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의 재검토 - 말콤 글래드웰(김영사) ●●●●●◐○○○○
"자네는 이만 손을 떼게. 자네 자리에 커티스 르메이를 앉힐 생각이야."
자정을 지나 도쿄에 이른 첫 슈퍼포트리스는 조명탄을 떨어뜨려 타깃 지역을 표시했다. 그리고 맹습을 시작했다. 수백 대의 비행기, 거대한 날개를 가진 기계 야수들이 도쿄 상공에서 포효했다. 비행고도가 대단히 낮았기 때문에 우르릉대는 엔진 소리가 도시 전체를 뒤흔들 정도였다. 도쿄의 방공 상태에 대한 미국의 걱정은 전혀 근거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은 1.5킬로미터 상공에서 이루어지는 성격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B-29에서 폭탄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폭탄은 50센티미터 길이에 개당 무게가 2.7킬로그램인 작은 강철 파이프 형태로 안에는 네이팜이 들어 있었다. 이 작은 아기 폭탄의 한쪽 끝에는 긴 띠가 달려 있었다. 그날 밤 도쿄 하늘을 올려다봤다면 수천 개의 밝은 녹색 단검이 지상으로 떨어져내리는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쾅!"
- p. 209. 8장. 'D-데이'
. 말콤 글래드웰의 이번 신작은 경제와 아무런 상관없는 역사 이야기라는 게 이채로웠다. 출판하는 측에선 어떻게든 그동안 출간했던 베스트셀러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는지 '어떤 선택의 재검토'라는 미끼 제목을 달고 출간했지만, 실제 이 책의 제목은 'The Bomber Mafia'(폭격기 마피아)였으니까. 이정도면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도 어지간히 매니악하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영 감이 오지 않을테고, 정작 그런 이들은 말콤 글래드웰이 뭘 안다고 2차대전에 대해 이야기하냐고 코웃음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이름에 설레며 원서를 집어들었다가 내용을 보고 난감해했을 - 그럼에도 우직하게 책을 내 준 출판사에 감사부터(이 책은 제돈제산하였으며 협찬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 2차대전 중 도쿄 대공습을 놓고 두 가지 전략이 충돌했다. 민간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정확하게 표적을 노리는 핀포인트 전략 폭격을 할 지, (어차피 거기 있는 놈들은 죄다 전쟁부역자들이니까) 싸그리 밀어버리는 무차별 폭격을 할 지. 헤이우드 핸셀과 커티스 르메이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미 공군 수뇌부는 우리가 아는 '그 선택'을 한다. 그리고 말콤 글래드웰은 폭격기술의 발달부터 오늘날의 민간인 피해 논쟁에 이르기까지 미군의 폭격 역사를 꼼꼼하게 되짚은 끝에 마지막에 이르러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묻는다.
.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도쿄 불바다가 옳고, 핸셀을 좀 더 빨리 경질했으면 광복이 한두달은 먼저 될 수도 있었을거라며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히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이 책에서 말하는 주장을 생각해보려면 몇 가지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개별적인 사례로서의 '도쿄 대공습' 이야기로 읽기보다는, 일반적인 전쟁 속 폭격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과연 예상되는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금 큰 피해를 입히는 게 맞는가?" 라는 일반론으로 읽지 않으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로선 이 책의 내용은 당연하게 부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논리는 이렇게 펼쳐졌다. 즉 정밀폭격은 주간 폭격이어야 하고, 폭격조준기를 맞추려면 먼저 표적을 봐야한다. 그러나 주간에 폭격기가 저공비행을 한다면 일본 대공포의 손쉬운 먹이가 된다. 그래서 그는 결정을 내렸다. '어둠을 틈타야 한다.'
제트기류와 짙은 구름은 저공비행을, 저공비행은 야간비행을 뜻한다. 야간 공습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은 더 이상 정밀폭격을 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더 이상 노든 폭격조준기의 조작은 없다. 더 이상 폭탄 공격을 조정하기 위한 밀집대형은 없다. 더 이상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고민은 없다.
이 공격을 위해 그가 사용할 무기는 무엇인가? 네이팜이다. 네이팜은 완벽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 p. 197. 8장. 'D-데이'
. 그게 정 어렵다면, 도쿄 대공습의 논리가 그대로 한국과 베트남으로 이어졌다는 걸 떠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도쿄 대공습에서 큰 성과를 거둔 미국은 '당연하게도' 5년 후의 한국전쟁과 20년 후의 베트남 전쟁에서 똑같은 전략을 사용한다. 6.25 발발 시점에 시행되었던 전략폭격은 중공군의 참전을 계기로 도쿄 대공습 때 시행했던 네이팜탄을 사용한 대규모 무차별 폭격으로 바뀌었고, 1950년 겨울의 신의주 폭격과 51, 52년 두 차례에 걸친 평양 대공습을 거치며 북한은 커티스 르메이의 말처럼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폭격의 효과는 어마어마했고 북한은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기반을 상실하며 중국군의 지원 역시는 한국군조차도 이길 수 없는 수준으로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50년 여름과 51년 겨울 적의 수중에 넘어가 있던 서울을 포함한 한국의 여러 지역도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특히 51년 초 서울과 경기도 대부분은 무차별 폭격의 대상이 되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 이러한 무차별 폭격은 베트남 전쟁에 이르러서야 제동이 걸리게 된다. 물론 그 때도 르메이가 도쿄를 대상으로 얘기했던 것처럼 옆집의 응 우옌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북베트남 군대의 물자보급을 담당했고 쩐은 집에서 총알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폭격을 당한 이들의 참상이 퍼지게 되면서 더 이상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게 된다. 이와 함께 군사기술 역시 발전하면서 르메이 식의 무차별 폭격은 뒤로 밀리게 되고, 핸셀의 정밀 전략폭격은 당연한 것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 다만 결과적으로 오늘날에 이르러 핸셀의 정밀폭격이 받아들여졌다는 것과 1940년대의 그 시점에서 무차별 폭격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긴 하다. 무차별 폭격을 주장한 르메이도, 그 이후 전략폭격으로 전환한 이들도 당시의 목표와 기술상황을 고려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저자의 말과는 달리, 오히려 그 시대의 기술로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략폭격을 고집한 핸셀이야말로 그 상황에서의 최선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12월 말의 어느 날, 육군항공대의 이인자 로리스 노스태드는 핸셀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 일본 나고야에 가능한 한 빨리 네이팜 공격을 시작하라는 지시였다. 노스태드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기획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급히 필요한 일"이었다. 핸셀은 시범 작전을 수행했고, 그때 불태운 것은 그 도시의 1만 2,000제곱미터라는 얼마 안 되는 면적이었다. 이후 그는 인상을 쓰고, 무시하고, 일을 지연시키고, 다른 임무를 마치면 언젠가는 더 큰 규모로 작전을 시도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실행을 미뤘다.
그는 유혹에 지지 않았다.
그가 유혹에 굴복하지 않자 노스태드가 워싱턴에서 날아왔다. 그 순간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본토에서 날아온 고급 관리. 비행장의 의장대. 핸셀의 퀀셋식 막사 안에서의 위스키, 시가, 잡담. 그러곤 노스태드가 느닷없이 핸셀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자네는 이만 손을 떼게. 자네 자리에 커티스 르메이를 앉힐 생각이야."
- p. 191. 7장, '네이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