 곳곳에 세워지는 물리적 장벽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여러 사회적 현상을 탐사하고 있다. 나와 타자를 나누고자 하는 욕망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지 않은가. 수렵-채집인이었던 인간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왔다. 외부자로부터 무리와 자원을 지키기 위해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인지된 위험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인간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생존만이 아니라 사회적 결속을 위해서도 중요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우리는 집단 정체성을 발전시키는데, 이것은 종종 다른 집단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우리 집단들은 자원을 위해 경쟁하지만, 정체성 갈등의 요소도 있다. '우리와 그들'의 서사가 그것이다. 

- 팀 마샬, 『장벽의 시대』, 바다출판사, 2020, 11쪽.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떠도는 대신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밭을 일구고 결실을 기다리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진화의 맥락에서) 장애물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동체와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지붕과 벽, 영토를 표시하기 위한 담장, 침탈당한 영토를 되찾기 위한 요새, 그리고 새로운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수비대가 그것이라고 한다. 그런 장벽들은 유용했고 종종 잘 작동했다. 


장벽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로는 사소한 장벽들이 점차 규모를 키워갔다. 그 장벽의 예로는 트로이, 예리코, 바빌론의 장벽들, 중국의 만리장성,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성벽, 하드리아누스의 장벽, 페루의 잉카 성벽, 콘스탄티노플과 다른 많은 곳의 장벽이 있다. 그 장벽들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현재까지 뻗어간다. 그리하여 지금의 장벽은 전기가 흐르고, 꼭대기에는 탐조등과 CCTV까지 갖추게 되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현대 부족은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계급, 인종, 종교, 국적에 따라 규정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부족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와 그들', 다시 말해 타자화를 통한 마음의 장벽들로 귀결된다. 때때로 '타자'는 다른 언어와 다른 피부색, 다른 신념과 다른 종교, 다른 환경과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분리는 자원을 위한 경쟁을 기반에 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정답이며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덜떨어진 사람이라는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월함에 대한 확신과 함께 장벽은 빠른 속도로 솟아오른다.


공포와 불안정의 시대에, 사람들은 인지된 위협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해서 무리를 지을 것이다. 그런 위협은 국경으로만 생겨나지 않는다. 위협은 내부로부터도 생겨난다. 중국이 잘 알고 있듯이.

- 팀 마샬, 『장벽의 시대』, 바다출판사, 2020, 16쪽.


한편 『장벽의 시대』는 국가 간에 세워진 장벽을 통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열과 분쟁, 갈등이 벌어졌는지를 보고한다. 그 분쟁과 분열, 갈등은 국가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심리적 장벽으로도 존재한다.  


가령 중국에서는 외부 세계와 분리된 '거대한 방화벽', 미국에서는 멕시코와의 국경선과 장벽과 내부의 인종적, 정치적 분열,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대립, 남아시아에서는 인도와 그 주변 국가들 간의 분쟁과 이주민 문제, 아프리카에서는 끊임없는 국가적, 민족적, 부족 간의 갈등. 유럽에서는 통합 세력과 민족주의적 분리 세력의 갈등과 난민 문제,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갈등과 내부적 분열이 그 예이다.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격언이 있다. 이는 낡은 속담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진실을 담고 있다. 실수를 두려워하고 희망을 바라며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미래를 계획하는 인간은, 두려움으로 인해 장벽을 세운다. 하지만 장벽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남다르다. 그건 바로 '타협'이다. 자신들의 장벽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속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차이를 해결하려는 우리가 있기에 희망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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