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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수책방 Jan 18. 2021

회사뽕 맞은 사람들

-이놈의 조직 문제 2. 

점심시간. 

점심을 먹으러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모두 얼마 전 회사에서 나눠준 사원증을 매고 있다. 그런데 혼자서 사원증을 빠뜨린 김 주임을 가리키며 고 과장이 말한다. 

“김 주임, 사원증 어디 갔어? 애사심이 없네, 애사심이….”       


  

중소기업만 전전하다가 중견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역시 중견기업은 뭔가 달라도 다른지 사원증이라는 것도 처음 받아봤다. 근데 전 직원에게 나눠준 사원증은 출입문을 여는 기능도, 출근 기록을 남기는 기능도 없었다. 오로지 내 얼굴과 내 이름과 내 직책만 담겼다. 


아무런 기능도 없는 사원증을 전 직원이 항상 목에 걸고 다니라는 인사과의 공고가 올라왔다. “XX기업의 임직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상시 착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인사과는 저런 멘트를 대체 어디서 배우는 걸까 궁금하면서도 목줄처럼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거랑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도 안 됐다. 게다가 아무런 기능도 없는 사원증을 말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쓰는 건 무릇 인사과뿐만이 아니었다. 고 대리처럼 애사심을 운운하는 경우가 흔했다. 대체 사원증을 하고 다니는 것과 애사심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엘리베이터에 있던 사람들은 김 주임이 얼마나 무안할까 걱정해 주기보다는 고 대리의 말에 빵 터져서 웃기 바빴다. 



드라마에서 보던 사원증은 멋졌는데, 막상 회사에서 나눠준 사원증은 하고 다니기가 너무 번거로웠다. 



동종 업계의 한 친구를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친구는 회사에 신입이 들어왔을 때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우리 회사 출근 시간은 원래 9시까지인데, 영업부는 8시까지 출근해야 해. 그리고 회사 규정에는 없지만, 이런저런 일도 다 해야 해. 이게 싫으면 나가.” 

이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데, ‘대리 나부랭이가 별…’ 하고 속으로만 욕하고 말았다.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가! 기껏 취업해서 출근한 신입은 저 말을 듣고 얼마나 암울했을까?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강단이 있지 않고서는 “그건 좀 부조리한 거 아닌가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전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회사를 다니는 내내 항상 의아했던 건 엘리베이터의 고 대리나 영업부 친구와 같은 사람들의 발언이었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지? 내 상식으로는 저런 발언은 고리타분한 경영자쯤 되어야 나오는 언어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대리, 과장 정도만 되도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시 고 대리는 대표님 친척인가? 저 친구는 혹시 사장님 아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떠나라,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해라, 항상 성장해야 한다, 네가 회사의 얼굴이다, 끊임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아라, 무조건 성과를 내라’ 등등 회사의 언어와 논리가 어느새 직장인에게 스며들고 있다. 이런 논리는 직장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회사, 혹은 경영자가 만든 것인데, 여기에 많은 직장인이 동조하고 마치 자신의 논리인 양 착각, 혹은 믿고 있다. 


회사의 이익과 경영자의 이익은 일치하지만, 회사의 이익과 직장인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장이나 많은 선배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다. 회사가 잘돼야 너희들도 잘리지 않고, 좋은 복지 혜택도 누리고, 보너스도 받고 그러지 않느냐고 말이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회사의 이익만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장과 회사가 이익이 나서 ‘잘리지 않고 일할 수 있겠네, 이번엔 성과급도 나오겠지?’ 하고 소심하게 기대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하지만 회사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고, 회사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 다른 회사 비판할 때는 한창 열을 올리던 한 선배도, 정작 자신의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그래도 우리 회사는 괜찮은 편이야. 사장님도 좋은 분이고”라고 하곤 했다. 마치 다른 회사를 욕하면서 ‘그에 반해 우리 회사는 괜찮은 회사다’라고 스스로 강요하는 듯했다. ‘회사가 나쁘면 나도 나쁜 사람, 회사가 좋으면 나도 좋은 사람’,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회사라는 꼬임에 넘어가 그 좋은 회사로 이직한 후배들은 결국 ‘연봉 높은 회사가 최고다’라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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