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시 『엄마.냐야.』를 읽고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때는 언제일까. 주어진 삶에 충실하다 보면 한 계절이 지나가고, 한 해가 떠나간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유일한 순간은 잠시 멈춘 채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가 아닐까. 빛바랜 사진을 펼쳐본다던가, 편지 봉투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던가, 어느 순간 친구의 기일이 돌아올 때면 그렇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일들을 떠올려 본다. 태어나서부터 어제까지를 나의 연대기로 본다면 순탄치 않은 사건을 목격하고, 통과하고, 경험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방과 후 책가방을 메고 촛불 행렬에 합류했던 스무 살의 나, 침몰하는 배 속에서 눈을 감았던 친구들, 그리고 장례식에 다녀왔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을 내지 않았던 친구를 통해 ‘세월호’에 대해 들었다. 우리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어수선한 교실에 있었다. 그중 몇몇은 엎드려 울기도 했다. 하교 후에도 한동안 뉴스만 보았다. 전원 구조 소식으로 안도했던 것도 잠시뿐 오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로도 오랜 시간 절망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K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B의 장례식에 와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친구의 죽음, 장례식···. 이 모든 일이 처음이었고, 갑작스러웠고,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시험 기간이라 가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고 친구에게 상처를 준 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장례식에 간다는 말을 전했다.
B는 초등학교 때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 중학교에 가면서 연락이 끊겼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좋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의 순간이 믿어지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B. 그 사진이 왜 영정사진이 되어야만 했던 건지, 왜 처음 보는 B의 언니와 부둥켜안고 이토록 슬퍼해야 하는 건지, 열여덟 살의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동안 자신을 의심했다. 장례식 이후로 눈물이 나지 않았고,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고,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한때 가까웠던 친구가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마로니에 공원과 광화문을 지나갈 때마다 노란 리본을 받고 서명을 했다. 4월 16일이 되면 하늘공원에 들러서 B의 사진을 보았다. 화랑유원지 임시분향소에서 친구들, 선생님들, 아이들, 어른들의 얼굴을 보고 안녕을 빌었다. 매년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노란 리본을 단 채 행진하고, 연극을 만들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스물다섯 살이 된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친구를 떠올리며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순간이 시간 속으로 자꾸만 숨어들었다. 기억을 망각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현재로 자꾸만 불러냈다. 그럴 때면 그때의 사건과 기억이 함께 지금 내가 있는 공간으로 오는 것 같았다. 잊지 않도록 몸과 마음에 각인하여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다. 여전히 나는 그날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곤 한다.
『엄마. 냐야.』는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시(肉聲詩) 모음이다. 그들의 시선으로 쓰되 시인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일종의 제의적 행위가 이루어진다. 생일 모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아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아이를 마음에 새기고 부모님과 친구들,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는 치유 프로그램”[1] 중 하나로 치유공간 ‘이웃’에서 진행됐다. 그동안 세월호를 주제로 다루는 많은 작품을 접해왔지만, 친구들의 목소리로 쓰인 육성시는 읽어본 적 없었다. 시인은 남겨진 사람들이 아픔이 아닌 그리움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받아보고 싶었다. 한 사람이 태어난 가장 특별한 날.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말을 전할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의 스물다섯은 어떠냐고 묻고 싶었다. 다른 시집이 아닌 이 시집을 먼저 손에 든 이유이기도 하다.
왜 그 깊은 바닷속으로 되돌아갔냐고 슬퍼하지 마
눈 딱 감고 앞으로만 뛰어갔으면 행복했을까?
친구의 소중한 눈빛을 봤으면 누구라도 되돌아갔을 거야
친구가 부르는데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어
이해하지?
난 사랑 가득한 주아니까
곽수인 외, 『엄마. 냐야.』, 「나는 그림 편지, 주아예요」, 난다, 2015, 66쪽.
B가 바다에서 올라왔던 날, 일부러 학생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그것만은 놓지 않았다고 한다. 주아는 친구들의 소중한 눈빛을 보고 뒤로 돌아가기를 택했다. 그 눈빛을 봤더라면 누구도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도 남겨진 누군가를 생각할 줄 알았다. 이를 사랑이라고 바꿔 부르고 싶다. 시를 읽어가는 동안 “보이지 않지만 우린 모두 기억의 끈으로 묶여” 있게 된다. 물리적으로 가까이할 수는 없어도 함께 나눴던 기억의 끈만은 놓지 않게 된다.
캐치볼을 하고 기타를 치고 책을 읽으며
부푼 꿈을 꾸고 또 꾸어도 부족하지 않은
넉넉한 하루.
25시간보다 훨씬 더 긴 하루.
하루와 하루가 찰랑찰랑 잠 없는 꿈처럼 이어져서
모든 시간이 그저 하루나 마찬가지.
- 곽수인 외, 『엄마. 냐야.』, 「바람과 구름과 빛과 호연이와」, 난다, 2015, 73쪽.
B는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였다. 같이 노래방에 가는 날이면 더 듣고 싶어서 불러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교내 축제나 학예회에서 빠지지 않고 노래를 불렀고 밴드부 보컬로도 활동했다. 졸업식 때 대표로 부르기로 했던 ‘거위의 꿈’은 가수 김장훈과의 듀엣곡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수색작업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B의 아버지가 직접 노래를 공개했다. 매년 세월호 추모 행사 때면 B의 노래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 B는 수의사의 꿈을 가진 친구이기도 했다. “부푼 꿈을 꾸고 또 꾸어도 부족하지 않은 / 넉넉한 하루” 속에서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여전히 수의사가 되고 싶은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지 묻고 싶었다. 25시간보다 훨씬 더 긴 하루 속에서, 32일보다 훨씬 더 많은 날 속에서, 366일보다 훨씬 더 넘치는 곳에서 마음껏 꿈꿀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한자리에 앉아서 진득하게 읽지 못했다.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새벽에 읽다가 덮고 또 읽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잠시 멈춘 채 한참을 울기도 했다. 내 친구들, 소중하고 귀한 이들의 못다 한 삶이 아쉬웠다.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일상과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일이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의 연극 <그녀를 말해요>는 세상을 떠난 그녀와 그녀를 떠나보낸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유가족의 인터뷰를 배우들이 직접 재현하는 연극이었다. 무엇보다도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했다. 마지막 40분을 남겨두고 텅 빈 무대 위에 오른 한 배우는 304명의 이름을 외워서 말했다. 잠시라도 뜸 들이지 않고, 멈추지 않고 끝까지 말했다. 동시에 영상 스크린에는 그들의 이름이 띄워졌다. 이름을 말하는 동안 관객은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이름을 발화하는 배우, 그것을 듣는 관객 모두에게 40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엄마. 냐야.』는 서른네 명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면서 지내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한다. 배우의 입을 빌려 발화되는 이름, 시인의 입을 빌려 발화되는 육성시 사이에는 시구와 단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아이들의 존재를 선명히 그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이름을 부르고 목소리를 대신 상상하여 받아 적는 등 일상적 행위를 통해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는 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일.
과거를 돌아보면서 지난 시간과 현재의 삶이 강하게 엮여 있다고 믿었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사건은 단순히 과거에 놓여있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현재의 나와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때로는 상처를 내고, 때로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패배한 현재를 살아간다는 감각을 전해준다.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18살의 내가, 매년 봄이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연극의 막이 내려가기 직전의 장면은 다음과 같았다. 한 배우가 무대로 나와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는 스크린을 향해 물건을 던졌다. 이내 배우들이 모여 스크린이 일렁이는 걸 바라보았다. 잔잔한 물에 돌을 던지면 생기는 물결처럼. 희망의 울림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연극은 어찌 됐든 희망으로 끝날 것이다.” 마지막 대사처럼 남겨진 우리의 삶은 희망을 향하게 될까. 언젠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일이 익숙해질 때면 B에게도 용기 내서 말할 수 있으리라. “안녕. 나야.”라고.
참고문헌
[1] 곽수인 외, 『엄마. 냐야.』, 난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