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춘한 Sep 11. 2023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는 관념적 이상(idea)과 과학적 인식(logik)의 합성어이다. 어원만으로는 의미가 한 번에 와닿지 않는데, 쉽게 말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상을 말한다. 인간, 자연, 사회를 규정짓는 모든 학문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세계관, 종교관, 가치관, 사고방식 등 다양한 신념 체계를 총망라한다. 그러나 통상 이데올로기는 정치 이념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는 국가, 계급, 정당 등 국내·국제정치를 인식하는 기준이 되는 사고의 틀로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프랑스혁명 당시 처음 등장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스튀트 드트라시는 기존의 종교, 형이상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관념을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했다. 이때 나폴레옹은 자신의 반대파를 경멸적인 의미를 담아 이데올로그(관념론자들)라고 불렀다. 여기서 이데올로그는 공상적인 언사만 늘어놓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독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그를 자본가의 이익을 사회 전체를 위한 것으로 선동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다. 현재는 특정 계급이나 당파를 입장을 대변하는 이론가라는 중립적인 뜻으로 사용된다.      


사실 이데올로기라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필요하고 낡은 개념으로 인식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의 이념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까지만 해도 전 세계를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이라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잠시 손을 잡고 파시즘과의 전쟁을 치러냈고, 최종적으로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이데올로기 갈등이 끝이 난 줄 알았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도 이데올로기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인종, 종교, 젠더, 문화 등 과거보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정치적인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어떤 위기나 갈등 국면에서 각각의 사상마다 다양한 답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왜 발생하는지, 전쟁이 왜 발발하는지 등에 대해 궁금해한다. 여기서 자유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정부의 간섭으로 인한 실패로 진단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을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 속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되는 계급혁명의 확산 과정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각각의 이데올로기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관점으로 이해시키려고 한다.     


이데올로기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똑같은 정부 정책을 놓고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증대시키는 감소시키는 방향인지로 찬성 또는 반대를 결정한다. 반면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이 이로운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권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 물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데올로기 사이에 대립 구조가 만들어지고, 지지자들 간의 언쟁과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맞고, 상대방은 무조건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데올로기는 지지자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 사람들은 인종, 민족, 젠더 등 자신이 속한 집단과 세상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데 기여한다. 만약 당신이 공산주의자라면 노동자로서 자본가와 맞테고, 페미니스트라면 여성으로서 가부장제와 성적 억압을 종식시키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이데올로기를 공유한다면 원활한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 사회 통합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상대에 대한 맹목적 비난, 폭력 사태 등 혼란과 무질서에 놓일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성만 제시하는 이상사회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데올로기는 지지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강령을 갖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현재 체제의 문제점을 진단만 하고, 처방을 내리지 못한다면 지지를 잃게 될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독일의 나치는 사회적 혼란을 타개할 방법으로 게르만족의 우월성과 유대인 배척을 강조했는데 나치 지지자들은 열등한 유대인, 유색인종, 장애인 등을 고립시키고 학살하는데 동조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이미 틀렸음이 입증됐다. 오히려 이데올로기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에 가깝다. 대다수 선진국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조차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체제는 되지 못했다. 그런 정치사상이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해당 합의는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예측하지 못한 갈등 요인이 수도 없이 터져 나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데올로기는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전 05화 민주주의의 개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