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밤새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붓던 비는 거짓말처럼 멎었다. 하늘은 속이 시커멓게 멍든 사람의 얼굴처럼 군데군데 푸른빛을 띠었다. 그러나 공기는 달랐다. 땅이 뱉어내는 무거운 습기가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숨을 쉴 때마다 폐 속으로 축축한 흙탕물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폴리스라인 너머로 보이는 다세대 주택은 여느 골목의 집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앞이 부산스러울 뿐이었다. 방송사 카메라, 삼각대를 세운 사진기자들, 수첩을 든 취재기자들의 지친 얼굴. 그들을 헤치고 현장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데스크에서는 간단한 현장 스케치와 피해자들의 사연을 담아 오라고 했다.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서 일가족 3명 사망.’ 스마트폰 속 기사 제목은 무미건조했다. 죽음은 늘 그렇게 마른 활자로 먼저 도착한다.
“선배, 더 나올 거 없겠는데요. 양수기도 거의 다 뺐고.”
후배의 목소리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들렸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현장은 이미 수습 단계였다. 젖은 가구들이 골목으로 나와 있었다. 무심하게 직업적으로 풍경을 눈에 담았다. 뒤집어진 서랍장, 물에 불어 터진 이불, 흙탕물을 뒤집어쓴 곰 인형. 비극의 클리셰. 지겨울 만큼 반복되는 풍경 앞에서 내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지쳤다. ‘기록적인 폭우’, ‘재난 취약계층’, ‘안전 대책 부재’ 등 수첩에 몇 단어를 적었다. 이 단어들을 조합하면 오늘의 기사가 될 것이다.
그때였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코끝으로 익숙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저 침수 현장 특유의 비린내라고 생각했다. 하수구와 흙탕물이 뒤섞인 냄새. 그러나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고, 끈적하고, 내 몸의 가장 오래된 기억과 연결된 냄새였다.
홀린 듯 폴리스라인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반지하 창문은 부서져 있었고, 방범창이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다. 그 어두운 구멍 안에서 냄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흙탕물 냄새가 아니었다. 젖은 시멘트, 곰팡이, 생활하수가 한데 뒤엉켜 발효된 냄새. 아래로만 흐르다 끝내 갇혀버린 모든 것들. 수십 년의 시간이 지층처럼 쌓인 낮은 곳의 공기였다.
‘정신 차려.’
머릿속에서 이성이 경고음을 울렸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구역질이 치밀었고 관자놀이가 아찔하게 울렸다. 부서진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을 들여다볼 용기는 없었다. 대신 그 아래 계단으로 향하는 입구를 보았다. 물은 거의 다 빠졌지만 계단 벽에는 물이 찼던 높이가 검붉은 자국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끝 흙탕물에 반쯤 잠긴 문틈으로 무언가 보였다. 동화책 같았다. 물에 불어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진.
그 순간 냄새는 맛이 되었고, 소리가 되었고, 질감이 되었다. 그렇게 나를 덮쳤다. 코끝이 아니라 혀끝에서 물때의 쇠 맛이 느껴졌다. 귀에서는 천장을 두드리던 윗집의 샤워 소리가, 귓바퀴를 맴돌던 부모의 다툼이, 모든 소리가 사라진 뒤의 정적이 한꺼번에 재생되었다. 손바닥으로는 축축하게 젖어 부풀어 오른 벽지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동료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왔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차가운 커피를 시켰지만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손이 떨려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수첩에 적어둔 ‘기록적인 폭우’라는 단어가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기록적인 폭우가 아니다. 언제나 있어 왔던 비다. 오늘의 참사가 아니다. 어제부터 잠겨 있었던 문이다.
수첩을 덮고 노트북을 열었다. 회사 기사 시스템이 아닌 텅 빈 새 문서를 켰다.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써야 할 기사는 신림동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 비극을 비추는 내 이야기이자 냄새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된다.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아주 오래된 문장을 타이핑했다. “냄새는 늘 새벽에 가장 진하게 올라왔다.”
엔터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