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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수책방 Dec 22. 2020

사장님은 내 생각, 할까?

-이놈의 조직 문제 1. 


“사장님 정말 너무 하시네요. 회사 어렵다며 연봉은 3년째 동결인데, 이번에 차 바꿨다며 직원들한테 시승식한다 하고. 작년에는 집 샀다며 집들이하더니….”

박 대리가 오 팀장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또 뭐가 불만인데?”

“좀 그렇죠. 사장님 매달 가져가는 돈도 엄청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회사 어렵다면서 본인 월급은 꼭 그렇게 많이 가져가야 하냐고요.”

“박 대리,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네가 사장이라면 안 그러겠어?”         



그렇다. 학생 때부터 역지사지의 가르침을 받아왔거늘 잊고 있었다. 나도 사장이라면, 돈 많이 벌고 차도 좋은 걸로 뽑고 집도 사고 싶겠지.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면, 내가 가져가는 월급을 줄이기보다는 직원 월급을 줄이는 게 낫겠지. 연봉 동결? 월급을 줄이지 않는 게 어디야? 배부른 소리야. 직원들이 나간다 하면, 뭐 취업난이다 뭐다 말들 많으니 대체 인력을 구하기는 쉬울 거야. 회사에서 그동안 호흡을 맞춘 직원들이지만 어쩔 수 없지. 


자, 모두 처지를 바꿔 생각해 봅시다!


근데 나 사장은 될 수 있는 걸까? 난 이렇게 사장님 입장으로 이런저런 생각해 봤는데, 사장님은 내 생각, 할까? 

내가 지금 사장도 아니고, 앞으로도 사장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사장 입장을 생각해 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팀장님이 한번 생각해 보라니까 하는 거지). 팀장님은 왜 그런 소리를 한 걸까? 팀장님은 사장님 입장이 잘 이해되는 걸까? 입장 바꿔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화가 나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그동안 겪은 팀장, 과장, 부장, 심지어 경력이 비슷한 동료 중에도 사장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하는 듯한 직장인이 많았다. 어쩌다가 회사에 대한 욕이라도 할라 치면, “네가 아직 회사 생활을 얼마 안 해봐서 그래. 회사는 원래 그런 데야”라며 애 취급하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지, 어쩌겠어?”라며 말문을 막아버렸다. 정말 회사는 그런 데일까? 회사라는 데가 직원의 마음보다 사장의 마음이 더 중요한 곳일까?


책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회사를 다닐 때 사장님이나 선배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며 여러 책을 추천해 주었다. 리더십, 미션, 전략, 무슨 법칙, 무슨무슨 행동 등 처음에는 멋들어진 말에 ‘와~’ 하고 감탄을 했다가도 왠지 모르게 내 삶과는 무관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들 책의 밑바탕에는 회사에 대한 주인 의식, 경영자 마인드, 기업가 정신 따위가 깔려 있었다. 책의 내용이 나와 동떨어진다고 느껴진 건 이 때문일 거다. 내가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경영자나 기업가가 아닌데 그런 마인드와 정신은 생길 수나 있는 걸까? 


주변 동료들을 만나면, 늘 “회사가 어쩌고저쩌고, 팀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회사나 조직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조직 내의 부조리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던 거다. 


그런데 왜 인식하고 있는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을까? 과거 선배들이 추천해 줬던 책에서 말하는 조직 이론을 가지고만 문제를 풀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닐까? 또 “현실은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선배의 말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말하는 논리로는 조직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외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더욱 문제를 야기한다. 그런 논리에는 ‘사람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 조직을 구성하는 건 개개의 사람들인데, 경영 담론에서는 직장인을 엑셀 안 수치로 표현할 수 있어야 객관적인 기업 경영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이미 기업의 논리에 적응하고 익숙해져 버린 선배의 말은 왠지 기업의 말과 닮았다. 그리고 회사 문제에 불평불만을 하던 신입도 연차가 쌓이며 어느새 사장님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직원이 되어가고 있다.     


월급받아서 나도 이런 차 몰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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