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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춘한 Sep 08. 2023

[시지프의 시각] 빨갱이 트라우마

“야, 너 빨갱이야?” 얼마 전 동네에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초등학생들이 서로 장난을 치며 하는 말이었다. 대체 어린아이들이 빨갱이라는 말을 어떻게 알고 사용하는지,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아는지 황당하기만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쏘아 올린 이념 전쟁이 사회 전체를 역행시키고 있는 웃지 못할 광경이었다.  

    

대학시절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빠졌다. 독일과 같은 사회복지국가로의 도약을 꿈꿨다. 당시만에도 대한민국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극좌파로 취급받았다. 북한의 체제에 결코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치사상과 제도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는커녕 종북세력이 아님을 애써 설명해야만 했다.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이 나왔다. 이석기 전 의원이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였다. 통합진보당 당원은 아니었지만 정당해산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수의 글을 게재했다. 당시 지인들은 “너 당원 아니냐. 괜찮냐.”는 안부를 묻기도 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가 위협받았던 시대다.  

   

이번엔 공산전체주의세력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며 역사에서 지우려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윤 대통령은 “새 정부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이념이 아닌 민생”이라고 밝혔다. 손바닥 뒤집듯 본인의 발언이 바꾼 이유는 총선을 앞두고 추락하는 대통령 지지율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토론과 합의인데, 해묵은 이념논쟁으로 모든 것이 실종됐다. 정부·여당에 반대되는 의견은 입 밖에 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는 “국가에 반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관제 여론몰이, 언론 길들이기 등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전체주의에 가깝다.      


◆해당 칼럼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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