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 다자이 오사무(민음사) ●●●●●●●○○○
나는 일본 제일의 비열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2막은 아무도 모른다. '멸망하는' 역할로 등장하고서도, 마지막까지 퇴장하지 않은 남자도 있다. 조촐한 유서를 남길 생각으로, 이런 추잡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고 유년 및 소년 시절의 내 고백을 써 내려갔는데, 그 유서가 거꾸로 맹렬하게 마음에 걸리면서 내 허무에 흐릿한 등불이 켜졌다. 죽을 수 없었다. 그 '추억' 한 편만으로는, 아무래도 불만스러워졌다. 어차피 여기까지 썼잖아. 전부를, 써 두고 싶어. 지금까지의 생활 전부를, 털어내고 싶어. 이것도 저것도. 써 두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나왔다. 먼저, 가마쿠라 사건을 쓰고서 실패. 어딘가 실수가 있다. 다시 한 작품 쓰고, 역시 불만스럽다. 한숨짓고, 다시 다음 작품에 착수한다. 피리어드를 찍지 못한 채, 작은 콤마의 연속일 뿐이다. 영원히 이리 와, 이리 와, 하는 그 악마에게 나는 슬슬 잡아먹히고 있었다. 사마귀의 도끼다.
- p. 99. 도쿄 팔경.
. '도쿄 팔경'과 나머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단편집은 다자이 오사무가 20대에 쓴 '만년'에 이어 30대에 쓴 단편집이다. 스물 일곱의 나이에 단편집 만년으로 인기작가가 된 다자이 오사무였지만 그 이후의 삶은 극히 비참했다. 그전 해에 했던 맹장 수술과 사후치료 과정에서 진통제에 중독되어 약물중독자가 되었고, 아내의 불륜을 목도해야 했으며, 결국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하고 아내와 이혼했다. 이 모든 일들이 만년을 발표한 후 - 졸업에도 취업에도 실패했던 젊은 날의 좌절 속에서 겨우 전업작가의 길을 찾은 지 -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다. 자살기도조차 실패하고 비참함의 극에 달했던 이 시기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까발겨 심경을 토로한 게 도쿄 팔경이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참담한 중독 환자가 되어 있었다. 단박에, 돈이 궁해졌다. 나는 그 무렵, 매달 구십 엔의 생활비를 큰형한테 받고 있었다. 그 이상의 임시 비용에 대해선, 큰 형도 과연 거절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형의 애정에 보답하려는 노력을 무엇 하나, 하지 못했다. 제멋대로, 함부로 목숨을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그해 가을 이래, 어쩌다 도쿄 시내에 나타나는 내 모습은, 이미 지저분한 반미치광이였다. 그 시기의 온갖 한심한 내 모습을, 나는 죄다 알고 있다. 잊을 수 없다. 나는 일본 제일의 비열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십 엔 이십 엔의 돈을 빌리러, 도쿄로 나온다. 잡지사 편집인 앞에서, 울어 버린 적도 있다. 하도 끈덕지게 부탁한 탓에, 편집인이 호통친 적도 있다. (중략)
종이봉투 속 작품도, 한 편 남김없이 깡그리 팔아 버렸다. 이제 아무것도 팔 것이 없다. 당장 작품을 낼 수도 없었다. 이미 재료가 고갈되어,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의 문단은 나를 가리켜, '재능은 있고 덕이 없다.' 라고 평했는데, 나 자신은 '덕의 싹은 있어도 재능이 없다.' 라고 믿었다. 내겐 소위 문재라는 게 없다. 온몸으로 부딪쳐 가는 수밖에. 방법을 알지 못했다. 촌뜨기다.
- p. 106. 도쿄 팔경.
. 그나마 도쿄 팔경을 제외한 다른 단편들에는 어느 정도 쓴웃음과 훈훈함이 묻어나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임에도(!) 동화책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우정과 의리가 가득한 '달려라 메로스', 볼품없는 개와의 쓴웃음 나오는 우정(?)을 다룬 '축견담', 옛 전설들을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재기 넘치는 글로 새롭게 재구성한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씨', '카치카치 산' 등. 이런 단편들은 그동안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밝은 느낌을 주지만, 단편집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도쿄 팔경의 어둠이 너무나 깊고 인상적이라 다른 단편들의 빛마저 다 지워져버리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마침내 헤어졌다. H를 더는 붙잡을 용기가 내겐 없었다. 버렸다고 해도 좋다. 인도주의 어쩌고 하는 허세로 용서한 척 해봐도, 그 후 하루하루의 추악한 지옥이 훤히 보이는 느낌이었다. H는 혼자, 어머니가 계신 시골로 돌아갔다. 서양 화가의 소식은 알지 못했다. 나는 홀로 아파트에 남아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소주 마시는 걸 익혔다. 치아가 부슬부슬 빠졌다. 내 얼굴은 너절해졌다. 나는 아파트 근처 하숙으로 옮겼다. 최하급 하숙집이었다. 나는 그것이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모습인가, 문가에 서니 달빛 아래, 마른 들판은 내달리고 소나무는 서성이네. 나는 하숙집 작은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방을 나가 하숙집 문기둥에 기댄 채, 이런 엉터리 노래를 나직이 중얼거리는 일이 많았다.
- p. 110. 도쿄 팔경.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나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무지하고 교만한 무뢰한, 또는 백치, 또는 저급하고 교활한 호색한, 가짜 천재 사기꾼, 마음껏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돈이 궁해지면 위장 자살극을 벌여 시골의 부모님을 협박한다. 정숙한 아내를 개나 고양이처럼 학대하더니, 급기야 내쫓았다. 그 밖에 온갖 전설이 조소와 혐오, 분노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나는 완전히 매장당했고, 폐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알아차리고, 하숙집에서 한 걸음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술이 없는 밤에는, 짭짤한 센베이 과자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탐정 소설을 읽는 게 은근히 즐거웠다. 잡지사에서도 신문사에서도, 원고 청탁이 아무것도 없다. 또한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쓸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병중에 진 빚에 대해선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밤에 꿈속에서조차 괴로워했다. 나는 어느 새 서른 살이 되어 있었다.
- p. 111. 도쿄 팔경.
. 그정도로 도쿄 팔경의 어둠은 깊고 처절하고 절망스럽다. 만년에서 읽을 수 있던 최소한의 재기나 정취조차 없다. 만년 역시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자기 변명조차 허영이라고 치부하며 그런 자신의 심리를 가차없이 해부해놓고 비웃지만, 도쿄 팔경에 이르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는 물론이고 이제는 육체적으로까지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냉혹하게 있는 그대로 써내려간다. 다행히도 그 끝에서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기에 달려라 메로스와 '사양'과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가 있는 것이고 그런 회복의 과정 역시 도쿄팔경에 실려 있지만, 이제는 재기했으니까 괜찮다고 하기엔 그 나락의 모습은 너무도 실감나고 너무도 비참한다. 이 정도의 좌절과 절망이라면, 비록 다자이 오사무 스스로는 '이제는 과거로 그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다'고 얘기하더라도, 그 두려움이 언제고 과거로부터 되살아나 그를 집어삼키더라도 아무 이상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이 책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회상하는 어둠은 깊고, 또 깊다.
나는 그 서른 살의 초여름, 처음 진심으로 문필 생활을 지원했다. 생각하면, 늦은 지원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 도구다운 물건이라곤 없는 하숙집 작은 방에서, 열심히 썼다. 하숙의 저녁밥이 밥통에 남으면, 그걸로 몰래 주먹밥을 만들어놓고 심야 작업 때의 공복에 대비했다. 이번엔, 유서를 쓰는 게 아니었다. 살아가기 위해, 썼다. 한 선배가 나를 격려해주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미워하고 조소해도, 그 선배 작가만은 한결같이 나라는 인간을 뭉근히 지지해 주셨다. 나는 그 고귀한 신뢰에도 보답해야만 한다. 드디어 '우바스테'라는 작품이 완성되었다. H와 미나카미 온천으로 죽으러 갔을 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다. 이건 금세 팔렸다. 잊지 않고, 내 작품을 기다려 준 편집자가 한 사람 있었다. 나는 그 원고료를 허투로 쓰지 않고, 우선 전당포에서 나들이옷 한 벌을 찾아 차려입고 여행을 떠났다. 고슈의 산이다. 다시금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장편 소설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고슈에는 만 일 년 머물렀다. 장편 소설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단편은 열 편 이상 발표했다. 여기저기서 지지해 주는 목소리를 들었다. 문단을 고마운 곳이라 생각했다.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
- p. 113. 도쿄 팔경.