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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지프킴 Nov 08. 2021

[끄적 한 끼] 0. Prologue

한 끼의 글을 지어 먹습니다. 오롯이 내 것으로 소화시킵니다. 



안녕하세요. 식사하셨나요?

밥 한 끼.

사람은 밥을 안 먹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살다보며 만나는 힘든 일들 속에서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만 봐도, 우리 삶에 먹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여기서 궁금증. 

사람은 글을 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글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우리 몸에 생리학적인 문제가 생기진 않습니다.

글 없이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은 생각보다 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시콜콜한 카카오톡 대화부터 버스정류장 안내표지판, 부장님께 보고드린 메일... 

오늘 하루도 글이 삶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읽지 않고서 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글을 읽는 것은 사실 밥을 잘 먹는 것과 같이 우리의 생존, 다시 말해 삶의 질과 연결돼 있습니다.





좋은 밥을 먹어야 몸이 건강해지듯이,

좋은 글을 먹어야 정신이 건강해진다고 믿습니다.

좋은 밥이 뭔지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식당에 가서 값이 비싼 것을 고르면 대개 틀리질 않습니다. 

그런데, 좋은 글은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서점에서 제일 비싼 책들이 꼭 잘나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글은 가격이랑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체 좋은 글이 뭔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글 아닐까요.

읽었는데 울림이 있고, 영감이 떠오르게 하고, 지평을 넓혀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내 안에 나만 꽁꽁 숨겨두고 있던 감정과 생각들의 불쏘시개가 되어주는 글.

나아가 거기에서 자극받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글을 쓰게끔 하는 글.


그런 의미에서 저는 [끄적 한 끼]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그저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글을 잠깐 소개하고

거기에서 제가 느끼고 떠올렸던 생각들을 끄적여봅니다. 

끄적인 글들은 잘 차려진 한 끼가 되어, 제 마음이 맛있게 먹어줄 겁니다.

이 한 끼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꼭꼭 씹고 맛보고 향 맡고 충분히 느낀 후 오롯이 제 것으로 소화할 겁니다.

소박하게 차린 끄적 한 끼가 혹시 누군가의 마음에도 맛있게 느껴질 수 있을까요? 


이 연재 시리즈를 누가 챙겨서 읽게 될지, 아니 먹으러 올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들은 애초에 누구를 겨냥해서 쓰는 글은 아닙니다.

아마 누구를 겨냥한다면, 솔직하게 그것은 바로 훗날의 저라고 지금 여기에서 얼른 고백해야 되겠습니다.

'젊은 날의 나여. 이런 글을 읽고서, 이런 글을 썼었구나' 하고 말이죠.

사실 [끄적 한 끼]를 읽는 분께 하고 싶은 말은 아래와 같습니다.

"저는 이런 글을 보며 이런 생각을 떠올리고 느낍니다. 여러분은요?"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어 이 곳에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참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내 글을 소비할 대상이 이미 딱 정해져있고 그들을 위해 대놓고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뻔한 구석이 있는데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대개 프로들)이 잘 쓴다.

반면, 일기장에만 적을 수 있는 오로지 나만의 글은 나의 죽음과 동시에 함께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글들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나만의 개성이나 취향을 잘 드러내면서도 혼자만의 향유물로 전락시키기엔 아쉬운 글들을 적고 싶었습니다.



그저 저는 제 브런치와 제 글이,

누구일지 특정할 수는 없는 한 나그네가 자신의 고단한 인생의 여행길 가운데에 반갑게 만난 주막과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습니다.


"비밀은 글을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울음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 이은혜, <읽는 직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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