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삶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이다.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차창 밖을 내다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실감한다. 만일 내일 당장 종착역에 도착한다면 지나온 삶의 풍경은 어떻게 기억될까. 덧없이 지나가는 한 계절처럼 모든 것은 잠시 머물다가 저마다의 길로 떠난다. 프란츠 카프카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일기를 적었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라고.
그렇다면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어느 순간부터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지만, 거대하고 난해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린 적은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처럼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듯이,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뿐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글에서 생을 배우기도 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삶에 밀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으로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과 죽음 바로 앞에서 기록을 남긴 사람의 글을 읽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이에 필자는 삶이 쓰러져가는 속에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은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아침의 피아노』는 암 선고를 받은 때부터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서 기록했던 234편의 단상이 담겨있다. 선생의 모든 생이 쓰인, “투명하게 소멸하면서 낚아챈 빛나는 아포리즘”을 통해 죽음 가까이에서 죽음에 대해 사유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일상 속에서 육체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운동을 떠올려보자.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 몸이 뜨겁게 달궈지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이윽고 심장은 세차게 요동친다. 중력에 저항할수록 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느껴지지 않던가. 이때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신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몸이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물건에 살을 베이거나, 심각한 통증이 찾아오면 평소에 신경 쓰지 않았던 부위가 커다랗게 다가오곤 한다.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뿐이다. 그것들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p.29)
한편 선생은 암 선고를 받는 순간부터 육체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이토록 무거웠던가.”(p.70)라며 새삼 무게를 체감하기도 한다. 암 선고는 평생에 걸쳐 정신을 쌓아오고, 세상에 지식을 전해온 선생에게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소식이었다. 이에 정신을 육체로 증명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온몸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 몸과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에 시선을 쏟는 것만이 삶의 책무를 다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의 성찰이 시작되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p.24)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각자의 몫을 살아간다. 해가 무심하게 떠오르면 누군가는 서둘러 출근길에 나서고, 누군가는 복잡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작은 반경 아래서 바쁜 일상이 반복되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사라진다. 분명히 다채로운 색채를 띠는 삶이지만 점점 무채색의 삶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별다른 의심 없이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p.77)가지만 병을 얻는 순간,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깨어나게 된다. 늘 듣던 말이 새로워지고 세상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못다 한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해야 할지를. 그렇게 선생은 세상을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중략) 그건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질량이고 무게이고 깊이다. 그러니까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시간은 이제 내게 존재 그 자체이다.” (p.249)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사랑’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고 싶었던 건 세상을 향한 사랑이었다. 삶의 끝에서 중요한 가치는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또한 확신에 찬 어조는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함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삶”이 어떤 삶인지,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 사색하게 한다.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내가 끝까지 사랑했음에 대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p.161)
그래, 나는 사랑의 주체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
그걸 늘 가슴에 꼭 간직할 것. (p.268)
사랑을 노래하는 따뜻한 문장들이 마음을 보듬어 준다. 다 괜찮다고, 세상이 우리를 사랑하고 언제나 사랑의 주체는 우리라고. 이렇게 멋진 사실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삶을 바쳐서 쓴 문장을 음미하고 곱씹을수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을 향한 사랑의 시선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7월까지의 기록에서는 긴 글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접어드는 순간, 숨이 턱 막히게 된다. 짧아진 문장들과 커진 여백들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공백을 맞이한 독자들은 어떤 글보다도 큰 힘을 가진 공백이라는 언어를 체험하게 된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를 끝으로 책을 덮지 못한 채 한참을 머물게 된다. 세상을 떠난 선생의 부재를 실감하는 동시에 정말로 보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며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여운을 느낀다.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내 마음은 편안하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마치면 삶을 나란히 걸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몸이 아프지 않아서, 죽음은 아직 먼 일 같아서 그랬을까. 선생의 언어가 무던하게 다가올수록, 나도 문장을 무던하게 따라갔다. 차분하게 책을 덮고 나서 제목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침의 피아노∙∙∙∙∙∙."
부제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지만 애도와는 정 반대 지점에 놓여있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의미보다 생의 기쁨과 찬란함이 담뿍 담겨있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지나칠 때 들려왔던 선율을 기억한다. 단순한 멜로디가 실어 오는 고요와 평화로움에 마음이 편안했다. 선생의 삶도 피아노 선율처럼 아름답게 흘러왔던 건 아닐까. 오선지 위 마침표처럼 생의 마지막 음표가 찍혔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