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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수책방 Feb 08. 2021

우리 회사에는 형님이 있다!

-이놈의 조직 문제 6.

이 본부장과 조 팀장이 따로 술자리를 가졌다. 

“와, 이번에 본부장님이 정하신 책 제목, 너무 섹시하던데요? 대박 치겠어요.”

“그치? 제목은 내가 잘 봐. 전에 대박 났던 그 책 있지? 그것도 내가 제목 잡은 거잖아.”

어느새 술자리는 무르익고. 

“성우야. 술자리에서는 그냥 형이라고 불러.”

“그럴까요? 형?”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많은 기업의 신입 사원 연수가 군대식으로 치러졌다(신입 사원들을 일렬로 세워 얼차려를 주면서 그 이유로 들었던 ‘애사심과 주인 의식을 기르기 위해서’란 말이 인상 깊었다). 당시 언론과 대중이 비난을 가하자 최근 들어 연수 문화가 바뀌고는 있다지만, 조직에 뿌리박힌 군대식 문화가 쉽사리 바뀔 리가 없다. 


지금 회사에는 병장님이나 상병님은 없지만, 형님이 있다. 형님은 평소(특히 술자리에서) 친근하게 다가와 “우린 가족이야. 내가 잘 이끌어 줄게”라고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 오면 “형을 위해 네가 좀 희생해라”라고 한다. 진짜 가족이고 형이라면 대들 법도 하지만, 어디 군대에서 ‘계급장 떼고 덤벼 봐’란 말이 통하던가. 


고등학교 때는 선배 교육이란 이름으로, 대학 때는 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정당한(?) 괴롭힘을 당해왔다. 이제 나이도 먹고 회사원이 되었건만 그놈의 전통과 교육은 많기도 했다. 내가 처음 영업할 때 팀장을 따라 업계 선배들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초면부터 나이를 묻더니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바로 “그럼, 말 놓을게”라고 하더니, 그날 하루 동안 “형이, 형이…, 형이 말이야” 이런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초면부터 내가 나이가 많다고 “형님, 형님” 하던 후배도 부담스러웠지만). 


그 형은 처음 만난 날부터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었나 보다. 모임에 나온 다른 형님을 칭찬하면서, “나도 이 모임 나와서 많이 배웠다. 형들한테 배울 게 많다”라고 하더니, 술을 진탕 마시고서는 “오늘 너 취하는 모습 좀 봐야겠다”라고 했다. 여기서는 배울 게 없을 것 같아 다시는 모임을 나가지 않았다. 


독재 정권 시절, 우리나라 기업은 군대식 문화와 유교 전통을 결합해 기업 조직의 수직적 구조를 공고히 했다.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기업 문화도 바뀌고는 있다지만 그 속도는 매우 더디다. 기업에서 조직의 유연화가 강조되고, 수평 관계, 직장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중요하다라는 말은 외침으로만 머물고 현실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 혹은 회사에서는 특히 어리고 힘없는 놈이 나에게 맞먹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잘못은 늘 밑에서 시작되나 보다. 


  

버르장머리와 예의     


형, 동생 하는 직장인이 “이제 이사님이 넘버 투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회사에도 분명 ‘넘버 투, 넘버 쓰리’가 있고, 편의상 ‘상무, 이사, 부장, 차장, 과장’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별명으로 서로를 호칭하는 회사에서도 분명 서열이 있다). 회사에서의 계급은 점점 세분화되어 가지만, 수직적 구조 안에 어떻게든 우겨 넣었다(많은 회사 홈페이지의 ‘조직도’를 보라. 내가 다닌 회사의 결재선은 무려 ‘나 -> 팀장 -> 본부장 -> COO -> CFO -> CEO’였다). 


회사에서는 군대처럼 상명하복이란 말을 쓰지 않지만, 상급자는 하급자를 칭하며 “쟤는 참 개념이 없다”는 말을 쓴다. 혹은 “쟤는 참 예의가 없어”란 말로 상하 관계를 분명하게 나눴다. 


나는 예의 없는 사람이 싫다. 내 지인들이 만약 이런 말을 들었다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버르장머리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까. 내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을 듣는 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맞먹거나 반말을 섞어가며 이야기하기 때문인데, 이게 딱히 예의가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예의는 상호 간에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이지, 나이가 많거나 계급이 높은 사람은 함부로 말하고 어린 사람은 깍듯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차 대리 : 팀장님, 이번 건은 효과도 없고 시간 낭비일 거 같은데. 하지 말지?

유 팀장 : 대리님, 대리님은 경력도 많으신데, 일을 못하시는 거 같아요. 다른 회사에서는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는데, 잘못 배우신 거 같네요.


위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누굴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맥락과 상황을 따져봐야 알 수도 있지만, 난 위의 상황만 보면 유 팀장이 훨씬 예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차분히 존댓말로 이야기하지만 상대를 깔보고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동등한 입장이라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상냥한 말투로 존댓말 또박또박 하는 상급자가 다른 팀원에게는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듣지만, 정작 같이 일하는 팀원은 죽을 맛인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 회사에서 차 대리와 같은 사람은 건방지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버르장머리와 예의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수직적 조직 구조에서 예의는 아래로만 흐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요즘 애들     


회사에서는 언제나 요즘 애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내가 요즘 애들이었을 때에 선배들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했을 테고, 나도 마찬가지로 요즘 애들을 만나면 ‘이건 뭐지?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회사 상급자의 요즘 애들에 대한 불만은 막상 별거 아니다. 큰 규모의 회사일수록 왕래가 적은 다른 부서 사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친한 팀장끼리 모여 수다를 떨다가 이런 소리를 하곤 했다. 


“이번에 경영본부에 또 팀원 뽑았다며? 거긴 뭐 하는 일도 없이 사람만 뽑는지 모르겠어.”

“그래? 신입 얼굴도 못 봤네? 요즘은 신입 소개 안 시켜주나 봐?”

“아, 난 저번에 탕비실에서 마주쳤는데, 인사도 안 하고 모른 척 지나가더라고.”


그렇게 만나서 아는 척하고 싶고 반가웠으면 먼저 인사했으면 됐을 텐데, 예의의 문제는 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지라 인사 문제가 요즘 애들을 비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요즘 애들은 출퇴근할 때 인사도 안 한다, 요즘 애들은 9시 땡 하면 출근하고, 6시 땡 하면 퇴근한다, 일이 바빠 팀원들 야근하는데도 혼자 가겠다는 소리가 나오냐” 결국 상급자가 갖는 불만은 나를 반가워하지 않아서고,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켜서다. 요즘 애들을 비난하는 이유가 고작 이렇다면, 사람을 살필 일이 아니라 조직 구조의 문제를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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