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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춘한 Sep 12. 2023

정치적 스펙트럼

좌파와 우파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인식하는 데 있어 가장 쉬운 접근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금기어에 가깝다. 대신 진보와 보수라는 조금 더 모호한 표현을 훨씬 많이 쓴다. 이는 서구와 달리 한반도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이 정치성향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학적으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할 때 북한에 대한 관점은 제외하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혁명 당시 좌측에 급진파인 자코뱅파가, 우측에 온건파인 지롱드파가 앉은 것이 기원이다. 통상적으로 좌파와 우파는 체제에 대한 인식과 변화의 속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좌파는 구체제에 저항하고, 급진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전통을 중시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 이후부터는 혁명보다는 선거와 개혁이 보편화되면서 현대에서는 이 같은 차이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르는 첫 번째 중요한 요소는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좌파는 국유화, 우파는 자유시장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말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자유시장경제가 표준이 되면서 구분이 모호해졌다. 그럼에도 좌파와 우파는 지향점에서 차이가 있다. 좌파는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을 맞춘다. 자본주의체제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옹호하고 큰 정부, 세금 인상, 복지 확대에 동의한다. 반면 우파는 분배보다는 성장을 추구한다. 자연적으로 생기는 불평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작은 정부, 세금 인하, 복지 축소에 찬성한다. 이러한 점에서 좌파와 우파 개념은 나라와 시대를 넘어 정당과 공약을 비교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틀이다.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이다. 개인중시는 말 그대로 국가보다 개인의 독립·자유를 최우선 가치에 둔다. 반면 사회중시는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의 독립·자유는 억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중시에서 좌파는 제3의 길, 아나키즘 등이 있으며 우파는 신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 등이 존재한다. 사회중시에서 좌파는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등이 위치하며 우파에서는 보수주의, 파시즘 등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극좌와 극우는 서로 통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극단적 정치 성향의 경우 반대세력에 대한 포용을 일절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좌파와 우파보다는 개인중시와 사회중시 측면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개인중시에서는 아나키즘과 자유지상주의가 극도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사회중시에서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국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정치적 스펙트럼을 단순히 좌파와 우파가 아닌 다각도로 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정치사상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끊임없이 세분화 돼왔다. 좌파든 우파든 어떤 사상과 결합했고, 무엇을 가장 중시하는지에 따라 같은 갈래에서도 큰 차이가 보인다. 이렇게 좌파와 우파는 의미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국가와 사회에 따라 상대성을 지닌다. 일례로 유럽에서의 우파가 대한민국에서는 좌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파와 우파는 명확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여러 사상을 담을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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