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기 전 커튼이 열렸다. 눈을 뜨지 않았는데 집이 먼저 일어났다. 스마트홈 시스템 '케어'가 내 수면 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기상 시간을 계산한 것이다. 집안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며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행복포인트 2,300점이 적립됩니다. 지정 가맹점에서 사용하시면 20% 추가 혜택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엔 출근길 최적 경로부터 점심 식사 식당, 저녁 운동 시간까지 오늘의 일정이 추천돼 있었다. 나는 32살, ○○일보 5년 차 기자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니 체중계가 자동으로 켜졌다. "전주 대비 0.3kg 증가. 건강관리 앱 '국민체력'과 연동됩니다." 샤워를 하면서 TV 뉴스를 틀었다. 앵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부가 청년 부동산 안정을 위한 '희망주택 2.0'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만 39세 이하 청년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AI 심사를 통해 공정하게 입주자를 선발합니다. 소득, 자산, 사회기여도를 종합 평가해..." 그 순간 칫솔질을 멈췄다. 사회기여도란 무엇인가. 봉사활동 시간? 납세액? SNS에서 정부 정책에 ‘좋아요'를 누른 횟수?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데스크 이 부장의 메시지였다. "오늘 10시 브리핑. 희망주택 현장 취재해. 청년들 밝은 표정 위주로." 나는 메시지에 확인 표시만 했다.
편집국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사실 기자들은 이미 무엇을 쓸지 알고 있었다. 매일 편집회의에서 배정되는 '오늘의 키워드'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안심, 희망, 공정, 청년이었다. 벽면 대형 스크린엔 실시간 기사 반응 그래프가 떠 있다. 긍정 반응 78%, 부정 반응 12%, 중립 10%. 긍정 반응이 70% 이하로 떨어지면 데스크가 기사 수정을 지시한다. 이 부장이 내 자리로 왔다. 50대 중반에 경력 25년, 한때는 날카로운 탐사보도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희망주택 취재 나가기 전에 이것 좀 봐." 그가 건넨 서류는 정부홍보처에서 배포한 ‘보도 시 유의사항'이었다.
· 입주 탈락자 인터뷰 지양
· 정책 비판적 전문가 인용 시 반드시 정부 입장 병기
· 통제, 제한, 규제 등 단어 사용 자제
· 청년들의 긍정적 반응 중심 구성
"이건... 검열 아닙니까?"라고 따지자 이 부장이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검열 아냐. 가이드지. 우리 회사가 작년에 정부 광고 집행 얼마나 받았는지 알아? 기사 하나 때문에 날릴 수는 없어." "그럼 우린 뭡니까? 기자입니까, 홍보팀입니까?" "김 기자, 너 요즘 평가 점수 알아?” 이 부장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언론사도 이제 정부 지원받잖아. 언론 공공성 강화 사업 말이야. 그거 받으려면 평가 통과해야 해. 평가 항목에 사회 안정 기여도가 있어. 무슨 뜻인지 알지?"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좋은 기사 쓰고 싶으면 먼저 살아남아야 해. 알겠어?" 이 부장은 돌아섰다.
희망주택 현장은 경기도 외곽의 신도시다. 10층짜리 아파트 단지 열 개 동이 반듯하게 늘어서 있었다. 입구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청년이 행복한 나라, 국가가 만듭니다.' 브리핑장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정부홍보처 박 과장은 밝은 미소로 설명을 시작했다. "희망주택 2.0은 기존 청년 부동산 정책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AI 심사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입주자를 선발하며 입주 후에도 지속적인 생활 케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AI 심사 기준이 구체적으로 뭡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소득, 자산, 가족 구성, 사회기여도를 종합 평가합니다.” "사회기여도요?" "네. 봉사활동, 납세 성실도, 온라인 활동 건전성 등을 포함합니다." 온라인 활동 건전성. 그 단어를 수첩에 적었다. 브리핑이 끝난 뒤 기자들은 입주 예정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정말 감사해요. 국가가 이렇게 챙겨주는데 뭐가 불만이겠어요.", "월세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니 꿈만 같아요." 등의 반응이었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진짜 웃음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그때 단지 한쪽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청년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김윤호 기자입니다." 청년은 고개를 들었다. "인터뷰는 안 합니다." "혹시 입주 신청하셨어요?" "했죠. 떨어졌어요..." "이유를 아세요?"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점수가 모자라대요. 정확히는 사회기여도 항목에서요. 제가 2년 전에 SNS에 정부 부동산 정책 비판하는 글 올렸거든요. 그게 걸렸나 봐요." "그게 심사에 반영됩니까?" "모르겠어요. AI가 판단한 거니까요.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국가가 청약 당첨에 SNS까지 검토한다는 게..." 그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저기요 기자님."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기사에 쓰실 거예요? 쓰지 마세요." "왜요?" "어차피 못 나가잖아요. 설사 보도돼도 제 기록만 더 나빠지겠죠. 전 다음에도 신청할 건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수첩을 덮었다.
편집국으로 돌아와 기사를 썼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희망주택 2.0 정책 현장을 찾았다. 입주 예정자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으로 국가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한 청년은 "월세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며 "국가가 청년을 생각해 주는 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그 기사를 쓰면서 문득 탈락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기사 어디에도 없었다. 이 부장이 기사를 검토했다. "좋아. 이 정도면 돼. 근데 여기 선발 기준의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문장은 빼." "왜요? 사실이잖아요." "사실만으론 부족해. 정부는 이미 공정성 확보라고 못 박았어. 굳이 딴지 걸 필요 없어." "딴지가 아니라 문제 제기입니다." "김 기자, 너 요즘 왜 이래?” 이 부장이 한숨을 쉬었다. "좋은 기자가 되려면 먼저 오래 버티는 기자가 돼야 해. 알겠어?" 결국 그 문장을 지웠다. 기사가 나간 후 댓글에는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역시 정부는 청년을 생각하네요!", "이런 정책이 진짜 복지죠.", "반대하는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음." 등 긍정 반응 84%. 댓글창을 끄고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계산대에서 점원이 물었다. "행복포인트 사용하시겠어요?" "아뇨, 카드로 할게요." "행복포인트로 결제하시면 10% 추가 적립됩니다. 이번 달 3만 원 이상 사용하시면 모범 소비자 배지가 부여돼요." "모범 소비자요?" "네, 정부에서 운영하는 건데요. 지정 업종에서 일정 금액 이상 소비하면 다음 달 쿠폰을 더 드려요. 대출 신청할 때도 가산점이 붙는다고 들었어요." 행복포인트를 쓸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스마트홈 시스템이 불을 켰다. "오늘 하루 걸음 수 6,432보. 목표 달성률 64%. 내일은 조금 더 걸어보세요." 거실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 집의 온도는 AI가 조절한다. 조명의 밝기도 AI가 결정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퇴근 후 운동 시간도, 내가 무엇을 사야 하는지까지 AI가 추천한다. 편리한데 왜 이렇게 답답한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익명 게시판 '자유광장'에 접속했다. 이곳은 실명 인증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최근 게시물을 스크롤하다가 멈췄다. ‘요즘 기사 쓰기 힘듭니다. 저는 기자 3년 차입니다. 요즘 편집국에서는 쓸 수 있는 기사와 쓸 수 없는 기사가 정해져 있습니다. 정부 정책 비판은 균형 잡힌 시각이라는 명분으로 희석되고, 현장의 목소리는 사회 불안 조장이라는 이유로 잘립니다. 우리는 기자입니까, 대변인입니까?’ 그 글을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10분 뒤 게시글이 사라졌다. "건강한 소통 환경을 위해 해당 게시물이 비공개 처리됐습니다."라고 메시지가 떴다. 새로고침을 여러 번 눌렀지만 글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데스크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정부에서 대출 규제 강화안을 발표했어. 오늘 오후 3시 취재해." 이 부장이 자료를 나눠줬다. "주요 내용은 무주택자 신규 대출 한도를 소득 구간별로 차등 적용. 연소득 5천만 원 이하는 최대 2억, 5천~8천은 4억, 8천 이상은 6억." "그럼 기존 집값이 10억 이상인 곳은 서민들은 못 산다는 얘기 아닙니까?"라고 묻자 이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 입장은 과도한 대출을 막아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거야. 서민들의 무리한 대출을 방지해 보호한다고." "보호요?" "응. 빚더미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논리지." 이 정책의 실제 효과는 무엇인가 자료를 읽으며 생각했다. 기존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대로다. 다만 이제 사려는 사람들만 문턱에서 멈춘다. 사다리는 남아 있지만 접근이 제한되는 것이다. 브리핑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오히려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거 아닙니까?" 박 과장이 침착하게 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리한 대출을 줄여 가계부채 위험을 낮춘다. 그게 정부 입장입니다." 그는 "2024년 가계부채 연체율 데이터를 보시면 소득 하위 30% 구간의 연체율이 8.3%로 상위 구간 대비 4배 높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싱가포르는 소득 대비 대출 한도를 엄격히 제한해 금융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라며 거침없이 설명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정책이 옳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왜 이렇게 불편한 느낌이 드는가. "저소득층을 위한 희망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공공주택 입주 경쟁률이 평균 300 대 1인데요?"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고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보호라는 이름의 배제.
회사로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지난주 공개된 공직자 재산 신고 자료를 봤다. 국회의원들과 정부 부처 고위직의 재산 목록이었다.
· A: 강남 아파트 2채, 서초 오피스텔 1채
· B: 용산 아파트 3채, 분당 아파트 1채
· C: 목동 아파트 2채, 판교 아파트 1채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계산했다. 한 사람당 평균 2~3채. 취득 시기는 대부분 2010년대 중후반 대출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그들은 대출로 여러 채의 집을 샀다. 지금은 그 사다리를 걷어찬다. 나는 자료를 프린트했다. 공개본은 일부 비식별화돼 있으며 기사를 쓰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갖고 있고 싶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희망주택에서 탈락했던 청년을 다시 만났다. "기자님, 저 기억하세요?" "네, 물론이죠." 우리는 근처 카페에 앉았다. 그의 이름은 박경훈이었다. "기사 잘 읽었어요. 희망주택 기사요."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제 이야기는 안 나오더라고요." "..." "이해해요. 요즘 언론이 어떤지 알죠." 경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근데 있잖아요. 전 이게 궁금해요.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무엇이요?" "국가가 우리 삶을 이렇게 세밀하게 관리하게 된 거요. 어디에 살지, 뭘 사는지, 온라인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훈이 커피잔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좋았어요. 복지가 확대되고, 지원금도 나오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선택지가 줄어들더라고요. 쿠폰은 정해진 곳에서만 쓸 수 있고, 집은 정해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고, 대출은 정해진 금액만 받을 수 있고요." 그가 창밖을 바라봤다. "21세기 권력은 폭력적이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친절해요. 금지하지 않고 추천하고, 억압하지 않고 배분해요. 그게 더 무서운 거 같아요." 나는 가방에서 아까 프린트한 자료를 꺼냈다. 공직자 재산 신고 목록. "경훈 씨, 이거 보세요." "아, 이거요. 저도 봤어요." 그가 손가락으로 특정 이름을 짚었다. "이 사람 오늘 브리핑에서 '무리한 대출은 서민을 위험에 빠뜨린다'라고 했던 사람이잖아요. 근데 본인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대출로 아파트 3채 샀어요. 그때는 괜찮았던 거죠. 본인들이 살 땐 말이에요. 이제 우리가 사려고 하니까 위험하대요." 경훈이 자료를 내려놓았다. "있잖아요, 기자님. 이게 진짜 문제예요. 규제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규제를 만드냐는 거요." "무슨 뜻이죠?" "이미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규제를 만들어요. 그들은 안전해요. 기존 자산은 보호되니까요. 근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진입 자체가 막혀요." "이게 공정한가요? 본인들은 대출로 계단 올라가 놓고, 우리한텐 계단을 없애버리는 게 말이 되나요?" "기자님,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게 뭘까요? 안전인가요, 통제인가요? 이 복지는 우리를 지키는 건가요 아니면 길들이는 건가요?" 그의 의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 실패할 자유가 필요했어요.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 집 사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고. 그런 선택을 할 자유요. 근데 지금은 그런 선택 자체를 못 하게 막아요. 보호라는 이름으로요." 그가 자료를 다시 가리켰다. "근데 진짜 웃긴 건요. 그들은 보호라는 말로 우리를 막으면서 정작 본인들은 이미 다 갖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보호예요, 기득권 수호예요?" 경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 쓰실 때 이것 좀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거요. 공정하다는 말이 진짜 공정한지 한 번쯤은 의심해 봐야 한다는 거요."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재산 신고 자료를 다시 봤다.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2채, 3채, 4채. 그들이 쌓아 올린 계단. 우리에게는 금지된 그 계단이다.
나는 기사를 썼다. ‘대출 규제, 보호인가 배제인가. 정부가 발표한 대출 규제 강화안은 서민 보호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다르게 말한다. "보호가 아니라 선택권을 빼앗는 것 같다"라고. 규제의 실효성과 별개로 정책이 의도치 않게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그 기사를 쓰면서 탈락한 청년의 말을 계속 떠올렸다. 실패할 자유와 선택할 권리. 다음 날 아침 이 부장이 내 자리로 왔다. "김 기자, 이 기사 못 내보내." "왜요?" "정부 입장이랑 정면으로 배치돼. 계층 이동 사다리 운운하는 건 정책을 계급 고착화로 몰아가는 거잖아." "사실이잖아요." "사실만으론 부족해. 이 기사 나가면 정부에서 뭐라고 하겠어? 언론이 불안 조장한다고 할 거야. 우리 회사 평가 점수 깎이고, 정부 광고 못 받고." "그럼 우리가 뭡니까?"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 맞습니까? 사실을 쓰는 게 기자 아닙니까?" "김 기자!" 이 부장이 소리쳤다. "현실을 봐. 우리 회사 작년에 정부 지원금 얼마나 받았는지 알아? 언론 공공성 강화 사업, 광고 집행, 각종 프로젝트 지원. 그거 없으면 우리 월급도 못 받아. 너 이상주의로 배 채워?" "기사 다시 써. 정부 입장 중심으로. 전문가 긍정 의견 추가하고. 제목도 바꿔. '대출 규제로 더 안전해진 금융시장'. 이 정도면 무난해." 이 부장은 윽박지르고 돌아섰다. 잠시 뒤 나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내가 쓴 기사가 화면에 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지 못할 기사. Delete 키를 눌렀다.
그날 저녁 부모님 집에 갔다. 어머니가 저녁을 차려주셨다. 아버지는 TV 뉴스를 보고 계셨다. "정부가 청년 결혼 지원금을 2천만 원으로 올린대요. 출산하면 3천만 원 추가 지원이고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요즘 정부 참 잘하지 않니? 청년들 이렇게 챙겨주는데." "그렇죠..." 건성으로 대답했다. "윤호야, 너도 결혼 생각해 봐. 지원금도 나오는데." 어머니가 과일을 깎으며 말했다. "국가가 이렇게 챙겨주는데 뭘 망설여. 우리 때는 이런 거 하나도 없었는데." 포크를 내려놓았다. "궁금한 게 있어요. 국가가 이렇게 많이 지원해 주는 게 정말 좋기만 한 건가요?" "무슨 소리야? 당연히 좋지. 돈 주는데 뭐가 나빠." "근데요. 그 돈을 받으려면 조건이 있잖아요. 어디 살아야 하고, 뭘 사야 하고, 어떤 생활을 해야 하고. 그게 진짜 자유로운 건가요?" "자유?"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유가 뭐 그리 중요해. 먹고사는 게 우선이지." "엄마, 먹고사는 것만 해결되면 충분한가요? 선택할 권리는요?" "윤호야." 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요즘 회사에서 무슨 일 있니? 왜 이렇게 삐딱하게 생각해?" "삐딱한 게 아니라..." "국가가 국민 챙기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옛날엔 아무도 안 챙겨줬어. 다들 각자 알아서 살았지. 지금이 훨씬 낫잖아."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님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음이 문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정서 점검을 3일째 하지 않으셨습니다. 건강한 정서 관리를 위해 체크리스트를 완료해 주세요." 국민정신건강앱 '마음케어'의 알림이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정부 사업으로 국민의 정서 건강을 관리한다는 명목이었다. 나는 앱을 켰다.
· 오늘 기분은 어떠셨나요? (1~10점)
· 부정적 감정을 느낀 적이 있나요? (1~10점)
· 정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10점)
왜 정서 관리 앱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는가? 앱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요즘 슬픔도 신고하고 침묵도 의심받는다. 불만은 문제적 감정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관리된다. 정서가 표준화될 때 정치는 수월해진다. 나는 눈을 감았다. 따뜻한 방, 안전한 집, 보장된 생활. 그런데 왜 이렇게 춥나. 추위는 온도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다음 날 정부의 긴급 공지가 발표됐다. “정책 반대 온라인 커뮤니티 '자유시민' 폐쇄 결정. '건강한 소통 환경 조성'을 위한 조치.” 자유시민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던 커뮤니티였다. 회원 수만 10만 명이 넘었다. "왜 폐쇄시키는 거죠?" 동료에게 물었다. "허위 정보 유포와 사회 불안 조장이래."라고 동료가 답했다. "구체적으로 뭔데요?" "정부 정책 비판하는 글들이었대. 대출 규제가 계급 고착화라는 둥, 부동산 정책이 통제 수단이라는 둥." 말문이 막혔다. "그게 허위 정보인가요?" "기준과 다르면 허위가 돼." 동료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날 오후 이 부장이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앞으로 정부 정책 관련 기사는 반드시 데스크 검토를 거쳐야 해. 특히 비판적 내용은 더욱 신중하게." "그럼 우리가 쓸 수 있는 기사가 뭡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사실을 쓰면 돼. 다만 사실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맥락을 부여할지는 신중해야지." "그게 무슨 검열 아닙니까?" "검열이 아니라 편집이야.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지." 나는 회의실을 나왔다. 퇴근길 우연찮게 경훈과 마주쳤다. "기자님, 들었어요? 자유시민 폐쇄됐대요." "네..." "이제 어디서 말해야 할까요? 우리 목소리를." 경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SNS는 감시당하고, 커뮤니티는 폐쇄되고, 언론은 자기검열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죠?"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노트북이 아니라 손으로 종이에. 오늘도 따뜻했다. 국가는 친절하고, 사람들은 안전하다. 복지는 확대되고, 지원은 늘어난다. 그런데 선택은 줄어든다. 자유는 조용히 사라진다. 쿠폰이 늘어날수록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진다. 지원금이 많아질수록 해야 할 것이 정해진다. 안전망이 촘촘해질수록 움직일 공간이 좁아진다. 나는 사실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쓸 수 있는 사실과 쓸 수 없는 사실이 나뉜다. 국가가 우리를 돌본다. 그런데 돌봄이 지나치면 관리가 된다. 관리가 세밀해지면 그것은 감시가 된다. 감시가 일상이 되면 그것은 체제가 된다. 요즘 국가는 친절하다. 복지는 확대되고, 지원은 늘어난다. 하지만 그 친절함 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사라진다. 선택권, 비판의 자유, 실패할 권리.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이 안전은 진짜 안전인가 아니면 통제인가. 이 복지는 우리를 지키는가, 아니면 길들이는가. 질문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공범이 된다. 침묵하는 순간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가장 위험한 것은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순응을 순응으로 인식하지 못할 때 자유는 이미 사라진 후다. 나는 펜을 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다. 평화로웠다. 평화로운 것과 자유로운 것은 다르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주말에 경훈에게 연락이 왔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보여드릴 게 있어요." 그가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는 데이터 표가 떠 있었다. "이게 뭔가요?" "희망주택 입주 심사 결과예요. 제가 정보공개 청구해서 받은 거예요." 나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보세요. 입주 선발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사회기여도 항목이 전부 80점 이상이에요. 탈락자들은 대부분 60점 이하고요." "사회기여도가 뭐로 평가되는데요?" "그게 문제예요. 정확한 기준이 공개되지 않았어요. AI가 종합 평가한다고만 나와 있죠." 경훈이 다른 파일을 열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건데요. 탈락자 50명 중 30명이 최근 1년 내 정부 정책 비판 글을 SNS에 올렸어요. 입주자 50명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고요."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또 이거요." 경훈이 다른 화면을 켰다. 흐릿한 스크린샷이었다. "이건 정부 내부 슬랙 채널 캡처예요. 심사 담당자들끼리 주고받은 메시지예요." 화면을 확대하자 글자가 보였다. ‘사회기여도 항목, 온라인 활동 부정 발언 가중치 상향 조정 필요. 정책 비판 빈도 3회 이상 시 자동 감점 적용.’ "이게 증거가 될까요?" "모르겠어요. 캡처본이라 위조 가능성 제기될 수도 있죠. 하지만..." 경훈이 화면을 끄며 말했다. "우연치고는 너무 일치해요." "이거 기사화할 수 있을까요?" "기자님 회사에서 내보내줄까요?" 경훈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월요일 나는 자료를 들고 이 부장을 찾아갔다. "이거 좀 보세요." 이 부장이 자료를 훑어봤다. "이거 어디서 구했어?" "취재원이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겁니다." "김 기자 이거 기사화하려고?" "네." "안 돼." "왜요? 이건 명백한 문제잖아요. 정부가 사상 검증을 하고 있다는..." "사상 검증이라는 증거가 있어? 이건 그냥 데이터 상관관계일 뿐이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어." "그럼 취재를 더 해서..." "김 기자!" 이 부장이 화를 냈다. "이 기사 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정부는 우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정책을 폄훼했다면서. 그럼 우리 회사는 끝이야." "근데 이게 사실이면요?" "사실이어도 안 돼. 증명할 수 없으면 사실이 아니야. 언론의 세계에선." 이 부장이 자료를 집어던졌다. "이거 없던 일로 해. 그리고 다시는 이런 거 들고 오지 마." 나는 바닥에 흩어진 자료를 모아 자리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 같았다. 동정인지, 경계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달 인사평가가 나왔다. 이메일을 보다가 당황했다. 인사평가 D, 사회안정기여도 미달. 지난 분기까지 B였던 평가가 갑자기 D로 떨어졌다. D등급은 연봉 삭감과 근로계약 연장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인사팀에 전화했다. "사회안정기여도가 뭡니까?" "기자님의 기사가 사회 안정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정부 지원 사업 평가 항목이기도 하고요." "제가 무슨 기사를 썼다고..."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데스크와 상의하세요." 전화를 끊고 화면을 다시 봤다. 등급으로 평가받는 안정. 점수로 매겨지는 기여도. 창밖으로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빛나는 빌딩들, 움직이는 차들, 살아 있는 도시. 그런데 왜 이렇게 죽은 것 같을까.
며칠 후 경훈이 회사로 찾아왔다. "기자님, 독립 매체 유튜브에서 내보내려고요." "독립 매체요?" "네. '시민의소리'라고 있어요. 규모는 작지만 검열 없이 나갈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경훈 씨, 그거 위험해요. 자료 출처 추적되면..." "알아요. 근데 누군가는 해야죠." 경훈이 웃었다. "기자님, 왜 그 일을 하세요?" "사실을 전하려고요..." "근데 지금 사실을 숨기고 있잖아요. 그럼 뭐예요?" 대답하지 못했다. 경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할 거예요. 혼자라도.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니까."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용기란 무엇인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사흘 후 시민의소리에서 보도가 나갔다. ‘희망주택, 누가 들어가고 누가 탈락하나…AI 심사 속 사상 검증 의혹’ 빠르게 퍼졌다. SNS에서 공유되고 커뮤니티에서 논의됐다. 정부가 곧장 발표문을 냈다. "해당 기사는 근거 없는 음모론이며, 정책에 대한 가짜뉴스입니다. 법적 조치를 검토 중입니다."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정부 입장을 보도했다. ‘정부, 희망주택 사상 검증 의혹에 터무니없는 주장 강력 반발’. 그 기사들을 읽으며 씁쓸했다. 우리는 권력을 감시하는 대신 권력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경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님 저 경찰 조사받아요." "뭐라고요?" "정보 유출 혐의래요.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자료인데도..." 경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섭진 않아요. 근데... 후회는 안 해요. 전 제 일을 했으니까."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며칠 후 시민의소리 채널이 폐쇄됐다. "플랫폼 사업자 자율규제에 따른 조치. 허위 정보 유포 및 사회 혼란 조장." 경훈은 벌금형을 받았다. 기사는 삭제됐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다시 평온해졌다. 회사에서는 경훈 사건을 경고로 삼았다.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취재하고, 검증된 사실만 보도합니다." 전체 회의에서 이 부장이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도 참여였다.
그날 밤 일기를 다시 썼다. "경훈이 졌다. 권력은 이겼다. 폭력이 아니라 절차로 이겼다. 조용했다. 총소리도, 비명도 없었다. 다만 공지문과 법적 조치만 있었다. 이것이 21세기의 전체주의인가. 깃발을 들지 않고, 구호를 외치지 않는 전체주의. 대신 복지를 주고, 안전을 보장하고, 선택을 제한하는 전체주의. 나는 기자다. 그런데 무엇을 했나.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못했다. 진실을 봤지만 말하지 못했다. 생존과 원칙 사이에서 생존을 택했다. 그것이 현실적이라고, 어른이라고, 책임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건 변명이다." 그렇게 펜을 놓았다.
일주일 후 대학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막 수습기자가 된 태원이었다. "선배, 커피 한잔 해요." 우리는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선배, 기자가 이런 건가요?" 태원이 첫마디부터 날카로웠다. "무슨 뜻이야?" "제가 쓴 기사를 데스크가 다 뜯어고쳐요. 사실은 맞는데 어조가 날카롭다고. 균형이 필요하다고." 커피를 마시며 대답을 피했다. "선배도 그래요? 쓰고 싶은 거 못 쓰고, 써야 하는 거만 쓰고." "그게 현실이야..." "현실이요?" "요즘 국가가 친절하면 친절할수록 뭔가 줄어드는 거 같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 "복지는 늘어나는데 선택은 줄어들고, 지원은 많아지는데 자유는 좁아지고. 이게 뭔가요?" "태원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질문을 멈추지 마. 그게 기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야." "선배는요?"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태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배, 전 균형이 무해함이 되는 순간을 경계할 거예요. 그게 선배가 알려준 거잖아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한때 나도 저랬다. 태원이 카페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질문을 멈춘 게. 타협을 시작한 게.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원칙을 접은 게. 커피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모두 바쁘게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 평화 아래 누군가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이 안전 속에서 무언가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과정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났다. 경훈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들었다. 자유시민은 폐쇄된 채로 남아 있다. 새로운 비판 커뮤니티가 생기면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사라진다. 정부의 복지 정책은 계속 확대됐다. 청년 결혼 지원금은 3천만 원, 출산 지원금은 5천만 원으로 늘었다. 사람들은 고마워하고 언론은 보도한다. ‘정부, 청년 지원 정책 확대. 국민 행복이 최우선’ 사실을 쓴다. 다만 전부는 아니다. 쓸 수 있는 사실과 쓸 수 없는 사실 사이에서 쓸 수 있는 것만 쓴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존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하지만 밤이 되면 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유가 사라질 때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영혼이다.
어느 날 저녁 경훈을 마주쳤다. "기자님." "경훈 씨."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잘 지내요?" 내가 물었다. "네, 뭐. 살아는 있죠."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는 안 해요. 전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으니까." "..." "기자님은요?" 경훈이 물었다. "기자님은 후회 없으세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떠났다.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거리는 밝았고 사람들은 웃으며 걸었다. 도시는 평화로웠다. 그때 깨달았다. 어떤 시대는 폭력으로 사람을 다루고, 어떤 시대는 배려로 사람을 분류한다. 둘 다 위험하다. 후자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친절할수록 자유는 조용히 줄어든다. 쿠폰이 늘어날수록 선택지는 사라진다. 안전망이 촘촘해질수록 올가미는 조여든다. 그 모든 변화는 천천히 아무 소리 없이 진행된다. 모두가 괜찮다 할 때 누군가는 숨을 참는다. 나는 숨을 참지 않기로 한다. 그것이 지금 가능한 가장 작은 자유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에 마지막 문장을 적는다. "아직 완전히 순응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늘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기록은 느리지만 삭제보다 오래간다. 밖에서는 평화롭고 따뜻한 세상이 돌아간다. 그 속에서 작게나마 저항한다. 침묵하지 않기로. 잊지 않기로. 기록하기로.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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